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회고를 쓴 지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021년 회고를 적는다는 것이 어색하다.

또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적지 못할 것 같아서 올해는 조금은 더 빠르게
2021년도 회고를 마무리 해보려고 한다. 그래야 또 새롭게 시작을 할 수 있을 테니깐...

생각해보면 매년 이루고자 했던 것들이 많았던 거 같다.
하지만 또 1년을 살아가면서 연초에 목표하였던 것들을 돌아볼 시간이 많지 않았다.
사실 아쉬운 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연초에 목표하였던 것들을 매주 매주 보면서 체크해야 하지 않았을까?

1년이 다 끝난 다음에 돌아보면,
'내가 이런 것들을 목표했었구나.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와 같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 마디로 표현해서 내가 올해 목표하였던 가장 큰 것은
"나의 그릇이 작아지지 말자"였다.

분명 과거에는 꿈이 컸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알게 되고 그 꿈들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나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꿈들을 꾸기 시작했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꿈들을 꾸다 보니 더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과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에 아무 생각 없이 무대포로
시도했었다면 이제는 여러 가지 고려사항 (나의 나이, 현실적인 생활 등..)등을 생각하다 보면 포기 하기 일수였다.

아무튼 올해는, 스스로 그릇이 작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올 한 해 "나의 그릇은 작아지지 않았는가?"라고 질문하면
그러기 위해 발악했다...로 정리하는 게 맞다.

결국 잘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퇴사했고, 새롭게 창업이라는 길로 다시 본격적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이젠 개발 일지가 아니라 창업 일지를 적어야 할 판이다.)

왜 갑자기 그런 선택들을 하게 되었는지 이제 이야기를 해보자.

올해 역시 여러 가지 카테고리에서 각각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있었다.

크게 보면 

개발자 학습 : 개발자로서 회사에서 인정받기
책 읽기 : 매주 1권씩 책 읽고 정리하기 
건강 : 언제 어디서나 부끄럽지 않은 몸 유지하기
사업 : 수익 창출 및 팀 구성하기
수익 : 월 수익 1,000만 원 넘기기
비전 찾기 : 내 인생에서 오르고 싶은 산 찾기

등 여러 카테고리별로 이루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럼 하나의 카테고리씩 회고하면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1. 개발자 학습 

아무튼 나는 현재 개발자를 하고 있고, 개발자로서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밥값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실 이게 내 꿈을 찾고 그릇이 작아지지 말자는 것과는 별개로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연초에는 판 관리 admin이라고 하여 다노샵의 전체 페이지를 섹션 형태의 블록 형태로 쌓을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지금 다노샵에 들어가 보면 보이는 메인 페이지가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특별하다. 보통 웹사이트의 경우 한 번 제작을 한 이후에는 text 혹은 이미지, 상품을 변경하는 정도에서만
변경이 가능하지만 현재 다노샵은 메인 페이지를 운영팀에서 직접 관리하고 핸들링할 수 있다. 홈페이지의 모든 구성 요소들을 섹션화하고,
운영팀에서 원하는 대로 수정하고 위치를 변경까지 할 수 있다.

다노의 메인페이지


그렇다 보니 이런 것을 통해 정말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대부분의 프로모션 페이지들은 직접 제작하여 사용하고 계시고, 아래와 같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페이지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저것을 운영팀에서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관리자 페이지를 vue.js를 활용해서 제작하였고 관련 모델링 작업, api 작업등을 맡아서 진행하였다. 결론적으로 다노샵 2.0이라고 할 만큼 큰 변화가 있었고 정말 다양한 시도들이 개발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다. 
=> 사실 굉장히 큰 작업이었고 블로깅을 하고 싶었지만 조금 민감한 부분이라, 따로 블로깅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4월달 사수분이 퇴사를 하신 이후에는 다노샵을 온전히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 동안 사수분의 그늘 속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인턴 한 분과 열심히 다노샵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올 하반기가 되자마자 진행하였던 대망의 새벽 배송 작업

사실 새벽 배송 자체는 이미 물류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어서 큰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그것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 다노샵에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리티컬 했던 것은 사수분이 없는 상황에서 온전히 진행을 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예민하고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그래도 새벽배송 관련해서는 블로깅 해놓은 글이 있어서 대체한다. 

