매년 하는 회고가 어색해질 정도로, 올해는 글을 적지 않았다. 사실 글을 적고 싶다는 생각이 중간 중간 들기도 했지만, 조심스러웠고 또 오히려 두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2022년을 돌아보며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2023년도에는 정말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 더 이상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것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안정을 주면서 내가 정말 목표했던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꽤나 잘 이뤘다. 2022년도에 했던 목표를 아주 잘 달성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실력이 아니라 운이었다. 우리가 폴센트라는 서비스를 선택했던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게 우연히 고객들의 문제를 잘 해결했고, 자연스럽게 성장해갔다. 타이밍 맞게 좋은 분들이 오셨고 그게 또 우리 성장과 이어졌다.
여기서 내가 한 것이라고는 열심히 노력한 것 밖에 없는데, 사실 나는 2021년도에도 2022년도에도 엄청 노력했었다. 오히려 올해보다 작년은 더 노력하는 한 해였기에 올해 내가 이룬 것들은 모두 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든 뒤부터는 어딘가에 글을 적는 것도 두려웠다. 왜냐하면 운 덕분에 된 것이 마치 내 실력으로 된 것처럼 보여질까봐 조심스러웠다.
아무튼 올해는 이런 저런 핑계로 글을 적지 않았지만, 또 결코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니기에 적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주변에서 내게 연간 회고를 왜 하냐고 물어보면 내가 항상 이야기 하는 대답은 "내년의 나를 위해서"이다. 나는 올해를 마무리하며 해놓은 연간회고를 다음 해를 살아가며 힘들 때 마다 찾아보곤 한다.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나에게 많은 힘이 된다. 올해도 내년의 나를 위해 회고를 적어본다.
올해는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보드에 적어놓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앉아서 읽는 것으로 시작을 했다.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폴센트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매출에 대한 성장 목표를 잡았다가, 이후에는 하루 사용자에 대한 목표로 바꾸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올해 폴센트 서비스의 하루 사용자는 1월에 비해 30배 성장했다.
이게 우리가 올해 경험한 성장이다. 하루 사용자가 1000명에 불과하던 폴센트는 이제는 하루 3만명이 이용하는 서비스로 성장했다. 사실 올해 목표가 하루 10만명이 쓰는 서비스를 만들자라고 목표를 잡고 챌린지 했기에 결과적으로 달성하진 못 했다. 하지만 왜 달성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레슨런이 있었는데, 결국 리더가 제대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함에 있었다. 우리는 10만이라는 비전만을 제안했지 거기를 어떻게 갈 수 있을지 방향성을 제시해드리지 못 했다.
물론 그 방향성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어야 헀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매우 서툴렀다. 선행지표와 후행지표에 대해서 배웠고, 우리가 목표하였던 10만이라는 하루 사용자는 후행지표였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해야하는지 선행지표들이 필요했는데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보지 못 했다. 지금에라도 데이터를 더 자세하게 보고 이 선행지표를 찾고 성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팀원분들이 모두 열심히 해주셨는데, 나랑 친구는 방향 제시를 제대로 하지 못 한채 10만, 10만만 외쳤다... 죄송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것을 발판 삼아 내년에는 정말 더 제대로 성장해보고 싶다.
내년 연말에는 폴센트 팀이 이룬 것, 그리고 이뤄가는 것에 대해서 더 자신있게 이야기 하고 싶다.
좋은 분들이 오시면서 함께 노력하면서 올해 폴센트 앱은 굉장히 많은 업데이트를 거쳤다. 스토어 심사에 올라갔던 앱 업데이트는 25번으로 매월 2번씩은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앱 서버 배포는 346번 이뤄졌다. 1년간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고객이 이용하는데 문제가 있었던 시간은 1시간 내외로 거이 문제없이 서비스를 운영했다. 24시간 깨어있는 시간은 모두 CS센터를 운영하면서 고객들의 문제를 제일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고객 인터뷰를 끊임없이 하면서 앱의 방향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모두가 함께 했기에 할 수 있었던 일들이다.
첫 번째 키워드는 회사였다.
폴센트는 올해
하루 사용자 기준 30배 성장했고,
서울창업사관학교 13기에 뽑혀서 우수로 졸업했고,
두명에서 이젠 6명으로 늘어났고,
트렌드 코리아 2024에 소개 되었고,
더 좋은 사무실로 옮겨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젠 어엿한 회사로 성장해가고 있다.
두 번째 키워드는 가정이다!
또 올해 나에게 정말 큰 일은...!! 7년이나 나를 붙잡고 있었던 일을 잘 마무리 한 것이다. 이건 사실 연애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에게 있어서 가정은 정말 중요하다. 나만의 가지고 있는 철학이 있는데
일단 내가 온전해야하고, 그 다음은 가정, 그 다음은 기업, 그 다음은 사회 국가로 점점 커져가는 원이다.
안에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 밖에 것을 이뤄도 딱히 큰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은 사업보다도 더 큰 의미이며, 큰 기업을 이루어서 사회 국가에 큰 임팩트를 미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하지만 그 이전에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
7년 전에 첫 눈에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었고, 3년을 정말 이쁘게 연애 했었는데, 여러 외적인 상황들이 바뀌면서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4년을 후회하면서 지냈다. 나는 정말 겪어봐야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고치는 타입인 거 같은데, 이번이 정말 딱 그랬다.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나 소중한 것이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에 속아 그 분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고, 뭔가 그 부분까지 더 잘 맞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기대 했나보다. 물론 그것까지 잘 맞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건 그 분이 아니었다.
결국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내가 못나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그 분 탓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업을 하고 싶지만, 그 분은 안정적인 상황을 바랬다. 그럼 내가 안정적인 사업을 하면 되는거였는데, 그때 당시에는 내가 역량이 부족해서 못 하는 것을 마치 그 분 때문에 내가 사업을 잘못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딱히 후회되는 것이 없다. 매번 내가 결정하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집 가훈이 '최선을 다한다' 였는데, 어릴 때는 다른 멋진 말도 많으니 별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것만큼 실천으로 행하기가 어려운 말이 없었다. 아무튼 늘 최선을 다해서 살아서 후회 되는 것이 거이 없지만 딱 후회되는 것 하나를 뽑으라면 이 분과 헤어진 순간이었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거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말 중에 '사람이 살다보면 내가 아닌 순간이 있다'는 데 그 때가 딱 그랬다.
정말 4년간을 뼈저리게 후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많은 노력을 통해서 최근에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분도 나의 이런 모습들을 좋게 봐주셔서 결론적으로는 다시 좋은 인연을 이어가기로 하였다.
꿈인지 아닌지 잘 알 수 없지만, 내가 지난 몇 년간 너무나 바랬던 상황이고, 그랬기에 더 행복한 그리고 믿기지 않았던 순간들이다. 이젠 더 이상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아야겠다. 몸으로 배운 것은 잊혀지지 않으니 이젠 더 이상 실수는 없다. 올해는 모든 일이 잘 풀려서 이상할 정도이다.
남자들에게는 이런 국룰이 존재한다. 여자친구가 '내가 어디가 좋아?' 물으면 베스트 대답은 '너라서 좋아'라는 이야기. 그러면 나보다 더 ㅇㅇ한 사람을 만나면 떠나가겠네? 와 같은 반격을 절대 들을 수 없다. 나는 정말 지금 여자친구가 그냥 그 사람이라서 너무 좋다. 이걸 진심으로 이야기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는데, 지금에 이 분을 다시 만나니 서로 나이도 들고 상황도 바뀌어서 오히려 미래를 함께 그리기가 좋아졌다. 헤어져있는 기간 정말 힘들었지만 그 기간동안 정말 일에만 집중해서 성장했고, 나 스스로도 많은 깨달음을 가질 수 있었다.
함께 그려 갈 미래가 기대된다. 누군가와 함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것이 정말 큰 행복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에서 정말 후회 되는게 사라졌다.
이 밖에도 엄마아빠가 내가 서울에 온 지 4년이 지난 후에야 처음으로 서울로 올라오셔서 2박 3일 여행을 했던 것, 그리고 엄마 환갑 잔치를 기획하고 챙겨드렸던 것 모두 기억이 남는다.
다음 키워드는 건강이다.
올해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 중 리스트 2번 째가, 건강에 대한 것이었다.
'철인 3종 풀코스를 완주하고 근육질 몸을 갖는 것'
나는 스스로의 한계에 대해서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딱히 모든 일에 불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 불가능하다면 그것을 내가 진심으로 이루겠다고 마음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철인 3종도 마찬가지였다.
철인 3종 경기에는 코스 길이에 따라 3개 종류로 나뉜다.
올림픽 코스는 수영 1.5km, 사이클 40km, 러닝 10km, 이것은 보통 일반인이 이야기하는 철인 3종 코스이고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음 하프는 수영 1.9km, 사이클 90km, 러닝 20km로 올림픽 코스의 2배정도 되고 6시간 ~ 7시간 정도 소요되는 경기다.
내가 올해 목표한 풀코스는 아이언맨 코스라고도 불리며 수영 3.8km, 사이클 180km, 러닝 42.195km로 하프의 2배이다. 보통 15시간에서 17시간 정도 소요되고 실제로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경기가 이어지는 경기이다.
철인 경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아이언맨 코스를 해야지만 진정으로 철인 경기를 완주했다고 이야기 한다.
그 동안 나는 올림픽코스 총 9회, 하프 1회를 출전했다. 오랜 기간 준비해서 하는 아이언맨코스였지만 나는 올해 9월 아이언맨 대회도 많은 준비를 하지 않고 나갔다.
왜냐하면 나의 철인 대회를 하는 모토는 "늘 언제나 내가 이것을 할 수 있는 평소 체력을 가지고 있고 싶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조금 걱정이 되었다. 수영은 하프 때 해본 1.9km 이상 해본 적이 없었고, 사이클도 하프 때 타본 90km가 최고였고, 런도 30km가 최고 멀리 해본 것이였기 때문에, 이것들을 모두 합쳐서 2배씩 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꽤나 부담이 되었나보다.
그래서 나름 한다고 2주 전부터 운동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수영 1.5km x 3회, 사이클 60km x 3회, 러닝 10km x 3회 속성코스로 ...
근데 이상하게 완주를 못 할 것 같진 않았다. 어떻게든 하면 완주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킹코스를 나간다고 주변에서 말하니 거리를 듣고 미쳤다고 하면서도, 나는 왠지 포기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이래서 이미지 메이킹이 무섭다.)
그렇게 나의 킹코스 경기가 시작되었다.
엄마가 싫어하긴 하지만 그래도 철인 경기하기 전에 꼭 말은 하는데, 이번에는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면 바로 등짝 스매싱 각이라서 완주하면 이야기 드려야지 했다.
수영 3.8km는 생각보다 길었다... 1.9km 반환점을 돌고 나서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 이 생각을 하자마자 다리에 쥐가 났다... 줄을 잡고 쥐를 풀어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평형이라도 해서 가자라고 해서 평형을 조금 했는데, 앞에 사람보다 빨랐다.(평형을 차면 안되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신기하게 쥐가 풀렸다. 평형킥의 발 모양이 자유형의 쥐를 풀어주었다. 다행히 목숨을 건져서 3.8km 완주할 수 있었다. 수영은 1시간 45분만에 완주했다.
다음으로는 사이클 180km의 시작.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이클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연습할 때 60km를 탔고 생각보다 괜찮아서 이 정도 탄 것의 3배만 하면 되네? 라고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같이 나간 형님들은 90km부터는 아예 완전히 다르다고 말해주었다. 처음 40km를 탈 때까지는 온 몸에 에너지가 넘쳤고, 많은 사람들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주변 풍경이 너무 예뻐서 마치 여기는 천국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형님들이 말했던 90km가 되자 한 순간에 퍼졌다. 패달을 열심히 밟았지만 앞으로 가지 않았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보충이 부족했나 싶어 열심히 에너지젤을 먹었지만 힘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같이 철인 대회를 참가한 형님을 만나 형님 페이스대로 무리하지 않고 열심히 뒤를 쫒아갔다. 그러자 조금씩 다시 체력이 올라왔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고 달리다 보니 180km를 왔다. (정말 앞에서 끌어주던 형님이 없었으면 나는 포기했을 것 같다. 사이클은 7시간 30분이 걸렸다.)
그리고 대망의 42.195km...
한 바퀴가 8km인 도로를 빙글빙길 5바퀴를 돌아야 하고, 한 바퀴를 돌 때마다 고무밴드를 하나씩 주었는데, 나는 하나도 없는데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벌써 2개 3개씩 있었다. 그래서 더 힘이 빠졌다. 시간도 애매하게 남아서, 걸으면 바로 out이었다. 수영에서 쥐가 나서 오래걸린 것과, 사이클에서 체력이 퍼진 것이 원인 이었다. 그렇게 나는 컷오프 당하지 않고 완주하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계속 뛰어야 하는 지옥에 빠졌다.
처음 풀코스에 나가면서는 나의 기억 나는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1년, 1년을 쭉 돌아보자 했는데 그건 무슨... 아무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냥 힘들다. 조오오온나 힘들다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나에게 가장 동기부여 준 것은 이것을 중간에서 포기해서 또 다시 할 수 없다 였다... 그게 나를 계속 달리게 해주었다. 포기하면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언젠간 또 이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었다. 그건 절대 안된다라고 생각하면서 총,총,총,총 걷는 듯 뛰는 듯 계속 나갔다.
그리고 한 바퀴 고무줄 하나를 받을 때마다 한 시간 뒤에는 내가 다시 이 고무줄을 받고 있을 것이다. 또 한 시간 뒤에는 다시 여기서 또 고무줄을 받고 있을 것이다 상상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쉬지 않고 해나가다보니 결국 42.195km도 완주할 수 있었다. (러닝은 6시간 17분이 걸렸다.)
"늘 그렇듯이, 해낼 것이다."
이것은 내가 창업을 하고 친구와 앱을 만들면서 나도 듣도 보도 못 했고, 그 분야 개발자분들도 모르는 기능들을 개발할 때 마다 했던 말이다.