 

주니어 개발자의 새벽배송 개발기(새벽배송?새벽배송!)

주니어 개발자의 새벽배송 개발기 커머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단순히 상품을 진열하고 구매하는 것을 벗어나서, 실제 구매가 이루어진 후의 상품 출고 과정과 고객분

daeguowl.tistory.com

다양한 작업들을 하면서 회사에서 내가 얼마나 개발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고,
또 개발자로 온전히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들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연봉이라는 구체적 수치로 다가왔다.)

재미있었다. 재미있었고, 또 회사에서 내가 개발자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현재 내가 받고 있는 연봉만큼 회사에 기여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 자문하고 압박받아야 했다.

결론적으로는 
새벽배송 이후에 회사에서는 더 이상 커머스 쪽으로는 develop을 안 하겠다고 픽스하였고,
자연적으로 월급루팡이 될 수밖에 없었던 나는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에게는 돈도 중요하지만,
시간도 중요하기에 조금 더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다양한 큰 피쳐를 온전히 도맡아서 진행하면서 개발자로서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2. 책 읽기 

책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사실 매번 책을 읽어야지 생각은 하지만 생각보다 읽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쌀가게를 마무리하면서
뽑았던 제일 큰 패착 요인도 결국 내가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성장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그래서 정말 책을 지속적으로 읽고 학습하고 성장하자라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게 쉽지 않다.

올해 책 읽기와 관련해서 가장 와닿았던 말은,
꿈을 꾸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재료들이 필요한데, 그 재료들을 만드는 방법이 바로 독서라는 것이다.
너무 공감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또 시간이 나면 유튜브를 보는 것이 편하지 책으로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결국 독서를 습관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결국 책 읽는 습관을 올해도 만들지 못했다.
(핑계를 대보자면 예정에 없던 '오늘부터 개발자' 책을 올해 1년 가까이 적으면서 책이 보기 싫어졌다....)

책을 많이 읽진 못 했지만,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책 읽기는 아니지만 ... 반대로 어쩌다 보니 책이 나왔다ㅎㅎ
이게 올해 제일 잘한 일 중 하나이다.

 

드디어... 개발자 입문 관련 책이 출간됩니다.

안녕하세요! 쌀 팔다 개발자하고 있는 김병욱입니다! 오늘은 정말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기 위해 글을 적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1월부터 10월까지 열심히 적은 책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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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가 시작할 때만 해도 예정에도 없었지만, 그래도 결국 시작했고 마무리했다. 이건 책이 아니고 정말 피 땀 눈물이다.ㅠㅠ
이 책을 통해서 개발자를 하고자 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임팩트를 미칠 수 있으면 좋겠다.

3. 건강 

건강은 우리 삶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다.
그래서 더더욱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life style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수치로 만드는 것은 또 쉽지 않다.

아무튼 꾸준히 운동하기 위해 노력하였던 것 같다. (매일 30분 정도) 
마라톤 풀코스와 철인 3종 경기 킹코스를 나가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연기되어서 이것에 대한 달성도 못한 것 같다.

아 그래도 친구랑 같이 한강 왕복 수영을 했던 것이 유일했던 것 같다.


열심히 했다고 표현하기에는 작년이 더 많이 해서.. 할 말이 없다. 제일 큰 이유는 작년에는 자전거를 정말 많이 탔는데, 올해는 이사를 오면서 자전거를 거이 타지 못했다. 

아쉽지만 내년에는 좀 더 본격적으로 유의미한 수치들을 설정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되겠다.


4. 사업
 

내가 개발자를 시작한 이유는 소프트웨어 관련된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부분은 정말 많은 곳에서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서 나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무조건 실행해보려고 하며, 과거에는 개발을 하지 못해서 그냥 넘어갔던 많은 부분들이 개발자가 되고 나서 해소되어서 좋다.