결국 나는 늘 그렇듯이 해냈다. 17시간 컷오프에서 나의 기록은 16시간 12분 48초이다. 컷오프 안에 넉넉히 잘 들어왔고, 평소 체력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건강을 위한 것이기에 운동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다른 것은 확실히 하자는 주의지만 운동만큼은 짧고 길게 하고 싶다.
앞으로도 늘 그렇듯 해내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올해 세 번째 키워드는 건강이었다. 나는 올해 매일 아침 30분씩 러닝을 하면서 체력을 키웠고, 올림픽 코스 1회, 아이언맨 코스 1회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했고, 주 1회는 풋살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턱걸이는 한 번에 10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년에는 20회를 목표로 해야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몸짱은 되지 못 했다...
그 밖에 잘한 것은 함께 일하는 친구와 7시 30분에 출근해서 1시간 동안 책을 읽으며 함께 창업에 대해서 공부한 것이다.
이것은 올해 의미있게 들었던 말들 중에 "기업가는 스스로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훈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나를 위해 대신 회사를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있었다. (우리집 현관문에 붙여놓은 말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 더 공부하고 성장해야 회사를 더 잘 운영할 수 있기에 함께 공부하자며 했던 것인데 한 달에 책 1권씩을 읽고 회고 할 수 있었다.
운동도 나름 꾸준히 하기 위해 노력했고, 라섹도 했다. 결혼식에서 3명의 친구의 사회를 봐주면서 결혼을 시켰다.
그 밖에 올해 또 하고자 했었던 영어 공부는 결국 제대로 하지 못 했고, 매년 들어가는 취미 생활, 그 중에서도 통기타 연습은 거이 하지 못한 것 같다.
내년에도 넣을지 말지는 고민을 좀 해봐야할 것 같다.
올 한해는 전체적으로 90점을 주고 싶다. 선택과 집중을 잘 했고, 또 그것과 함께 운도 따라주어서 좋은 결과들도 이룰 수 있었던 것 같다.
내년에도 이루고 싶은 게 많다. 하지만 내년에도 또 선택과 집중을 해서 이뤄내야 한다
그 동안은 매년 외적인 성장에만 집중했던 거 같은데, 내년에는 외적으로도 또 내적으로도 성장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2년 회고를 하기 전에 2021년 회고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2021년도 정말 바쁘게 열심히 살았던 거 같은데, 다시 읽어보니 요란했지만 크게 이룬 것이 없었다. (물론 작은 것들을 많이 이루었고, 각 해마다 목표가 달랐던 것 같다.) 매년 매년 삶이 힘든 것이 갱신되고 있는 느낌이다.
올해는 과연 어땠을까? 작년 회고 마지막에 적은 것을 보면
2022년도에는 좀 더 한 가지에 집중해서 결과를 내고자 다짐을 했었다.
일단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사업이라는 것 하나에 엄청 집중했고, 거기에서 실패도 또 작은 성공도 이루어낸 것 같다. 물론 사업이라는 것은 고객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여,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거기에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기에 나는 개발자를 처음 시작할 때 마음 먹었던 것처럼 소프트웨어적으로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올해는 정말 서버부터 앱, 웹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개발했던 것 같다. 줄일 수 있는 게 결국 인건비와 시간 뿐이다보니, 정말 많은 시간 개발하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개발했다. ㅎㅎ (ㅠㅠ 내 손목 흐헝...)
아무튼 올해도 각 분야별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었고, 크게 6가지가 있었다.
1. 꽁술(사업)에서 유의미한 성과내기 2. 건강한 몸 유지하기 3. 성공하는 습관 만들기 4. 나의 삶이 좀 더 행복해지기 5. 통기타, 어디서든 부를 수 있는 노래 한 곡 배우기 6. 정말 좋아하는 연애하기
보는 것처럼 사실 1번이 메인이었고, 1번만 잘 이뤄보자 목표했었고 나머지는 나의 삶을 좀 더 좋게 채워줄 수 있는 것들로 마무리했다.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연초에 세운 목표를 한 번만 보고, 다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연말이 되어서야 그것을 다시 한 번 보고 '내가 이런 목표를 세웠었구나' 생각하고 실패한 것을 체크한다. 그리고 그것을 매년 반복한다
ㅎㅎ 이 글을 본 것이 6개월쯤 지난 시점이었던 거 같은데, 그 때 정말 양심이 찔려서 그때부터는 아침마다 내가 목표한 것들을 하루에 한 번씩은 적으면서 더 상기시켜줬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방법을 정말 추천하고 싶다. 매일 적음으로써 어떻게 이룰까 한 번 더 생각해볼 수도 있고 목표도 다시 한 번 상기시킬 수 있다.)
아무튼 1년간 열심히 살았고, 그것을 얼마나 이뤘는지 한 번 체크해보려고 한다.
제일 큰 목표였던 1. 꽁술(사업)에서 유의미한 성과내기는 상반기에 정말 나를 인생의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사이드로 진행했던 꽁술서비스는 서울 600여개 제휴점에 방문할 때 마다 술 1병씩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서비스였다. 예를 들면 내가 강남에서 친구들과 놀기로 했고, 강남에도 꽁술 제휴점이 40개 가까이 있었기에 1차, 2차, 3차 모두 꽁술 제휴점에 가면 하루에도 술 3병을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그런 획기적인 서비스였다.
다노를 다니면서 아는 형님 2분과 사이드로 진행했던 프로젝트인데, 코로나 이슈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면서, 퇴사 이후에 한 번 더 몰입해서 진행하게 된 서비스였다.
하지만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한 인건비와 마케팅비로 매달 1,000만원씩 나의 돈을 깎아먹었고, 성과도 나지 않아서 나의 피를 쪽쪽 빨아먹었던... 서비스이다.
거리에 홍보를 나가면 고객들의 반응은 너무 뜨거운데, 도대체 왜 사용하지 않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정말 다양한 시도를 했었고,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매일 매일 풀기 위해 노력했다. 마치 빛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에서 계속 출구를 찾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출구를 찾기 위해 허우적하면 할수록 계속 빠져들어가는 늪과도 같았다. (이때 정말 소주의 맛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결국 이 서비스는 나의 2년(회사를 다니며 1년, 본격적으로 몰입하며 1년)이라는 시간과 5,000만원이 넘는 돈을 쓰고 마무리되었다. 2022년 상반기를 제일 뜨겁게 다룬 이슈이자, 그래도 다행히 스스로 왜 되지 않는지 납득하며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만약에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면 빚을 내서라도... 더 했을거 같다.ㅠㅠ)
(더 자세한 꽁술 내용이 알고 싶으면 위에 글을 읽어보면 된다.)
나는 원래 회사를 다닐때도 정말 열심히 하고 성과도 잘 내는 편이라서, 사실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내 사업을 시작할 때 기대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최소 3배는 더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부분이었다. 일단 일하는 시간도 회사에서의 8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게 될 것이고, 또 회사에서 정하고 시키는 일이 아닌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하는 일이다보니 효율이 최소 3배는 더 좋지 않을까였다. 그럼 내가 회사에서 내던 성과의 3배는 더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예측은 정말 보기 좋기 빗나갔다... 사람의 에너지의 양은 한계가 있는데, 성과가 나지 않으니 에너지의 그릇도 더 이상 차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성과 없으니 '언젠가는 이런 결과가 나올꺼야'와 같은 것을 그리기도 너무 힘들었고,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너무나도 지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회사에서는 다양한 동료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고, 그 문제를 언제까지 풀어야하는지 명확한 DUE도 있고, 이 문제가 실제로 고객이 원하는 않더과도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내가 했던 일은 이게 모두 아니었기에 나는 고립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잘못된 문제를 풀고 있으면 이건 온전히 나의 책임이었고, 이것을 함께 풀어갈 동료가 없었고, 이 문제를 언제까지 풀어야할지, 또 풀 수 있는 문제는 맞는지 하나도 정확하게 나온 것이 없었다.
아무튼... 정말 사람이 어떤 일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성과, 결과가 눈에 보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게 회사에서는 결국 개인의 보상으로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제한적이었고, 나는 다행히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우연찮은 계기로 함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와 함께 꽁술을 마무리하고 2차전에 돌입했다.
사실 꽁술을 마무리하며 다시 취업을 할까 고민도 하였지만, 그래도 2개월이란 시간은 버텨볼 수 있을 거 같았고, 그 친구와 함께 빠르게 서비스를 런칭해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우리에겐 DAY1부터 수익날 수 있는 사업이 필요했다.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를 화이트보드에 나열했고, 그 중에서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추렸다. 어떻게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었냐면, 그냥 이 친구와 하루 종일 붙어있고 둘 다 사업에도 관심이 있다보니 야근을 위해 저녁 밥을 먹을 때 마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때'와 같이 아이디어 토론을 했었기에 아이디어는 충분했다.
그렇게 7월 중순부터 서비스를 기획하고 디자인하기 시작했고, 딱 1달 반정도 지난 9월 초에 우리는 서비스를 런칭했다. (그 사이에 꽁술 서비스도 종료를 공지했다.) 우리가 새롭게 해결하고자 집중했던 문제는 쿠팡 로켓 배송 상품들의 가격이 계속 변한다였다. 실제로 쿠팡에서는 AI가 시장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가격을 변동시키고 있었고, 나 역시도 쿠팡을 정말 정말 많이 사용하는 사용자로서 이 부분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과거 애플워치를 사기 위해 정말 계속 계속 접속했었던 기억이 있다.)
고객들은 이 문제를 장바구니에 물건을 직접 담아놓고 가격 변동을 보면서 해결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소프트웨어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주고자 하였고, 폴센트(떨어지는fall 퍼센트)라는 앱을 출시하여 운영하고 있다.
정말 출시 할 때는 MVP의 핵심 기능만을 담아서 출시를 했었는데, 지금은 꽤 많은 업데이트 과정들을 거쳐서 정말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서비스가 되었다!!
이번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새롭게 flutter를 배워 안드로이드, ios 동시에 앱을 출시해볼 수 있었고, 또 백엔드적으로도 굉장히 탄탄하게 잘 만들어서 내가 지금 개발자로서 정말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그래도 그 이전에 개발자 커리어를 열심히 잘 쌓아왔어서, 이제는 내가 만든 것이 잘 만든 것인지 못 만든 것이 평가할 수 있었고, 또 어떤 부분은 개발하면서 '아 이렇게 개발하면 사수분께 혼나는데?' 하면서 개발할 수 있어서 신기했다. ㅋㅋㅋ
물론 일정 때문에 타협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고객 사용성에 있어서는 타협하지 않았던 것 같다. (코드는 타협했지만 고객이 불편할 것 같으면 꼭 고객을 우선해서 개발했다!!라고 위로해본다.)
그리고 이 서비스는 정말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어서, 올해 1년에는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정말 이 서비스만 쭉쭉 키워볼 예정이다. 혼자였으면 정말 못 했을텐데, 함께 하고 있는 친구 덕분에 서로 역할을 잘 나누어서 이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큰 부담감을 내려놓고 따뜻한 연말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첫 번째 목표였던 1. 꽁술(사업)에서 유의미한 성과내기는 아주 멋지게 달성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럼 2번째 건강한 몸 유지하기는 어떨까?
이 목표를 세울 때의 마음은, '사업은 잘 안 될 수 있어도, 건강은 잃지 말자' 였다.
그래서 상반기에 꽁술이 정말 안 될 때도, 꾸준하게 운동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운동을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몸도 마음도 계속 지치다보니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크게 하위 목표들로, 마라톤 풀코스 완주, 철인 3종경기 완주, 플란체, 바프 등을 세웠었는데 제일 중요했던 1번이... 생각처럼 잘 안 풀리면서 운동은 정말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해서 무사히 완주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회에 출전할 때도 따로 운동을 하지 않는다. 뭐 시간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그냥 언제나 내가 이정도는 완주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싶다가 더 큰 목표이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하진 않고 평소처럼 운동한 상태에서 나가서 완주하기 위해 노력한다. 올해는 ㅋㅋㅋㅋ 대구 신문에도 나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때는 마지막 러닝 코스라서 너무 신나서 카메라 보고 웃었는데... 그게 기자님이었다니 완주하는 게 찐으로 행복했던 것 같다.
올해에는 정말 생활패턴을 잘 맞춰서 제대로 된 몸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래도 건강한 몸 만들기는 어느정도 유지한 것에 감사한다!!
3번 째 성공하는 습관 만들기는 사실 모닝루틴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읽어나서 명상하고, 비전 노트 적고, 확신의 말을 말하고, 감사 읽기 적고 또 그 밖에 책을 읽는 습관 만들기와 같이 실천하면 내 삶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정말 습관화하고 매일 실천하자는 목표였다.
꽁술 일을 하면서 마음이 조급해지다보니, 명상을 하는 10분도 정말 사치로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었다. 허투로 쓰는 시간이 정말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시간을 온전히 잘 쓰진 못 했다.
그래도 나름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서 계속 지키려고 했고, 오히려 연말이 되어서 루틴보드를 만들어서 요즘은 정말 모닝루틴을 잘 지키고 있다!! (루틴 보드란 내가 새롭게 시도한 것인데, 보드에 내가 일어나서 할 일들을 순서에 맞추어서 적어놓고 그것을 일어나자마자 순서에 맞게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것에도 요즘은 탄력이 붙어서 2022년에 잘 했다기 보다는 2022년에 다양한 시도들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체크할 수 있었고, 2023년에는 정말 잘 꾸준하게 유지를 해보려고 한다.
4번 째 나의 삶이 좀 더 행복해지기는 정말 내 삶이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해서 세운 목표였다. 사실 나는 정말 이루고 싶은 것이 많고, 그렇다보니 항상 시간을 쪼개서 쪼개서 사용하고 딱히 약속이 없으면 주말에도 일하고, 뭔가 쉬고 있으면 불안하고.... 내 삶이 행복한가 라는 질문에 답변을 잘 하지 못 했다. 또 오히려 창업을 하면서는 안 좋은 일들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다보니 오히려 내가 내 기분들에 대해서 안정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좋은 일도 크게 좋아하지 않고, 나쁜 일도 크게 나빠하지 않는 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 같다.
그래서 정말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고, 슬퍼할 때 슬픔을 느끼고, 지금 나의 삶이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해서 세운 목표였다. 과연 나는 언제 행복해질까? 내가 목표한 것들을 모두 이뤄야만 행복해질까? 그럼 그 사이 과정은 정말 계속 불행해야 할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행복이라는 것이 너무 주관적이라서, 행복했다가 불행했다가는 너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2022년 8월에 좋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 있어서 가지고 와본다.
나는 지금도 내가 미래에 꿈꾸는 삶을 살고 있고, 아직도 내가 꿈꾸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내 꿈속에서 살고 있어서 행복하다. 나는 정말 감사한 게 많고 행복한 사람인 거 같다. 하지만 이제는 내 주변 사람들도 행복하기를 원하기에 안정적인 삶을 바탕으로 계속 꿈을 찾아가고 싶다.
그리고 5번 째는 통기타 취미가지기와 노래 연습하기, 6번 째는 정말 좋아하는 연애하기이다. 아쉽게도 기타는 구매하였으나 연습할 시간이 없었고, 연애는 마음의 여유가 있지 못 했다. 최근 들어서 마음의 여유도 되찾고 있고, 상황들도 정말 좋아지고 있으니깐 올해 목표로 넘겨서 잘 이루어내고 싶다!
최근에 10배의 법칙을 읽고 있는데 크게 2가지를 강조한다. 첫 번째는 10배 더 크게 꿈꿔라 (사실 이것만 이야기 했으면 그냥 그랬을텐데) 두 번째는 10배 더 노력해라이다.
그러면서 다양한 예시를 이야기해주는 데 그 중에서 연애도 있었다. 나는 사업을 통해 정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고, 그걸 하고 싶은 사람이지만 그 이전에 앞서서 정말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 인생에서 사업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니,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10배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그 밖에도 꿈꿔왔던 네이버 SEF2022 연사로 참가하기, 새로운 사무실에서 새로운 시작, 내가 꿈꾸는 집으로 이사한 것 등등 이야기 할 게 많지만 그것은 최근에 하고 있는 월간 회고에 자세히 적혀있다.
월간 회고는 정말 내가 이룬 것이 아닌 내가 그 때 그 때 느꼈던 감정들을 다룰 수 있어서 너무 좋다!
2022년도에는 힘든 일들도 너무 많았지만 그러는 과정을 통해서 정말 나에 대해서 다시 찾아간 느낌이다. 2023년도에는 정말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서 더 이상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것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안정을 주면서 내가 정말 목표했던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0년 회고를 쓴 지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021년 회고를 적는다는 것이 어색하다.
또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적지 못할 것 같아서 올해는 조금은 더 빠르게 2021년도 회고를 마무리 해보려고 한다. 그래야 또 새롭게 시작을 할 수 있을 테니깐...
생각해보면 매년 이루고자 했던 것들이 많았던 거 같다. 하지만 또 1년을 살아가면서 연초에 목표하였던 것들을 돌아볼 시간이 많지 않았다. 사실 아쉬운 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연초에 목표하였던 것들을 매주 매주 보면서 체크해야 하지 않았을까?
1년이 다 끝난 다음에 돌아보면, '내가 이런 것들을 목표했었구나.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와 같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 마디로 표현해서 내가 올해 목표하였던 가장 큰 것은 "나의 그릇이 작아지지 말자"였다.
분명 과거에는 꿈이 컸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알게 되고 그 꿈들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나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꿈들을 꾸기 시작했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꿈들을 꾸다 보니 더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과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에 아무 생각 없이 무대포로 시도했었다면 이제는 여러 가지 고려사항 (나의 나이, 현실적인 생활 등..)등을 생각하다 보면 포기 하기 일수였다.
아무튼 올해는, 스스로 그릇이 작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올 한 해 "나의 그릇은 작아지지 않았는가?"라고 질문하면 그러기 위해 발악했다...로 정리하는 게 맞다.
결국 잘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퇴사했고, 새롭게 창업이라는 길로 다시 본격적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이젠 개발 일지가 아니라 창업 일지를 적어야 할 판이다.)
왜 갑자기 그런 선택들을 하게 되었는지 이제 이야기를 해보자.
올해 역시 여러 가지 카테고리에서 각각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있었다.
크게 보면
개발자 학습 : 개발자로서 회사에서 인정받기 책 읽기 : 매주 1권씩 책 읽고 정리하기 건강 : 언제 어디서나 부끄럽지 않은 몸 유지하기 사업 : 수익 창출 및 팀 구성하기 수익 : 월 수익 1,000만 원 넘기기 비전 찾기 : 내 인생에서 오르고 싶은 산 찾기
등 여러 카테고리별로 이루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럼 하나의 카테고리씩 회고하면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1. 개발자 학습
아무튼 나는 현재 개발자를 하고 있고, 개발자로서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밥값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실 이게 내 꿈을 찾고 그릇이 작아지지 말자는 것과는 별개로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연초에는 판 관리 admin이라고 하여 다노샵의 전체 페이지를 섹션 형태의 블록 형태로 쌓을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지금 다노샵에 들어가 보면 보이는 메인 페이지가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특별하다. 보통 웹사이트의 경우 한 번 제작을 한 이후에는 text 혹은 이미지, 상품을 변경하는 정도에서만 변경이 가능하지만 현재 다노샵은 메인 페이지를 운영팀에서 직접 관리하고 핸들링할 수 있다. 홈페이지의 모든 구성 요소들을 섹션화하고, 운영팀에서 원하는 대로 수정하고 위치를 변경까지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이런 것을 통해 정말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대부분의 프로모션 페이지들은 직접 제작하여 사용하고 계시고, 아래와 같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페이지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저것을 운영팀에서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관리자 페이지를 vue.js를 활용해서 제작하였고 관련 모델링 작업, api 작업등을 맡아서 진행하였다. 결론적으로 다노샵 2.0이라고 할 만큼 큰 변화가 있었고 정말 다양한 시도들이 개발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다. => 사실 굉장히 큰 작업이었고 블로깅을 하고 싶었지만 조금 민감한 부분이라, 따로 블로깅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4월달 사수분이 퇴사를 하신 이후에는 다노샵을 온전히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 동안 사수분의 그늘 속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인턴 한 분과 열심히 다노샵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올 하반기가 되자마자 진행하였던 대망의 새벽 배송 작업
사실 새벽 배송 자체는 이미 물류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어서 큰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그것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 다노샵에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리티컬 했던 것은 사수분이 없는 상황에서 온전히 진행을 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예민하고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그래도 새벽배송 관련해서는 블로깅 해놓은 글이 있어서 대체한다.
다양한 작업들을 하면서 회사에서 내가 얼마나 개발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고, 또 개발자로 온전히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들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연봉이라는 구체적 수치로 다가왔다.)
재미있었다. 재미있었고, 또 회사에서 내가 개발자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현재 내가 받고 있는 연봉만큼 회사에 기여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 자문하고 압박받아야 했다.
결론적으로는 새벽배송 이후에 회사에서는 더 이상 커머스 쪽으로는 develop을 안 하겠다고 픽스하였고, 자연적으로 월급루팡이 될 수밖에 없었던 나는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에게는 돈도 중요하지만, 시간도 중요하기에 조금 더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다양한 큰 피쳐를 온전히 도맡아서 진행하면서 개발자로서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2. 책 읽기
책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사실 매번 책을 읽어야지 생각은 하지만 생각보다 읽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쌀가게를 마무리하면서 뽑았던 제일 큰 패착 요인도 결국 내가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성장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그래서 정말 책을 지속적으로 읽고 학습하고 성장하자라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게 쉽지 않다.
올해 책 읽기와 관련해서 가장 와닿았던 말은, 꿈을 꾸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재료들이 필요한데, 그 재료들을 만드는 방법이 바로 독서라는 것이다. 너무 공감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또 시간이 나면 유튜브를 보는 것이 편하지 책으로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결국 독서를 습관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결국 책 읽는 습관을 올해도 만들지 못했다. (핑계를 대보자면 예정에 없던 '오늘부터 개발자' 책을 올해 1년 가까이 적으면서 책이 보기 싫어졌다....)
책을 많이 읽진 못 했지만,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책 읽기는 아니지만 ... 반대로 어쩌다 보니 책이 나왔다ㅎㅎ 이게 올해 제일 잘한 일 중 하나이다.
올 해가 시작할 때만 해도 예정에도 없었지만, 그래도 결국 시작했고 마무리했다. 이건 책이 아니고 정말 피 땀 눈물이다.ㅠㅠ 이 책을 통해서 개발자를 하고자 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임팩트를 미칠 수 있으면 좋겠다.
3. 건강
건강은 우리 삶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다. 그래서 더더욱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life style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수치로 만드는 것은 또 쉽지 않다.
아무튼 꾸준히 운동하기 위해 노력하였던 것 같다. (매일 30분 정도) 마라톤 풀코스와 철인 3종 경기 킹코스를 나가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연기되어서 이것에 대한 달성도 못한 것 같다.
아 그래도 친구랑 같이 한강 왕복 수영을 했던 것이 유일했던 것 같다.
열심히 했다고 표현하기에는 작년이 더 많이 해서.. 할 말이 없다. 제일 큰 이유는 작년에는 자전거를 정말 많이 탔는데, 올해는 이사를 오면서 자전거를 거이 타지 못했다.
아쉽지만 내년에는 좀 더 본격적으로 유의미한 수치들을 설정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되겠다.
4. 사업
내가 개발자를 시작한 이유는 소프트웨어 관련된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부분은 정말 많은 곳에서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서 나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무조건 실행해보려고 하며, 과거에는 개발을 하지 못해서 그냥 넘어갔던 많은 부분들이 개발자가 되고 나서 해소되어서 좋다.
작년 2020년 회고에 이런 말로 마무리 한 부분이 있다.
바로 꽁술이라는 서비스
1월 라이브를 목표로 달렸던 여러 가지 이유로 3. 1일 날짜에 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꽁술 비즈니스에서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점은 바로 오프라인 소상공인 매장들의 마케팅 문제였다. 실제로 오프라인 소상공인들이 매장 오픈 후 할 수 있는 마케팅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마케팅 업체를 통해 SNS 마케팅 등을 진행해도, 그 리텐션을 측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내가 쌀가게를 운영하면서 마케팅 업체를 통해 마케팅을 진행하고도 불만족했던 이유였다. 반면에 제일 효과가 좋았던 마케팅은 우리 매장을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리워드를 주는 것이었다. (전단을 나눠주고 전단을 가지고 매장에 찾아오면 쌀 1kg 증정)
그래서 이것을 착안하여 어플을 통해 오프라인 매장에 손님을 보내주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손님에게 리워드를 주는 형태를 생각했다. 모든 카테고리를 해소할 수 없기에 먼저 주류 분야를 타겟하였다.(우리 3명 모두가 술을 좋아했다.) 그리고 주류 카테고리는 술 1병이라는 명확한 리워드가 되었다.
월 4,900원 멤버십 형태로 운영되고,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은 꽁술 제휴점에 방문할 때마다 술 1병을 제공받는 아주 깔끔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3월 달에 오픈할 당시에 꽁술 제휴점은 서울 내 50개 정도였다. 그때 제일 많이 들었던 고객 의견은, 멤버십을 가입하기에 너무 제휴점이 적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말에 너무 공감했고, 최대한 제휴점들을 많이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직접 퇴근 이후에 발로 뛰었고 어느 정도 시스템화를 거쳐서 영업을 해줄 수 있는 분들을 뽑았다. 그리고 그분들이 영업을 맡아서 진행해주셨다.
제휴점은 쭉쭉 늘어서 현재는 600여 개가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복병이 숨어있었다.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 6월부터 시작한 거리두기는 우리 팀을 쪼여왔다. 기존에 있었던 고객들도 언제 매장을 방문하게 될지 모르겠다면 떠나갔다. 그리고 술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경되었다. 보통 술을 마시면 1차, 2차, 3차 이동하면서 마셨지만 더 이상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값 문제가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대학생들이 2학기에도 학교를 가지 않은 것도 영향이 컸다. (꽁술의 주 타겟은 술값에 예민한 대학생)
그러던 중 정말 크리티컬하게 7월쯤 카카오에서 운영하던 꽁술 채널이 주류 홍보 이슈로 삭제되었다. (웹으로 만들어서 카카오 채널을 통해서 꽁술에 유입되고 있었다.)
이제 고객들은 들어올 수 있는 경로를 잃었으며 채널에 모아놓았던 2000명 이상의 고객들도 한순간에 잃었다... 너무 답답한 시간들이었다. 바로 앱을 만들어서 출시하고 싶었지만, 앱을 만들기 위해서 다시 공부해야 했고, 그때 다노에서 새벽배송을 맡아서 진행해야 했기에 정말 여유가 없었다.
결국 새벽배송 이후에 퇴사까지 해가며 몰입하며 앱을 만들었지만, 거리두기 단계도 개선되지 않았다.
현재 꽁술은 play스토어와 앱스토어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
play스토어
앱스토어
결론적으로 우리 팀은 와해되었다. 제휴점들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멤버십을 무료로 변경하면서 운영하기로 결정했지만, 이 결정을 내리고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돈과, 시간 그리고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아쉬웠다. 좋은 서비스인데, 고객들을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다. 아직 개선할 수 있는 점들도 많다. 그리고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도 많다. 그렇게 나는 6개월이라는 시간과 내 퇴직금을 꽁술이라는 서비스에 더 몰입해보기로 하였다. 그래야 아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내년 상반기 6개월 간 나는 나의 시간을 온전히 꽁술이라는 시간에 몰입하고자 한다. (짧게는 1월 2월 3월 3달 동안 좋은 수치들을 만들어내고 4월에는 프라이머에 seed투자를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5. 수익
월 수익 1,000만 원 벌기. 올해 목표로 하였던 것들 중 하나이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사업이지만 그것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바로 가족이다. 나는 정말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고,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사업적으로 무언가를 크게 이루더라도 정말 슬플 것 같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그 안정적인 가정을 위해서는 돈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기에 수익에 집착했던 부분도 있다.