작년 2020년 회고에 이런 말로 마무리 한 부분이 있다. 

바로 꽁술이라는 서비스 

1월 라이브를 목표로 달렸던 여러 가지 이유로 3. 1일 날짜에 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꽁술 비즈니스에서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점은 바로
오프라인 소상공인 매장들의 마케팅 문제였다. 실제로 오프라인 소상공인들이 매장 오픈 후 할 수 있는 마케팅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마케팅 업체를 통해 SNS 마케팅 등을 진행해도, 그 리텐션을 측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내가 쌀가게를 운영하면서 마케팅 업체를 통해 마케팅을 진행하고도 불만족했던 이유였다.
반면에 제일 효과가 좋았던 마케팅은 우리 매장을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리워드를 주는 것이었다. (전단을 나눠주고 전단을 가지고 매장에 찾아오면 쌀  1kg 증정)

그래서 이것을 착안하여 어플을 통해 오프라인 매장에 손님을 보내주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손님에게 리워드를 주는 형태를 생각했다.
모든 카테고리를 해소할 수 없기에 먼저 주류 분야를 타겟하였다.(우리 3명 모두가 술을 좋아했다.)
그리고 주류 카테고리는 술 1병이라는 명확한 리워드가 되었다.

월 4,900원 멤버십 형태로 운영되고,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은 꽁술 제휴점에 방문할 때마다 술 1병을 제공받는 아주 깔끔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3월 달에 오픈할 당시에 꽁술 제휴점은 서울 내 50개 정도였다. 그때 제일 많이 들었던 고객 의견은, 멤버십을 가입하기에 너무 제휴점이 적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말에 너무 공감했고, 최대한 제휴점들을 많이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직접 퇴근 이후에 발로 뛰었고 어느 정도 시스템화를 거쳐서 영업을 해줄 수 있는 분들을 뽑았다. 그리고 그분들이 영업을 맡아서 진행해주셨다.

제휴점은 쭉쭉 늘어서 현재는 600여 개가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복병이 숨어있었다.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 6월부터 시작한 거리두기는 우리 팀을 쪼여왔다. 기존에 있었던 고객들도 언제 매장을 방문하게 될지 모르겠다면 떠나갔다. 그리고 술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경되었다. 보통 술을 마시면 1차, 2차, 3차 이동하면서 마셨지만 더 이상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값 문제가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대학생들이 2학기에도 학교를 가지 않은 것도 영향이 컸다. (꽁술의 주 타겟은 술값에 예민한 대학생) 

그러던 중 정말 크리티컬하게 7월쯤 카카오에서 운영하던 꽁술 채널이 주류 홍보 이슈로 삭제되었다. (웹으로 만들어서 카카오 채널을 통해서 꽁술에 유입되고 있었다.)

이제 고객들은 들어올 수 있는 경로를 잃었으며 채널에 모아놓았던 2000명 이상의 고객들도 한순간에 잃었다...
너무 답답한 시간들이었다. 바로 앱을 만들어서 출시하고 싶었지만, 앱을 만들기 위해서 다시 공부해야 했고, 그때 다노에서 새벽배송을 맡아서 진행해야 했기에 정말 여유가 없었다.

 결국 새벽배송 이후에 퇴사까지 해가며 몰입하며 앱을 만들었지만, 거리두기 단계도 개선되지 않았다.