하지만 올해 내가 생각했던 꽁술 비즈니스에서 원하는 수치들이 나오지 못하면서 이것 역시 달성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크게 깨달은 부분이 있어서 내년부터는 더 이상 월 단위 수익에 목메지 않으려고 한다.
1. 매달 들어오는 돈이 많아도 내 생활은 달라지지 않더라. (내가 생각보다 물욕도 없고, 딱히 사고 싶은 것도 없다. 사실 한 달 100만원정도면 내 생활은 충분히 괜찮다.)
2. 사람마다 돈을 벌 수 있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에 집중하는 순간 계속 현재 나보다 돈을 많이 벌고 있는 남과 비교하게 되었다.
3. 누군가는 주식투자를 통해서 돈을 벌고, 또 누군가는 코인을 해서 돈을 벌듯이, 나는 사업을 통해 돈을 벌고자 하고 이것은 시간이 꽤나 걸리는 일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사업에 더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아무튼 목표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고, 이게 내 삶을 크게 바꿔주진 못 했다. 그래서 이 목표는 나의 연간 목표에서 이제 제외하려고 한다.
아마 나는... 많은 돈을 벌기까지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릴 것 같다... ㅎㅎ 하지만 확신도 있다.
6. 비전 찾기
사실 이것은 올해 세웠던 가장 큰 목표기도 하다. "그릇 작아지지 않기"와 일맥상통하다. 매일 10분 20분씩 나의 비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는데, 또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올해 와닿았던 말 중에서 "시간이 있어야 생각을 할 수 있다."라는 말이었다.
나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아니 정확하게는 여유가 없었다. 정말 쉴 새 없이 일들이 몰아쳤고, 그 안에서 나는 여유를 발견하지 못 했다. 분명 시간은 있었다. 하지만 여유가 없었다.
그 여유를 가지기 위해 퇴사하였지만, 무려 2개월이라는 시간을 그동안 내가 벌려놓았던 일을 처리하는 데 사용하였다. 도대체 일들을 왜 이렇게 많이 벌려놓았는지 처리하지도 못할 일들을 모두 기회라고 생각하고 시작하다 보니, 정말 너무나도 일이 많아졌다. 이것은 결국 퀄리티 저하로 이어졌다. 일을 벌이고 어떻게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내 장점이지만 이것 때문에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하는 일들이 지속되었다.
그래도 그 여유와 시간을 갖기 위해서 퇴사까지 결정하였으니깐 위에 이야기했던 대로 '나의 그릇이 작아지지 않기 위해 발악했다'로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래도 나름 정리하는 시간들을 틈틈이 가졌고 현재 나의 꿈은
'사람들이 느끼는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여,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는 것. 이 과정에서 기업이라는 것을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의 더 큰 문제들을 해결하여 더 큰 임팩트를 주는 것. 기업의 CSR로 UN에서 선정한 SDGS의 문제들에 대해 도전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
이라고 정의 내렸다. 아마 매년 조금씩 수정될 수 있지만 한 번 픽스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알기에, 유의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는 기후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보다 기후 문제가 정말 심각했다. 아래는 인상 깊게 읽은 책!
이 문제를 나중에 내가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7. 기타 올해 유의미했던 것들
7.1 책 출간
올해 시작하자마자, 출판사에 아는 동생의 유혹에 못 이겨서 ('오빠 책을 내면 정말 오빠가 원하는 대로 많은 사람들한테 임팩트를 줄 수 있어') 개발자 입문과 관련된 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정말 책을 적는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매일 아침 출근 전에 30분 ~ 1시간씩 적었고, 결국 10개월이 지난 11월에 책이 나올 수 있었다. 이 책 때문에 포기했던 것들도 너무 많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쁘다.
사실 책이라고 하면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한 번 적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우연찮은 기회로 시작했던 것이 이렇게 잘 마무리가 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네이버에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고, 강남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칸에 내 책이 올라가고, 밀리의 서재에서는 무려 종합 베스트 100위 안에 들어갔다!)
이 책이 조금 더 유명해져서, 정말 개발자에 관심 있는, 그리고 개발을 시작하려는 분들이 모두 보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7.2 밑바닥부터 시작한 누나의 유의미한 성공
우리 집은 4남매다.(그래서 과거의 고구마를 팔 때 브랜드명도 4남매농장이다.) 그리고 그 4명은 모두 농촌에서 농사일을 열심히 하면서 자라났다. (수능 시험 직전 주말까지 밭일하다가 갔으니깐 뭐 할 말은 다 한 거 같다.)
집안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 못했기에 정말 일은 많이 했지만, 그래도 정말 부모님이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난 이게 정말 나의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가난했지만 가난한 걸 잘 몰랐다.)
하지만 5년 사이에 4명이 연년생으로 있으면서, 4명이 동시에 대학을 가야 했고, 이어서는 4명이 또 결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던 우리는 조금 더 일찍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교육은 최소화해야 했고, 대학은 무조건 국립대, 그리고 스스로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녀야지만 다음 사람도 무사히 대학을 갈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혼자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게 많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4명이 모두 그랬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상황을 원망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결정 내리고 책임지기 위해 노력했다. (이 부분을 부모님이 잘 이해시켜주신 것 같다.)
그래도 그런 상황에서 누나 2명 모두 박사까지, 그리고 공부에 큰 뜻이 없는 나와 동생은 학사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중, 유달리 옛날부터 공부를 잘했던 둘째 누나의 인생은 조금 더 쉽지 않았다. 서울의 좋은 대학을 붙었음에도,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지방 국립대에 진학했고, 결국 학교가 맞지 않아서 반수를 본 뒤 유니스트에 입학했다. 유니스트에 입학하고 대학원을 간 뒤에도, 5년 동안 실적 하나 없어서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5년 동안 실적 한 번 없어서 박사를 포기할까 했지만 결국 누나는 이루어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한 번 내기도 쉽지 않다는 화학계 쪽에서는 유명한 JACS라는 논문을 두 달 사이로 2편을 연달아 내더니 졸업 이후 미국에서 연구를 이어갔다.
그리고 1년이 조금 넘은 뒤 올해 초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겠지만, 본인이 10년 이상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루어냈기에 정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정말 대단하고 한편으로 우리 누나지만 너무 존경스럽다. (그 의미로 오늘 아침에도 설거지시켰다)
누군가는 결과만을 보고 천재 아니냐, 혹은 탁월하다고 했지만 옆에서 봐 온 누나는 너무나 평범하고 정말 노력형이었다. 누나를 보면서 탁월함은 머리가 아닌 노력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7.3 여동생 챙겨주기
나에게는 정말 귀여운 여동생이 있다. 현재는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데, 매년 여동생에게 선물을 챙겨준다. 벌써 5년 가까이 된 것 같은데, 하나의 연래 행사 같은 느낌이다. 사실 첫 시작은 내가 청춘정미소 쌀가게를 하고 있을 때 여동생이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었다. 그리고 하필 그 시기에 일본에 정말 큰 지진이 일어났고, 여동생은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때 느꼈던 허무함은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분명 나는 상황이 괜찮았음에도, 여동생이 알아서 잘 지내겠지 하며 용돈 한 번 주지 않았다. 분명 타국에서 힘들었을 텐데... 그래서 그때부터 단순히 마음이 아닌 여동생을 잘 챙겨줘야 되겠다 생각했던 거 같다. 매달 10만 원씩 적립한다 생각하고 상반기 여동생 생일에 용돈 한 번, 그리고 연 말에는 본인이 필요한 것을 선물해준다. (근데 이게 점점 금액이 커지는 게 문제)
아무튼 올해도 그 시기가 돌아와서 여동생에게 연락했다.
ㅋㅋㅋㅋㅋ 진짜 혼자 타국에서 일한다고 쉽지 않을 텐데, 너무 잘하고 있어서 대견하고 귀엽다. 올해도 여동생 잘 챙겨줄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내가 해내서 다행이다. (백수 걱정해주고 쿨하게 선물은 잘 고르셨다)
7.4 다양한 강의 활동과 수업
올해도 다양한 강의 활동들을 통해 조금 더 사람들이 쉽게 개발자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오픈놀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10주동안 강의를 진행하였다
진행하였던 특강 - 원티드 :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었다.(7.8) / 오늘부터 개발자 입문 관련 특강(12.14) - 대구광역시 : 진로탐색 라이브 토크 (4.15) - 진학사 캐치 : 스타트업 개발자 성장 A to Z (9.7) - 스파르타코딩클럽 : 직장인들을 위한 it기초지식 수업 (12.15) 및 항해99 취업 관련 특강들(7.1 , 10.1) - 성남 일자리 센터 강의 : 개발 입문자 관련 상담 (12.7) - 구로청년이룸 개발 관련 특강 (6.19) - 야콤 태크캐스트 연사 : 개발자 이력서, 포트폴리오 어떻게 쓰는게 좋을까? (5.11) - 마포청년나루 : 비전공자의 개발자 취업 (2.25) - 오픈놀 시리즈 D 수업 튜터 (9.4 ~ 11.20) - 인프런 : 오늘부터 개발자 강의 촬영 및 업로드 - 바이더북 : 오늘부터 개발자 관련 요약강의 촬영 (12.9)
7.5 기타의 기타
부모님 두 분 다 올해도 건강하게 지나가시고(제발 이제 농사 좀 줄이세요 ㅠㅠ), 큰 누나의 두 번째 조카가 태어났다. ㅎㅎ 첫 번째 조카에 이어서 또 남자다 ㅎㅎ. ㅠㅠ 우리 누나가 걱정되지만 아무튼 또 조카들 잘 키우고 있는 것 같아서 대단하다. 벌써 두 아이의 엄마라니...! 올해도 모두 건강하게 지나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올해 최종 회고와 내년 개선할 것들
올해도 쉽지 않은 한 해였다. 많은 것들을 못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또 올 한 해 잘 보낸 것 같다. (무엇보다 건강하니깐 그걸로 됐다.)
그리고 크게 깨달았던 것들은, 집중력을 분산시키면 결국 모든 것의 결과물들이 좋게 나오는 것이 어렵다는 것.
그래서 내년에는 정말 꽁술이라는 서비스에만 크게 집중을 해보려고 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딴 곳에 시선을 더 이상 돌리지 않고 정말 6개월은 집중을 해보려고 한다. 이젠 정말 내 서비스를 잘해보고 싶다.
올해 내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떤 challenge를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는 하루 하루를 보면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1년이 끝난 뒤에 명확하게 보여진다. 매일 매일은 크게 이루는 것이 없지만, 이 기간이 쌓이면 내가 어떤 일들을 이루었는지 보이게 된다.
예기치 못했던,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또 매년 적을까 말까 고민하지만, 기록해놓지 않으면 반성도, 개선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도 2020년을 마무리 하면서 회고글을 적어 본다.
나에게 2020년은 크게 4가지 분야에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개발자로서 인정받기
내가 목표한만큼의 수익 창출하기
건강 챙기기
새로운 비즈니스 도전하기
그리고 각각의 목표들은 세부 목표들로 나누어졌다.
개발자로 인정받기
연봉 협상에서 00 금액만큼 제안 할 수 있는 실력 갖추기
내가 목표한만큼 수익 창출하기
이전 사업하면서, 그리고 개발 공부하면서 생겼던 모든 빚 청산하기
매월 00 금액만큼 수익 창출하기
돈 쓰는 습관에서 돈을 모으는 습관으로 바꾸기
건강 챙기기
철인 풀코스 완주하기
마라톤 풀코스 완주하기
바디프로필 촬영하기
새로운 비즈니스 도전하기
팀 결성 하기
새로운 사업 challenge하기
그렇게 책상 앞에 상반기 / 하반기로 나누어진 계획표를 뽑아서 코팅지에 코팅해 붙여놓고, 올 한해가 시작되었다.
1. 먼저 내가 올 한해 하고자 했던 가장 큰 것은 "개발자로서 인정 받기" 였다.
분명 다른 분야에서 개발을 시작했고, 그 동안 다른 일을 해왔던 만큼 내가 다른 것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내가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지금에는 별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현재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을 하고 있고, 작년이야 어떻게 운이 좋아 취업을 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정말 개발 실력으로, 인정 받고 싶었다. 그냥 쌀 팔다 개발자가 되어서, 강의나 하고 개발은 뒷전이다라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스스로 진지하게 개발을 하고 있고, 개발자로 인정 받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수치는 "연봉"이라고 생각하였다. 1년 전에는 그냥 신입이라는 평균에 맞추어서 연봉이 측정되었지만, 아무튼 1년 뒤에는 정말 나의 실력으로 회사에서도 연봉을 측정할 것이고, 그것이 내가 개발자로서 인정을 받았는지, 아닌지가 가장 명확하게 판단 될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올 한해 개발자로 인정 받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했을까? 사수분께 들은 이야기지만, 개발자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2가지 중에 한 가지는 해야 한다고 하였다.
주어진 업무를 빠르게 파악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혹은 더 빠르게 해결하거나
업무를 조금 느리게 하더라도, 내놓은 결과물이 늦은 게 이해가 될 만큼 잘하거나
그리고 내가 개발을 시작하기 전에 조언을 구했던 개발 5년차의 형님은 이렇게 이야기 해주셨다.
"신입에게 바라는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업무를 해내는 것, 경력에게 바라는 것은 그 업무를 빠르게 문제 없이 해내는 것. 업무를 해내는 것은 가장 기본이다."
그렇다. 일단 회사에서 업무를 한다면 주어진 업무를 잘 해내야하고, 그게 예상한 속도보다 빠르다면, 인정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업무를 빠르게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일 큰 것은 바로 회사의 기존 코드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코드를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다노샵 쇼핑몰의 workflow를 따라가면서, 어떤 api들이 호출이 되고, 해당 api에서 어떤 함수들을 처리하고, 장바구니, 구매하기, 구매 완료, 그리고 이후 배송, 반품 등의 전체적인 flow를 따라가면서 정리하였다. 이 작업은 업무시간에는 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어 (보통 주말에 많이 하였다.) 해당 함수들을 반복해서 보았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업무를 바라보았을 때 어디 부분을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내가 미리 해당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업무 일정을 조율할 수 있었다. 정말 내가 이렇게 성장 하기까지 옆에서 나의 성장에 맞는 적절한 task를 주면서 가끔은 술도 사주시면서 키워주신 사수분의 영향이 도움이 컸다. 올해 7월에는 조직이 개편되면서, 다노샵 서버 팀에도 다른 멤버들이 생겼지만 그 전까지 2019년 7월부터 2020년 7월까지 1년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하나를 데리고 (말만 잘하는...) 다노샵 서버를 아무 이상 없이 이끌어 가신 것은 정말 ... 지금 생각해도 그저 갓;; 이 글을 보지 않으실 거지만 정말 너무 감사한 거 투성이다.ㅠㅠ 이제서야 느끼는 것이지만 앞에서 사람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일을 잘 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ㅎㅎ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조금 긴장을 늦추었을 때, 큰 이슈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주니어 개발자의 Django ORM 수난기] daeguowl.tistory.com/171
이 밖에 크게 기억에 남는 작업들도 있다.
다노샵 뒤에서 돌아가던 task들이 모두 리눅스의 Cron으로 돌고 있었는데 이것을 모두 celery로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하여 뒤에서 돌아가던 업무들의 효율을 높인 것,
SCM팀에서 매일 진행하던 출고 작업을 대폭 개선하여 12시에 정오 출고를 진행하면 항상 점심을 따로 먹고 하던 SCM팀이 크루들과 같은 점심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
기존 재고 기준들을 변경하여, 하위 실재고를 추가 실제 재고와 동일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
상품이 품절 되었을 때 예약판매를 진행할 수 있도록 기능을 추가한 것,
마케팅 프로모션 업무를 모두 자동화하여 해당 시간에 일괄 시작될 수 있도록 한 것,
고객들의 택배 관련된 CS를 해결하기 위해 30분 마다 돌아가는 택배 크롤러를 만든 것 등이 있다.
아 참 그리고... 무엇보다 큰 기억에 남는 매거진 리뉴얼 작업 ㅠㅠ (이건 정말 따로 글도 적었다.)
프론트를 한번도 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에서 돌아가야 하는 프론트를 만드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스스로에게도 많은 challenge가 되었고, 나 스스로도 개발자로서 한 단계 더 뛰어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튼 정말 다양하고 많은 일들을 했지만 내가 올 한해 다노샵 서버 개발자로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임팩트 노트(다노에서의 평가는, 스스로 적는 임팩트노트와, 주변 동료들의 피어리뷰로 이루어진다.)에 적은 마지막 문장이 가장 적합하다.
"사실 위의 업무들은 스스로의 평가를 위해 나열한 부분이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제가 이룬 가장 큰 성과는 제 스스로 다노샵 서버개발자로서 다노샵에 애정이 생기고, 다노샵에 에러가 발생하면 가슴이 아프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다노샵에 무슨 일이 생기면 최우선으로 해결하기 위해 마음으로서 노력하였다는 점입니다."
위의 말은 단순히 좋은 평가를 위해 적은 말이 아닌, 정말 내가 스스로 1년 동안 다노샵 개발을 하면서 가장 크게 변한 점이었다. 에러가 나면 "사수분" 혹은 "내"가 봐야했기에(그렇기에 에러를 봐야하는 핑계로 스마트워치도 구매해서 늘 차고 있었다.) 정말 어딘가를 갈 때는 꼭 노트북을 가지고 다녔고(처음에는 내가 해결 할 수 있던지 없던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문제를 보고 전파하는 것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다노샵 서버에도 나의 코드가 점점 많아지고, 내가 만든 기능들이 사람들에게 좋은 임팩트를 미치고, 그렇게 미운정 고운정 보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저런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해야되겠다 의무적으로 생각하여서 하였던 일들이 이제는 마음으로서 자연스럽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1번의 목표는 과연 이루었을까? 사실 1번의 성공 여부를 측정하는 것이 연봉이라고 생각했지만, 연봉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주변 동료들의 피어리뷰였다. 임팩트노트의 경우 내 스스로 한 것들을 적는 것이지만, 피어리뷰는 정말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주는 평가였다. 피어리뷰를 받은 것을 바탕으로 CTO님과 이야기 하면서, 나는 1번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스스로 결론 내렸다. 단순히 연봉으로는, 내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판단하기에는 부족했다. 무엇보다, 나와 함께 일한 동료들의 인정이 나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올 해의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에서, 나는 올 한 해도 또 복지가 되는 동료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 되겠다 다짐했다.
2. 내가 목표한 만큼의 수익창출 그리고 2번 째 목표였던 내가 목표한 만큼의 수익창출 이 목표는... 정말 돈이 없어보니깐 힘들다는 것을 몸소 깨달으면서 생기게 된 목표였다.
분명 쌀 가게를 운영하면서 수익을 창출했었지만, 마무리를 하면서 이것 저것 정산을 하다보니, 금전적으로 넉넉하지 못 했고, 그 상태에서 서울에 올라와 공부하다 보니 정말 많은 빚이 생겼다.... ㅠㅠ
작년 8월 누나에게 마지막으로 돈을 빌리면서(그래도 이렇게 돈을 빌려주는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다.) 정말 1년 뒤의 올해 8월에는 다 갚겠다고 약속을 했었다.(사실 이거 자체가 그냥 직장 생활만으로는 절대 불가능 했다.)
정말 운 좋게도, 군대 복학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사업을 해왔기에 일반 대학생들에 비해서는 여유로운 편이었고, 딱히 돈에 대해서 크게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무언가 사고 싶은게 있으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구매하였다. 그랬던 내가 정말 돈에 대해서... 이렇게 힘들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결국 절대 하면 안 된다는 카드깡?(갤럭시 폴드를 카드로 6개월 할부로 구매한 뒤, 현금으로 팔아서 사용하였다.. 정말 갖고 싶었던 폴드였는데, 기계는 없고 매달 돈이 나가는 것이 정말 너무 슬펐다.) 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사업을 하면서도 돈보다는 더 큰 비전을 항상 쫒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이 없으니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돈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권도균 대표님의 이야기가, 내 뼈를 때렸다.
"돈 보다 중요한 가치들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그 중요한 가치들을 온전치 추구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생존을 위해, 그리고 돈 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돈을 벌어야 되겠다 생각했다. 아무튼 약속은 했고, 올해 계획에 넣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단순히 돈은 버는 행위 자체를 떠나서 내가 좋아하고 의미있는 일들을 하면서 수익 역시 창출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매주 일요일 스파르타 코딩클럽 튜터 활동을 하였다.
원래는 퇴근 후 매주 2회 하던 것으로 처음 시작하였는데, 회사 업무가 어떻게 될지 몰라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한번 진행한 뒤 부터는 주말로 변경하여서 지속적으로 튜터 활동을 하였다.
튜터 활동을 하면서 나 역시도, 수업 내용 자체가 어렵진 않았지만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개발 수업 준비를 해야하였고, 또 수업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올해 3월부터 매거진을 진행하게 된 9월까지 나는 총 6개월간 3개 기수, 24분의 튜터 활동을 지속하였다. (매주 일요일은 튜터활동으로 시간이 순삭되었다.)
몇 몇 분은 아직도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지내고 있다. 분명 수업을 가르치러 갔는데, 돌아보니 내가 더 많이 배웠다. 너무 좋은 추억이다.
그리고 탈잉 수업을 지속했다. 개발자를 처음 준비하면서 너무 고생했었기에, 누군가가 개발자를 하고 싶어하시는 분이 있으면,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했고, 내 수업이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그렇게 스파르타 코딩클럽이 없는 격주 토요일 저녁에는 탈잉 수업을 진행했다. (그래서 나에게 휴일은 격주 토요일 박에 없었다.ㅠㅠ) 정규 시간은 6시 ~ 9시까지 3시간이었는데, 하나라도 더 알려드리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항상 30분 ~ 1시간씩 넘기 일쑤 였다. 그래도, 이런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많은 분들에게 정말 과한 평가를 받았다. 탈잉에서 우수 튜터로 뽑히기도 하였다.
그리고 주말에 시간이 되서 듣지 못한다는 분들을 위해 해당 수업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 인프런에서도 수업을 오픈하였다. 인프런에서는 "개발자 취업 입문 개론"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탈잉과 인프런 모두 후기가 100건이 넘었고, 평점은 4.9점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내 수업을 듣고 올해 취업했다고 연락오신 분이 정말 너무 많다. 이런 연락을 받을 때 마다,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하다.
사실 내가 한 것은, 방향만 잡아 준 것이지, 이 분들이 개발자로 취업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 하셨는지, 생각만해도 정말 대단하다. 나는 항상 수업 때, 수업을 들을 때마다, 실제 개발 공부를 해가면서 궁금한 게 더 많을 것이라고, 취업 전까지는 항상 편하게 연락을 하시라고 이야기 드리고(대신 취업하시면 밥을 사달라고...) 지금도 매일 한 두분씩은 상담을 도와드리고 있다.
사실 탈잉과 인프런에서 하고 있는 개발자 취업 입문 수업은, 수익 창출보다는 나의 꿈 중 하나인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의 일환으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6월, 7월 2달의 시간을 정말 힘들게 하였던... 마이비스킷에서의 비전공자를 위한 IT기초지식 수업 촬영... 이렇게 공식적으로 올라가는 수업을 처음 촬영 해보았는데, 마이비스킷에서 원하는 퀄리티가 상당히 높아서, 애를 많이 먹었다ㅠㅠ 가격적인 부분(정말 저렴히 하고 싶다)에서 나의 영향력이 거이 미칠 수가 없어서, 사실상 촬영 이후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 했다. 정말 많은 시간을 들여서, 힘들게 혼자서 수업 만들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모든 것을 하였지만 들였던 시간에 비해서 수익을 창출하지도, 많은 분들에게 임팩트를 미치지도 못했다. 항상 잘 될 수 없으니, 그리고 동영상 편집 기술을 익혔으니, 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넘어 간다.
아무튼 계약 기간도 정해져 있었던 것이라, 마지막에는 그나마 없었던 휴가까지 모두 써가면서 완성하였다. 그래도 나에게는 새로운 주제로, 새롭게 공부하면서 도전하였던 것 중 한 개이다.
그렇게 나는 2번의 목표를 이루었을까? 일단 누나와 약속하였던, 8월보다 앞당겨 7월에 누나 빚을 포함한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를 따라 괴롭히던 모든 것들을 성실하게 처리한 것의 결과로, 현재나의 신용등급은 1등급, 점수제로 변경된 신용도 점수에는 1000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였다...ㅎㅎㅎ(뭔가 잘못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내가 계획한 것 만큼의 수익은 창출하지 못 하였지만, 제일 중요했던 1번(개발자로 인정 받기)을 이루기 위해서, 더 이상의 시간을 전략적으로 투자하지 않고 빚을 청산한 문제를 해결한 뒤에는 이외의 시간들은 모두 개발에 투자하였다.
3. 건강 챙기기
건강은 항상 살아가면서 굉장히 중요한 이슈이다. 건강에 대해서는 나의 생각은 명확하다. 옛날에 워낙 고도 비만으로 살아가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기에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15년동안 지속적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사실 다이어트라기 보다는, 규칙적으로 먹고, 과식하지 않고, 꾸준히 운동하기라고 볼 수 있고 나중에 내가 결혼을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정말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기 때문에(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굉장히 큰 인생 목표 중 하나이기에) 나는 건강하고 싶다. 그리고 좋은 컨디션을 항상 유지하고 싶다.
그것을 확인하는 일환으로, 올해 3개의 목표를 세웠다. 제일 먼저 마라톤 풀코스 완주하기 => 개인적으로는 작년 하프 철인대회(수영 1.9km, 사이클 90km, 러닝 20km)에서 뛰었던 20km가 가장 긴 거리였기에, 마라톤 풀코스를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사실 나 같은 경우 위에 이야기 했던대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에 따로 해당 대회를 나가기 위해 준비한다기 보다는 평소 언제 뛰더라도 나의 체력이 저정도는 되었으면 하였다.
물론 알다시피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5월에 접수하였던 풀코스 경기가 취소되어서, 개인적으로 풀코스 까지는 아니지만 30km를 뛰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더 뛸 수 있지만 다음 번 대회에서 42.195km를 뛰기 위해 뛰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올해 9월 예정 되었던 철인 풀코스 경기... 철인 경기는 올림픽, 하프, 풀코스로 나누어진다. 보통 우리가 철인 경기를 한다고 하면 대부분 올림픽 코스이다. 올림픽 코스는 수영 1.5km / 사이클 40km / 러닝 10km 로 이루어져있다. 대략적으로 시간은 3시간~4시간이 걸린다. 여기까지는 평소에 운동을 하였던 사람이라면 도전 할 수 있다.(사실 수영만 끝나고 나면, 사이클은 천천히 자전거타고, 러닝은 걸어도 된다.)
그리고 그 다음이 하프이다. 수영 1.9km / 사이클 90km / 러닝 20km 로 이루어져있다. 완주한다고 가정했을 때 보통 시간은 7시간에서 8시간정도 걸린다. 이때부터는 약간 재미없다... 생명을 깍아 먹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도전해야 한다. 더 이상 즐겁게 할 수 있는 대회가 아니다. 건강하게, 즐겁게 운동하기를 바라는 나에게는 여기까지가 딱 도전적이고 알맞다. (사실 올림픽이 제일 적당하다.) 아무튼 하프를 작년에 도전하여서 완주하였고, 올해의 목표는 풀코스였다.
풀코스는 딱 하프의 2배인데, 수영 3.8km / 사이클 180km / 러닝 42.195km로 이루어져있다. (적으면서 내가 이걸 도전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다.) 완주 한다고 가정했을 때 (포기하는 사람이 정말 수두룩하다.) 14시간 ~ 17시간정도 걸린다. 풀코스는 새벽 6시에 출발해서 밤 12시까지 진행된다. ㅎㅎㅎㅎ 이때부터는 그냥 내 생명이 1년은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참가비도 무려 70만원이나 한다. 적지 않은 돈까지 내면서, 생명을 깍아 먹는 운동을 한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무튼 철인 사이에서는 풀코스까지 해야지 정말 철인이다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고, 나는 올해 도전하고자 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돈까지 다 내놓은 경기가 역시나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었다. 취소가 되었는데 왜 환불해주지 않고 이월시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내년의 목표로 넘겼다 ㅠㅠ
그리고 마지막 3번 째 목표는 바디프로필 찍기였다. 근데 이것도 참 할 말이 많은데... 아무튼 결론적으로는 12월에 촬영하기로 하였던 3달 전 탈장 수술을 받으면서, 2달 이상을 운동을 아예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철인을 같이 하는 형님들과 같이 촬영을 하기로 했던 것이라, 취소 할 수도 없었고 형님들도 그냥 사진이라도 와서 찍고 가라고 해서 정말 사진을 촬영하러 갔다... 이날 만큼 내가 싫었던 적이 없다. ㅠㅠ 평소 몸보다도 2달 넘게 쉬며, 몸이 더 나빠져 있었고, 운동을 하지 못해 살까지 붙어 있었다. 바디프로필을 촬영하며 배가 나온채로 촬영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ㅠㅠ 그렇게 나는 그냥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아무튼 기록으로 남겨놓아야 내년에 비교할 수 있기에, 작게라도 올려놓는다.
그래도 살이 많이 찌지 않은 것에 위로하면서, 내년에는 꼭 제대로 바디프로필을 찍어보고 싶다. 아무튼 수술도 잘 마무리하고 지금은 어느정도 건강을 되찾았으니 이것도 50%는 성공으로 하기로 했다.
4. 새로운 비즈니스 도전하기
내가 지금 개발자를 하는 이유는, 나중에 소프트웨어 쪽으로 창업을 하고자 함이고, 나는 나중에 나의 직업이 꼭 기업가였으면 한다.(기업을 통해서 나의 자아실현을 하고,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 그럴거면 지금 바로 창업하지 왜 개발해? 라며 누군가는 이런 내가 잘못 되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스티븐잡스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점들로 찍혀서, 나중에 다 이어지리라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일찍 사업을 해서 성공하고 싶었으나, 실패를 하면서 내 실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찍 사업을 해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해서 나중에 내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자 했을 때, 나는 잘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회가 되면 지속적으로 challenge하고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나의 비즈니스적으로 목표하였던 것은 팀결성하기와, 새로운 사업 challenge하기 였다.
올 해 초기에는 팀이 없었기에, 되도록 개발을 하지 않고 도전해 볼 수 있는 것들 위주로 도전하였다. (사업 검증 후 개발)
그 중에 올 해 가장 먼저 도전하였던 사업은 바로 "은밀하게 위대하게" 였다. 바로 본인이 가고 싶어 하는 회사의 재직자와 1:1로 매칭하여 궁금한 것들을 해결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예를 들면 내가 "다노"를 오고 싶어한다면, "다노"의 재직자와 만나 미리, 다노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을 현직자를 통해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크레이터링크를 통해 간단한 랜딩사이트를 만들어서 페이스북에 광고도 태우며 도전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 하였다. 나는 보통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좀 더 구체화시켜서 도전해보는 편인데, 나에게 필요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개발하기에 앞서서, 먼저 시장 검증을 한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시장 검증 후 DROP하였다.
그리고 다음 아이디어는 정말 간단하게 시도해본 "메모리즈 프로젝트" 이건 실제 라이브까지도 되지 못 했고, 이런 저런 핑계로 간단한 프로토타입 정도까지만 만들었다. 모바일 추모관을 생각하면 제일 비슷할 것 같다. 간단한 설명이 담긴 첨부
위의 2개는 간단하게 혼자서 해본 것이고, 그 이후부터는 좀 더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서 팀을 꾸려서 도전하였다.(혼자 할 때는 보통 개발 전에 시장검증이 중요했기에 시장 검증 전에는 최대한 개발을 지양하였고, 팀을 꾸린 이후에는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개발 실력을 늘리는 것에 좋았다.)
먼저 비사이드(비사이드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모아주는 플랫폼)를 통해서 결성된 서울숲도비들팀에서 만들었던 매일 매일 학습한 것을 기록할 수 있는 WILT(윌트)이다.
앱을 학습하고 싶다는 목적으로 참여하였던 윌트는 결국 나의 욕심 때문에 벌려 놓았던 일들과 겹치게 되었다. 학습까지 하면서 할 수 있는 시간이 나지 않았고, 팀에는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기존에 하던 백엔드로 넘어가게 되었다. 뭔가 회사에서 하던 업무가 하나가 더 늘어난 기분이었다. 후... 아무튼 일만 너무 많이 벌려놔서 많은 부분 참여를 못하고, 초기에 목표하였던 바를 달성하지 못 하였지만 그래도 끝끝내 마무리하여 라이브까지 할 수 있었다.
윌트는 현재 IOS와 Android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그리고 현재는 대구에서 사업을 하면서 알았던 형님들, 그리고 함께 다노를 다녔던 재건님과 아주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BLC Company라는 멋진 이름도 있다.)
주류 문화를 개선하는게 목표이고, 아이디어의 이름은 "꽁술"이다.
해당 부분에서 나는 웹프론트엔드 쪽을 개발하고 있는데, 매거진을 시작한 9월부터 현재까지 정말 출근 전, 출근 후, 주말을 상관하지 않고 계속 개발을 하고 있다. 개발을 선택하고 그렇게 행복을 잃었다. 쉴 때도 무엇을 하고 쉬어야 할지 모르겠고, 이제는 개발을 할 때가 그냥 제일 마음이 편하다.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 신년인 오늘도 개발을 하고 있다...(난 외롭지 않다.ㅠㅠㅠㅠ)
1월 라이브를 목표로 달리고 있는데, 현재 70%정도 완성되었다. 이것도 라이브가 되면 아래에 링크를 첨부하고자 한다.
이것도 다양한 비즈니스에 challenge하고 이제는 어느정도 안정적인 팀도 결정하였으니, 어느 정도는 성공하였다고 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2020년 올 한해가 갔다. 매년 정말 치열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올 한 해는 스스로 이루고자 하는 것들도 많았고, 굉장히 도전을 많이 했던 한 해였다. 하지만 내년에는 더 이루고자 하는게 문제다...
내년에는 좀 더 자세히 나의 목표들을 세분화 하고, 평가하고, 반성하고,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되겠다.
내년이 기대가 된다. (아니 이것을 2021년 1월 1일날 적고 있으니, 올해가 되겠네) 올해가 매우 기대가 된다.
나에게 올해는 WHY로 시작해서 WHY를 중요시 하는 회사에 입사해서, WHY를 물으며 끝난 해였다.
그 동안 살아오며 2019년 29살이 되기까지 개발을 접해본 적이 없다. 그 동안 해왔던 일은 학교를 다니며 집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온라인으로 팔고, 또 대구 동대구 시장이라는 곳에서 쌀가게를 2년 운영했다.
우리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로 고객도 많았고,프렌차이즈로 키우고 싶었는데.역량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시작할 때는 엄청 어렵게, 그리고 자리 잡을 때는 더 쉽지 않았는데 일이 마무리되려고 하니깐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빚도 생겼다. 그래도 이번 사업을 하면서 크게 2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먼저 옛날에는 성공을 정말 어린 나이에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적지만 같이 하는 가족들이 많을 때는 4명이나 되었고,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회사를 힘들어질 때 책임감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다음 사업은 언제하는지 상관없이 정말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역량을 키워야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다음 사업은 꼭 소프트웨어 서비스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애당초 사업을 시작한 이유가 많은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였고, 열심히 오프라인 쌀 가게를 운영해보니 우리 매장 주변의 2000분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제공해줄 수 있었다.(비록 작은 쌀가게였지만 그런 사명감으로 일을 했었다.) 이 매장을 10년 운영하여 매장이 20개 30개가 되면 4만명 5만명의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삶을 줄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욕심이 더 많았나보다. 소프트웨어 기술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회사들을 보며 그것을 동경했다. 그리고 나는 직접 소프트웨어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마음 먹은 것은 2018년도 1월이었지만 나는 용기도 돈도 없었다. 현실이었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할지도 무슨 공부를 해야할지도 몰랐다. 그러던 찰나에 그 동안 친하게 지냈던 대표님이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해주셨다.(사실 형 동생 사이로 지내며 매우 친한 사이이다) 나를 인정해주고 찾아주는 곳으로 가는 것은 사람의 본성일까? 나를 옆에서 지켜봐주고 그 동안의 모습들을 인정해주었고, 나를 필요로 하였다. 마침 아이템도 너무 관심이 있던 아이템이라 개발공부를 할 수 있는 돈도 벌겸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회사에 들어간지 딱 2달 뒤 출시 직전에 개발팀이 단체로 퇴사하며, 나와 대표님 딱 2명만 남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열심히 준비했던 아이템의 빛조차 보지 못했다.
'지금 나도 나가야해...' 생각은 들었지만 차마 쉽게 나갈 수 없었다. 지금 내가 나가면 정말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월에 회사를 마무리하며 너무나도 힘들었던 시간을 보냈어서, 대표님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컸나보다. 그렇게 대표님과 나 2명이서 미친듯이 일을 했다. 할 수 있는 일들부터, 아니 우리가 생존해 갈 수 있는 일들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2018년도는 대표님과 다시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다행히 일을 성공적으로 풀렸다. 회사 직원이 다시 5명이 되었고, 회사는 다시 정상 궤도에 올라갈 수 있었다.
회사는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만 좋게 마무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마무리는 아주 깔끔했다. 나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고, 대표님과 이야기 한 후 12월 31일부로 회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19년 1월 1일부터 나의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집도 구하지 않았었고, 어떻게든 내가 누울 공간 한 군데는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나의 첫 목적지는 성수역이었다. 성수역에 위치한 코드스테이츠 부트캠프를 수강할 예정이었기에(그때 당시에는 여러 부트캠프가 있는지 조차 몰랐다.) 무작정 성수역으로 향했다.
다행히 하늘이 나를 버리진 않았나 보다. 정말 좋은 가격에 내가 누울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비록 장소는 누우면 움직일 자리가 없을 정도로 좁았지만(화장실까지 합쳐서 3평정도 되었다.) 그래도 잠잘 자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어차피 매일 나가서 공부하고 잠만 잘 생각이여서 별로 상관없었다.
내가 개발자로 공부하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했던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그 동안 모아놓았던 돈들은 9월이 되기 전에 무조건 떨어질 예정이었기에, 그 전에는 반드시 취업을 해야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에 아군이 생겼다. 계속 소프트웨어쪽으로 같이 도전해보자고 꼬셨던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내가 서울로 올라오고 얼마되지 않아 이 친구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목적지는 나의 집이었다.ㅋㅋㅋ 나도 정말 대책이 없지만 이 친구는 더 대책이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 믿고 올라온 친구인데 내보낼 수도 없고 그렇게 우리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최상의 시간 관리를 위해 노력했다. 1월과 2월은 PRE 과정이라고 해서 온라인으로 수강을 진행하는 것이라, 실제적으로는 개인공부를 진행하였다. 그렇기에 시간 관리는 더더욱 중요하였다. 움직이는 시간을 최소화 하였다. 그것은 바로 한 건물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성수역에 위치한 한 빌딩의 코워킹스페이스에서 우리는 공부하기로 결정했고, 그 빌딩의 지하 2층 헬스장을 끊었다. 그리고 점심은 그 빌딩의 2층에 위치한 한식 뷔페에서 해결했다. 우리의 일과표는 심플했다.
매일 5시 30분 기상, 6시까지 헬스장 도착. 그리고 6시부터 7시까지 헬스(체력관리), 7시부터 공부시작해서 11시 30분까지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11시 30분부터 점심식사, 12시부터 다시 공부시작. 6시에 집에서 싸온 샐러드를 먹고 10시까지 공부. 너무나도 심플한 일과였다. 이 일과를 정말 매일 매일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엄청난 양의 공부를 했을까? 사실 나와 나의 친구는 평범한 사람이다. 문제는 너무 많았다. 우리는 너무 재미있는 것을 많이 알고 있었고, 개발 공부가 처음이었으며, 돈이 있었고, 항상 개발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노트북이 필요했다. 그것에 비해 온라인으로 혼자 공부해가는 과정은 너무 지루하고, 실력이 늘고 있다는 생각조차 쉽게 들지 않았다.
"풋살 ㄱ?" 이 한마디에 우리는 곧장 풋살 경기가 있는지 확인했고, 미친듯이 집에 가서 옷을 챙겨 풋살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풋살 경기를 하러 갈 때 우리는 제일 신났고, 풋살은 개발보다 재미있었다. 개발 공부를 처음 시작하기에 모든 것이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구글링과 유튜브를 뒤졌다. 그리고 구글은 우리를 너무 잘 안다. 우리에게 너무나 적합한 컨텐츠를 잘 추천해준다... 그렇게 움직이는 시간을 최소화한 것이 의미가 없이 우리는 유튜브를 시청했다.
우린 나약했지만, 그래도 작심을 잘했다. 우리의 문제점을 파악했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풋살 가방을 가질러 가는 일이 없도록 미리 공부하는 곳에 배치해두었고, 풋살장에 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들을 최소화하였다. 그리고 역시 공부는 책으로 해야한다며 책도 구매하였다. 그리고 3일 뒤에는 또 마음을 먹었다. 하루 종일 공부하는 일은 너무 너무 어렵고 지루한 시간들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 그래프가 너무 잘 맞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사실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을 처음 시작 했을 때 내가 코딩을 잘 한다고 잠시 착각을 하였었다... 그리고 혼자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곧 당황하는 단계를 맞이하였고, 절망하였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이렇게 하면 비전공에 개발을 처음 시작하는 내가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등등
수없이 많은 나쁜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 절망하는 단계는 생각보다 깊고 오래 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에 개발을 많이 포기하게 된다고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나 역시도 그랬지만 뒤가 없었다. 어떻게든 개발자가 되어야 했고, 그래야만 나의 생활이 가능했기에 일단 개발을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3월 달에 본격적으로 부트캠프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코딩 부트캠프는 단기간에 개발자로 양성해주는 학원정도로 생각하면 쉽겠다. 온라인 과정으로 코드스테이츠를 시작했지만 나는 패스트캠퍼스 스쿨 과정으로 서버 과정을 듣게 되었다. 내가 부트캠프를 바꾸었던 무엇보다 큰 이유는 바로 "딥러닝"에 대한 방향성이었다. 지금에서야 이 분야로 한번에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내가 얼마나 노력을 더 해야하는지도 알지만 그때 당시에만 하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딥러닝 분야로 바로 시작을 하고 싶었고, 그럴려면 최소한 "파이썬"이라는 언어를 공부해야 했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딱 그정도였다. 정말 딱 '딥러닝 분야로 가려면 일단 파이썬을 해야 해' 정도...
그에 비해서 코드스테이츠는 자바스크립트을 바탕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파이썬으로 부트캠프를 진행하는 곳은 패스트캠퍼스 스쿨 과정이 전부였다. 파이썬으로 서버 개발자를 양성하는 패스트캠퍼스 웹프로그래밍 스쿨 과정이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하던 친구는 "코드스쿼드"라는 곳에서 새롭게 부트캠프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였고, 이상했던 동거? 역시 마무리되었다.
3월부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하기에 앞서서 "점프 투 파이썬" 이라는 책으로 파이썬 기본 문법을 3번 정독하였다. 그리고 나는 새학기 첫 학교를 가는 것처럼 설렌 마음으로 3월 4일부터 수업을 받게 되었다.
수업은 6개월 과정이었다. 크게 2개월은 파이썬 기본 문법 및 컴퓨터 사이언스 강의, 2개월은 프레임워크에 대한 강의 그리고 마지막 2개월은 팀 프로젝트로 나누어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3월 2일부터 시작해서 프레임워크가 끝난 4개월이 지난 뒤 부터 취업 준비를 하였고, 7월 22일부터 다노에 입사해서 개발자로 시작할 수 있었다.
분명 부족했지만 너무나도 좋은 기회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결론적으로 첫 시작은 인턴이었지만 2020년 1월 1일부로 정식으로 다노 크루로 합류하였다. 예!!!!!
다노는 정말 너무 좋으신 분들이 많고, 항상 자극을 받고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다노는 "why가 정말 중요한 회사이고" 그 "why"가 명확하기에 다들 너무 열심히 일을 하신다. 보통 회사에서의 일은 적당히 하려고 노력하지만 다노에서 내가 느낀 것은 "정말 누구나 열심히 하는 회사" 였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니, 회사가 성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나의 개발자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나의 첫 개발자 생활이 "다노"라서
정말 다행이다. 올 한해는 꼭 다노에서 "인정 받는 개발자"로 성장하고 싶다.
그래서 2020년 과연 쌀 팔다 개발자는 다노에서 인정 받는 개발자가 되었을까요? => 쌀 팔다 개발자 2020년 회고
개발 공부를 시작했다. 다음 창업은 꼭 기술창업을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개발을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심플했다. 내가 개발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너가 지금부터 시작해서 20살부터 아니 그 전부터 개발을 시작한 애들과 어떻게 경쟁할래? 그냥 너가 잘하던 일을 해라 였다.
사실 난 그 친구들과 경쟁하고 싶은 생각도, 개발자에서 1인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나는 내가 개발이라는 일을 접해보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구현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5년 정도로 잡았다. 5년동안 개발자로 정말 열심히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어느정도 구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무튼 나는 개발이라는 것을 29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1월과 2월은 코드스테이츠 온라인 교육을 들으며, 그리고 3월부터는 패스트캠퍼스에서 부트캠프 교육을 들었다. 그리고 총 6개월과정의 패스트캠퍼스 과정 중 4개월의 과정을 끝내고, 다노 서버 개발자로 일을 시작 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이런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 감사하다.
나는 잘하는 개발자가 아니다. 내가 개발에 소실이 있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적성에도 맞지 않고, 잘하지도 못한다는 것이 맞다.
나 역시도 잘하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개발에 대해서 욕심도 생겼다. 하지만 성장이라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번에 나무가 클 수 없고, 모든 일들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누군가는 좀 더 빠르게 성장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좀 더 느릴 수도 있다. 다만 느리더라도 앞으로 성장해 가기만 하면 된다.
내가 29살 인생들을 정리하면서 깨달은 하나가 있다.
나는 비교를 참 많이 한다. 사업을 할 떄는 나보다 더 잘해나가는 사업가와 비교했고, 지금은 돈을 잘 벌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나보다 개발을 더 잘하는 사람들까지도...
하지만 이 비교는 결국 나를 항상 깍아 먹는다. 나의 소중한 인생은 누군가와 비교하기에는 너무나도 짧다. 인생은 복잡하고, 법칙은 단순하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인생은 복잡하지만, 그 안에 법칙은 단순하다는 말이, 내가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한 신념,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내가 만약에 10년 뒤에 1조, 2조원 규모의 회사를 만든다면 지금 나보다 돈을 좀 더 잘버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스트레스 받을까? 결국 그 확신이 없어서, 내가 그리는 비전이 약해서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럼 나에 대한 소신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단순히 소신을 가지자하면 그 소신이 생길까? 내가 해 본 결과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작은 성공을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작은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졸라 꾸준히 => 졸꾸 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을 졸라 꾸준히 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일을 졸라 꾸준히 하면 나는 작은 성공을 이루는 것이고, 그 작은 성공이 모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소신이 생기고, 그러면 더 이상 남과 비교하며 좌절하지 않고, 단 한명의 나로 당당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나는 테스트를 해보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나의 목표를 정하고, 작은 성공을 실현해보려고 한다. 졸라 꾸준히... 졸라 꾸준히 하면 어떤 변화가 올 수 있고 어떤 일들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한다.
잘 하지 못해도 괜찮다. 꾸준히만 하면 된다.
이제 30살이 한 달 남은 29살 11월 말, 나는 10년을 살면서 중요한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직접 실천해서 보여주려고 한다.
회사를 마무리하고, 그 동안 꾸준히 생각하고 있었던 약사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국을 운영하며 해외에 학교를 지으러 다니시는 분의 다큐를 보았고, 나 역시도 해외에 학교를 100개는 짓고 싶다는 세부 목표가 있었기에 나의 목표는 약사 자격증을 가지는 것이었고, 그 자격증으로 내가 해외에 학교를 지으러 나갈 때마다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나는 바로 공부에 돌입했다. 그렇게 3달, 100일을 열심히 공부해나갔다. 하지만 수능공부와는 다르게 참 아이러니하게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자괴감이 커져갔다. 무엇보다 나를 자괴감에 빠트리게 한 것은 시대의 역행이었다. 옥시토신, 프로게스테론 등 이제 이런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인터넷에 1분만 찾아보면 다 나오는데 고등학교에 수능에 나올 법한 것들을 외우고 있으니, 이 시간에 내가 4차 산업 혁명과 관련된 기술들을 공부하면 앞으로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러던 찰나에, 해외에서는 의료 활동을 하는데 딱히 한국 약사 자격증이 필요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ㅋㅋㅋㅋ 퓨ㅠㅠ 나는 100일동안 뭘 한거지. 그 날로 공부를 마무리했다. 공부를 해야할 목적이 없어졌기에 더 이상 내가 공부를 할 이유가 없었다. 깔끔했다. (여기서 보면 나는 정말 목적이 있어야지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앞으로 어떤 일을 할까 고민을 하던 찰나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미텔슈탄트 동인형님이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을 해주셨다. 모바일 편의점 서비스, 그리고 무엇보다 명확한 팀, 그리고 대표의 역량 3가지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전문적으로 나의 영업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나는 입사를 결정했다. 적은 월급이었지만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업일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개발이 거이 마무리 단계에서 개발팀이 모두 퇴사를 해버렸다.
팀도 없어지고, 따라서 모바일 편의점 서비스도 더 이상 해나갈 수 없게 되었다. 고민이 되었다. 3가지를 보고 들어왔는데, 2가지가 없어졌다. 아이템, 팀, 이제 대표의 역량만을 믿고가야 했다. 머리는 함께 퇴사를 하라고 했지만, 나의 마음은 그럴 수가 없었다. 형님 혼자 놔두면 정말 더 이상 회사를 이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도 올해 회사를 마무리 했었기에 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와 형님은 둘이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했다. 창업교육. 우리는 창업교육이라는 아이템을 잡고, 미친듯이 제안서를 적고, 입찰을 위해 노력하고, 영업을 다녔다. 그렇게 우리는 2달만에 거이 2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수주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때가 제일 신났던 일이었기도 하다.
회사 팀원도 다시 늘어나고, 개발자도 다시 생기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회사를 키워나갔다. 그리고 나는 더 늦기 전에 개발에 대해서 배워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창업은 꼭 기술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나는 12월 31일을 기점으로 회사를 마무리했다.
돌아보면, 그리고 시간이 지나보면 그때 그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청춘정미소의 확장이전도 나에게는 그런 선택이었다. 최선의 선택이라고 내린 선택이 결국에는 최악의 선택이 되어버렸다.
청춘정미소의 확장이전으로 우리는 몇천만원의 자금이 그대로 묶여버리고 말았다. 매장을 옴기면 매출이 금방 늘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렇지 못했다. 그냥 그 시장의 한계가 있었는데, 나는 그 한계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매장을 다른 곳으로 옴기는 것이 아닌 2호점을 냈어야 했다.
아무튼, 매장을 옴겨서도 우리는 여전히 열심히 일을 했다. 다만 각자의 역할을 분배하지 못했고, 우리는 우직하게 매장만 운영했다. 그때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서 다른 역할을 해나갔다면, 우리는 또 다른 길을 걸어 갔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다 주인이었고, 나 역시도 대표라고 내가 다른 일(회사의 성장을 위한 방향 모색, 전략 등)을 하는 것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나 역시도 함께 일을 하고 싶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성장하지 못했다. 결국에는 나의 역량 부족이었을지 모르겠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동영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성장을 바라는 친구에게 성장을 주지 못하고, 회사를 성장시키지 못했고, 확신 없는 잘못된 선택들이 이어지자, 지쳤었던 것 같다. 나 역시도 우리 회사의 10년 뒤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 매장이 10개, 20개, 30개 되었을 청춘정미소의 모습이, 내가 바라는 모습일까? 거기서 일하는 우리 회사 사람들은 행복할까? 나의 결론은 아니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나 역시도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게 청춘정미소가 시작되고, 1년 6개월의 시간이 지났고, 주식회사 파블이 시작한지 2년만에 우리는 여기까지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매장 한개는 튼튼하게 돌아갔던 곳이라, 금방 다음에 매장을 이어가실 분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시기가 나의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너무 극심한 스트레스로 피부부터 머리카락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호기롭게 시작했고, 나의 잘못된 선택들로 인해 회사는 마무리되었다. 회사를 마무리하며 매달 무슨 일이 있었는지 2년동안의 일을 그 앉은 자리에서 다 적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학교 주변의 동대구시장이라는 곳에서 청년상인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아주 솔깃하였다. 우리에게 장사할 수 있는 자리도 주고, 추가적으로 500만원이라는 인테리어 할 수 있는 자금도 준다고 하였다. 그렇게 동영이와 함께 지원하였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교육을 듣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순록이라는 친구도 함께 하게 되었다. 순록이는 동영이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명인데 원래 동영이가 나와 함께 일을 하지 않았으면 둘이서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했었던 친구다.
그렇게 순록이까지 합류하여서 우리는 함께 시장에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교육을 받으며 아이템을 고민하던 찰나에 쌀 장사를 하시던 형님이 우리에게 쌀 판매를 추천해주셨고, 뭐라도 해야했던 나는 쌀 입찰에 응해서 학교에 쌀들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대구 시장의 아이템도 쌀, 정미소가 되었다. "청춘정미소"
젊은 청년들이 운영하는 쌀집이라는 컨셉으로 잡고 인테리어를 해갔다. 함께 하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인테리어 업체에게 맡겼는데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하였다. 무엇보다 돈도 없었고, 우리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접할 수 있는 친구에게 용접을 부탁하고, 아버지에게 전기공사를 부탁하고, 우리만의 매장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셀프 인테리어 2달만에 우리 매장이 탄생하였다. 단 4평에 장소도 아주 좋지 못한 곳이었지만, 우리는 열심히 했다.
하지만 열심히 한다는 마음은 컸지만 손님이 오지 않았다. 시장 자체에 손님도 많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메인 길목에서 한 골목 들어가서 있었던 자리라 손님을 불러 모으기는 더 쉽지 않았다. 우리는 미친듯이 전단지를 뿌리며, 즉미구독이라는 서비스를 생각해냈다. 쌀을 구독형태로 판매하겠다는 우리의 생각. 쌀을 소량 구매하고 싶어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했고, 그렇지만 소량구매하면 금액이 비싸진다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 10kg, 20kg 단위로 구매해놓고 원하는 양만큼 언제든지 도정해 갈 수 있는 서비스를 시행하였다.
즉미구독 서비스가 대박을 냈다. 5개월만에 구독자수가 1000명을 넘어갔고, 우리의 매출도 덩달아 올라갔다. 고객들은 한번 결제해놓고 우리 매장을 지속적으로 방문해주었고, 우리는 쌀 이외에 잡곡 , 가공품등을 팔며 매출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우리는 너무 좁아서 항상 가게 문을 다 열고 장사를 할 수 밖에 없어 너무나도 덥고, 추웠던 매장에서 벗어나서 드디어 훨씬 넓고 쾌적한 곳으로 매장을 옴길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 농업 관련된 일을 옛날부터 해왔던터라 무사히 농업경제학과로 전과를 할 수 있었다. 전과한 농업경제학과에서도 역시 수업을 열심히 수강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제 반오십이라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학교 생활을 이어나갔다. 나이는 많은데 이제 대학교 2학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점점 4남매농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1월달 , 2월달까지는 괜찮았지만, 쿠팡, 위메프, 티몬 등 엄청나게 소셜커머스가 성장하고 네이버 블로그 광고 역시 누구나 하는 행사가 되었다. 그렇다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년 겨울에만 고구마를 판매하는 4남매농장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들어와줄리 만무했다. 사업에서 성장을 하지 못하면 곧 퇴보였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매년 사업을 한다고 말하며 뛰어다녔는데, 나는 실제적으로 한 것은 없었고 무언가 내가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성장없이 강연을 다녔고, 어디가나 대단하다고 말해주는게 좋았고, 나의 명함에 대표라고 적혀있는 것이 좋았다. 참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좋았는지, 아마 그 시기에 가졌던 마음들인 것 같다. 그렇게 사업이 기울어가면서 나에게도 위기감이 찾아왔다. 나는 극단적으로 대출을 신청하였다. 그 동안 4남매농장에 잡혀있는 매출을 바탕으로 2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자본금을 바탕으로 주식회사 파블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파블은 FABL(For A Better Life)의 줄인 말로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준다는 의미를 가진 회사이다. 농산물 꾸러미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2000만원 중 1500만원을 냉동탑차를 구입하는데 사용하였다. 이 사업이 될지 안될지 제대로 파악도 해보지 않고, 나는 정말 바보였다. 그리고 조그마한 사무실을 하나 얻었다. 함께 할 친구를 구했다. 그러자 나와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던 친구 한명이 나의 사업 아이템 이야기를 듣더니 다음날 휴학을 하고 찾아왔다. 그렇게 동영이가 팀원으로 함께 시작하였다. 당장 우리가 준비했던 꾸러미 사업은 당장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우리에겐 돈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지고 있는 냉동탑차를 이용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포항 집에서 가격이 너무 싸 버리게 생겼는 배추를 공수해서 대구의 한 시장에 자리잡고 팔았다. 저렴한 가격에 집까지 배달해준다고 하니 불티나게 팔렸다. 그렇게 동영이는 시장에 서서 배추를 팔고 나는 포항에서 배추를 따서 날랐다. ㅋ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난다.
4남매농장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처음부터 대박은 아니었지만 그때에는 잘 시행되지 않고 있던 블로그마케팅으로 네이버에 호박고구마를 검색하면 4남매농장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작업을 해놓았다. 그렇게 2014년 1월 2월 3월까지 3개월 동안 무려 7000만원의 매출을 발생시켰다.
어린 나이에 굉장히 큰 매출이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나는 학과를 전자과, 기계과가 아닌 통계학과 진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통계학과에 있다기보다는 복수전공을 통해 경영학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돕자.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잠드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비전이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경로는 바뀌었다. 이제는 창업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창업으로 그 비전을 이루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통계학과로 진학하고도 학교를 다니면서 사업을 신경쓰고, 동아리 회장활동에 그 때 당시에 과외, 학과 사무실에서 알바도 하고 있어서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찰나에 내년부터 전과제도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렇게 나는 하기 싫은 통계학과를 계속 다니기 보다는 정신없는 이 시기에 휴학을 하여 다른 것들을 우선시 하자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년에 전과가 될 것이다는 기약도 없이 일단 휴학을 하였다. 휴학 이후에도 정말 정신없이 24살의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여러 창업 경진대회에서도 좋은 성적들을 가져올 수 있었다.
아쉬운 수능 결과를 뒤로하고, 나는 포항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 포항에서 그 동안 빠졌던 살과, 마음들을 챙기며 엄마아빠의 일들을 도와드리며 시간을 보냈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최선을 다 했기에 후회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23살 겨울 1월 2월달에 우리집은 경매장에 고구마를 팔고 있었고, 경매장에서는 역시나 우리가 원하는 금액을 주지 않았다. 우리가 노력한 만큼의 돈을 주지 않기에, 더 속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엄마, 이거 내가 인터넷으로 팔아볼까?"
정말 아무 생각없이 뱉은 말이 었는데, 엄마는 크게 웃으셨다.
"아니 인터넷 판매가 무슨 쉬운줄 아니, 그래 할 수 있으면 해 봐. 다 너 용돈으로 줄 테니깐"
그렇게 나의 맨땅에서 고구마 판매하기가 시작되었다. 어디에 판매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갑자기 고구마를 팔아라고 하는 미션이 주어지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렇게 나는 먼저 가장 만만한 중고나라에 글을 올렸다. "호박 고구마 팝니다." 뜬금없이 중고나라에서의 고구마 판매 글... 사람들은 역시나 사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인터넷 뉴스 댓글, 그리고 보는 사람마다 고구마를 판다고 홍보하고 다녔다. 생각해보면 그 때 나의 숨겨져 있는 영업실력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열심히 판 것에 비해서 판매는 저조했다. 일주일에 한 박스, 두 박스 나가는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우연하게 알게 된 포항맘카페에서, 정말 대박이 났다. 포항엄마들이 모여있는 맘카페에서 맛 좋고 가격까지 저렴한 우리 고구마는 정말 날게 날린 듯 팔려나갔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 20박스를 팔기도 하고 30박스를 팔기도 하였다. 그 해 겨울은 고구마 장수로 정신 없는 겨울을 보냈다. 한달도 채 안되는 시간에 1000만원 어치의 고구마를 팔아치웠다. 그리고 엄마를 멋지게 당황시켰다. 아마도 살면서 엄마를 처음 놀라게 한 사건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3월 나는 원래 다니던 학교로 복학하였다. 3월 나는 2학기에 복학하면 됬지만, 애매하게 꼬여버려서, 그냥 3월에 다시 자연자율전공부를 다시 복학하였다. 그리고 나는 13학번 새내기들과 함께 무려 3살의 나이차를 가지고 함께 학교를 시작했다.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친구들이 나를 불편해 하지 않도록 노력했고, 다행이 잘 적응했던 것 같다. 그리고 2학기에는 우연찮게 창업 연구회 솔라이브라는 곳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대해서 준비하였다. 그렇게 4남매농장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디자인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요청들을 해가고, 웹사이트를 기획하며 정말 정신없는 하루들을 보냈다. 하루 일과의 시작은 5시였고, 중간에 밥을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 집에 들어가며 삼각김밥 한개씩을 우겨넣으며 생활했다.
그렇게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4살 드디어 4남매농장 웹사이트를 오픈하였다.
군대 안에서 여러 생각들을 하였지만, 특히나 주된 관심사는 꿈에 관한 것이 많았다. 미래에 나는 어떤 생활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미래에 나는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잠드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나는 경제학자를 꿈꿨다. 다른 나라의 경제상황을 컨설팅해주고 그 나라가 좀 더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렇게 되면 한명 개개인의 사람들을 돕는 것보다 그 나라 전체가 잘 살게되어 그런 부분이 많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다보니 현재 내가 있는 과가 나에게 맞지 않았고, 나는 과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능이라는 것에 한번 더 도전을 해야되겠다 마음 먹었다. 군대 안에서 최대한 많은 책들을 읽었다. 무려 100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군대에서 내가 이루어냈던 것들을 정리하여 포상휴가도 받았다. 그만큼 군 생활 역시 성실하게 하였다. 내가 군대를 전역할 때 울어준 후임도 있었고, 정말 깊은 마음이 느껴지는 장문의 편지들도 많이 받은 것 보니, 군대에서의 생활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똑똑하진 못하지만, 악하지 않다. 항상 그 사람을 챙겨주기 위해 노력했지, 나의 것을 먼저 챙기지 않았다. 내가 실수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렇기에 군대에서의 추억이 나에게 너무 행복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나의 미래는 무엇일까? 나는 경제학자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싸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가 해병대에서 얻은 가장 큰 것은 꿈을 찾은 것이고, 그 두번쨰는 꿈을 향해 도전할 용기를 가진 것이다.고
그렇게 군대를 전역하기에 앞서서 미리 서울에 방을 구해놓았다. 서울대 근처 하숙방. 그리고 옥탑. 2평 남짓의 방이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방이었다. R=VD를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목표는 서울대 경제학과였다. 2012년 5월 26일에 전역하여 3일쯤 뒤에 서울로 올라왔다. 전역날 버스에서 나왔던 노래가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군대에서의 생활들이 물 흐르듯이 지나갔다. 그리고 서울에서 정말 죽도록 공부하였다. 11월 12일까지 약 170일정도의 시간이 남았었고, 나는 모든 것을 리셋 상태에서 공부를 해나갔다. 매일 아침 4시반 혹은 5시부터 시작해서 밤 10시까지 공부의 시간들이 이어져갔다. 단 하루도 나를 속이지 않고, 공부했다. 단 하루도... 그때의 나의 생활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토나올 정도로 힘들었던 5개월의 시간이었다. 그때 나의 꿈은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것도 할게 없어서 다시 잠들어보는 것이었다. 슬럼프를 겪을 시간도 없었고, 나에게 쉴 사치도 없었다. 유일하게 도서관이 일찍 끝나는 화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가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그때는 필요한 것들을 모아놓았다가 서점에 가서 사기도 하고, 맥주 한캔을 마시며 버텼다. 서울 하숙집어머님과 5개월 동안 나의 점심을 챙겨주셨던 김밥집 어머님까지 총 2분의 어머니가 나에게는 더 생겼다. 하숙집 어머님이 수능전날 나의 문고리에 걸어놓으셨던 찹살떡은 아직도 기억에 난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흘렸던 눈물들도... 더 이상 나에게 목표는 서울대가 아니었다. 그냥 수능 전날 누웠을 때 와 정말 후회없이 했구나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능 전날 나는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수능을 보고 나오면서 흘렸던 눈물, 그 동안의 상황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며 떠올랐던 기억들 때문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의 뜨거웠던 겨울은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결과에서 실패했지만, 과정에서는 성공했다.
연평도 사건이 마무리 되었고 무사히 백령도에서 포항으로 돌아왔다. 계급은 일병으로 올라갔다.
막내 생활을 엄청 오래했지만 그래도 후임도 들어왔다. 후임이 들어오고, 나는 다른 소대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유는 내가 이동하는 소대의 악습이 너무 많아서 내가 중간에서 잘 챙겨주라는 명목이었다. 싫었다. 이제서야 내 소대에서 익숙해져가고 있는데, 새로운 소대로 이동해야 하는게 싫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렇게 3소대로 이동해서, 나는 웃음이 많은 소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래의 후임들을 많이 챙겨주었고, 그래도 나름 인정받는 분대장으로 활동하였다. 포상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다들 짬차면 한다는 눈치보면서 훈련을 빠지지도 않았고 앞서서 솔선수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기에 군대안에서 후임들이 많이 따라주었다. 여러 훈련들을 참여했고, 8월달이 되어서는 상병 계급장도 달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에는 탄약고로 파견근무도 갔다. 탄약고에서 나는 겨울은 추웠지만, 낭만이 있었다. 풋살장도 잘 되어 있어서 풋살도 엄청 많이 했다. 군대안에서 나의 풋살 실력이 다 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군대 생활이 무르익고 있었다.
대학입학을 하고 여러 친구들을 사귀었다. 처음 사귄 친구들과의 새로운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었다. 그 때 당시에는 뭐가 그렇게 중요했는지, 옆 테이블보다 더 크게 떠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가지고 있었다. 매일 매일 술은 마시지 않으면 이상하다 할 정도로 술도 많이 마셨다. 술을 많이 마셔도 크게 취하지 않아서, 남들보다 술도 더 많이 먹었다. 어떻게 보면 8월달에 군대를 갔으니깐 3월부터 5개월 간의 대학 생활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짧은, 1학년 대학 생활이었다. 그래도 첫 엠티를 시작으로 학교 축제도 하고,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부과대도 하면서 정말 많은 경험들을 했다. 심지어 고백(뜨거운 감자)를 부르며 고백도 했다. 비록 그날 실패해서 혼자 술집에서 고기에 술을 먹고(아마 처음으로 혼자 먹은 술일 것이다), 바로 해병대에 지원을 했다. 그게 덜컥 붙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반 강제적으로 군대로 가게 되었다.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놀 바에는 빠르게 군대나 가자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군대에 입대하는 날, 엄마아빠는 싸우셨고(이것도 아마 엄마가 함께 가고 싶지 않으셔서 였던 것 같다.), 나는 아빠와 함께 군 입대 장소로 갔다. 그 차안에서 내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들어간 해병대는 절대로 녹록치가 않았다. 훈련소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동기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초코파이가 그렇게 맛있는 것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부족한 것일까? 역시 모든 상황은 상대적이다. 그렇기에 남과 비교하면 나만 불행해질 뿐이다. 나의 소중한 인생은 남과 비교하며 보내기에는 너무나 짧다. 현재의 나의 인생을 살자.
그렇게 실무에 가자마자 백령도로 파견을 갔다. 그리고 훈련 도중 터진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 그 사건으로 인해 나의 휴가와 실제로 전쟁이 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5분 대기조라는 명목하에 하루 종일 굴 속에서 완전 무장을 하고 지냈다. 그때 그 죽음의 앞에서 내가 제일 후회 되었던 것은 좋은 집에 살아보지 못한 것, 좋은 차, 좋은 음식 그런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준 적이 없는게 제일 후회가 되었다.
아마 지금도 똑같이 그 부분을 후회하지 않을까? 그때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적지만 매달 군대 월급 7만원 중 3만원을 해외 아동 지원을 시작하였다. 매일 아침 백령도 텐트 속에서 나왔던 노래들은 죽을만큼 아파서와 이게 진짜 일리 없어 였다. 무엇보다 제발 지옥같은 여기서 날 꺼내줘와, 이게 진짜 일리 없다는 가사가 너무 와 닿았다. 그곳은 나에게 지옥이었고, 매일 아침 이게 진짜 일리 없다고 생각했었다. 매일 저녁 혼자 걸레 4개를 들고 빨러가면서, 달을 보며 제알 자살만 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만큼 그때의 상황은 너무 너무 어려웠다... 백령도 유격훈련, 진지공사, 대청도 파견 근무, 근무부터 훈련, 내부 생활까지 뭐 하나 쉬운 것이 하나 없었다.
그렇게 나의 20살은 첫 대학 생활을 즐거움과, 사랑, 군대, 죽음에 대한 생각들로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