현재 꽁술은 play스토어와 앱스토어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 

play스토어 

 

꽁술 - Google Play 앱

소상공인 홍보도 돕고, 꽁짜술도 먹을 수 있는 신개념 상부상조앱!

play.google.com

앱스토어

 

‎꽁술

‎꽁술이 소개하는 술집에 가면 매번 술 1병이 공짜! 서울 젼역 600개 꽁술 가맹점에서 꽁술을 즐겨보세요! 이 모든 것이 완전무료! 꽁술 설치만 하면 끝!! 꽁술에서 만나요!

apps.apple.com


결론적으로 우리 팀은 와해되었다. 제휴점들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멤버십을 무료로 변경하면서 운영하기로 결정했지만, 이 결정을 내리고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돈과, 시간 그리고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아쉬웠다. 좋은 서비스인데, 고객들을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다. 아직 개선할 수 있는 점들도 많다. 그리고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도 많다. 그렇게 나는 6개월이라는 시간과 내 퇴직금을 꽁술이라는 서비스에 더 몰입해보기로 하였다. 그래야 아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내년 상반기 6개월 간 나는 나의 시간을 온전히 꽁술이라는 시간에 몰입하고자 한다. 
(짧게는 1월 2월 3월 3달 동안 좋은 수치들을 만들어내고 4월에는 프라이머에 seed투자를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꽁술을 함께 모아갈 팀원을 모집합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700명의 소상공인이 제휴하고 있는 꽁술을 함께 만들어갈 팀원들을 모집합니다.

deaguowl.notion.site


5. 수익

월 수익 1,000만 원 벌기. 올해 목표로 하였던 것들 중 하나이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사업이지만 그것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바로 가족이다. 나는 정말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고,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사업적으로 무언가를 크게 이루더라도 정말 슬플 것 같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그 안정적인 가정을 위해서는 돈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기에 수익에 집착했던 부분도 있다. 

하지만 올해 내가 생각했던 꽁술 비즈니스에서 원하는 수치들이 나오지 못하면서 이것 역시 달성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크게 깨달은 부분이 있어서 내년부터는 더 이상 월 단위 수익에 목메지 않으려고 한다.

1. 매달 들어오는 돈이 많아도 내 생활은 달라지지 않더라. (내가 생각보다 물욕도 없고, 딱히 사고 싶은 것도 없다. 사실 한 달 100만원정도면 내 생활은 충분히 괜찮다.)

2. 사람마다 돈을 벌 수 있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에 집중하는 순간 계속 현재 나보다 돈을 많이 벌고 있는 남과 비교하게 되었다. 

3. 누군가는 주식투자를 통해서 돈을 벌고, 또 누군가는 코인을 해서 돈을 벌듯이, 나는 사업을 통해 돈을 벌고자 하고 이것은 시간이 꽤나 걸리는 일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사업에 더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아무튼 목표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고, 이게 내 삶을 크게 바꿔주진 못 했다. 그래서 이 목표는 나의 연간 목표에서 이제 제외하려고 한다.

아마 나는... 많은 돈을 벌기까지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릴 것 같다... ㅎㅎ 하지만 확신도 있다. 


6. 비전 찾기 

사실 이것은 올해 세웠던 가장 큰 목표기도 하다. "그릇 작아지지 않기"와 일맥상통하다. 매일 10분 20분씩 나의 비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는데, 또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올해 와닿았던 말 중에서
"시간이 있어야 생각을 할 수 있다."라는 말이었다.

나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아니 정확하게는 여유가 없었다. 정말 쉴 새 없이 일들이 몰아쳤고, 그 안에서 나는 여유를 발견하지 못 했다. 분명 시간은 있었다. 하지만 여유가 없었다. 

그 여유를 가지기 위해 퇴사하였지만, 무려 2개월이라는 시간을 그동안 내가 벌려놓았던 일을 처리하는 데 사용하였다. 도대체 일들을 왜 이렇게 많이 벌려놓았는지 처리하지도 못할 일들을 모두 기회라고 생각하고 시작하다 보니, 정말 너무나도 일이 많아졌다. 이것은 결국 퀄리티 저하로 이어졌다. 일을 벌이고 어떻게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내 장점이지만 이것 때문에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하는 일들이 지속되었다. 

그래도 그 여유와 시간을 갖기 위해서 퇴사까지 결정하였으니깐 
위에 이야기했던 대로 '나의 그릇이 작아지지 않기 위해 발악했다'로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래도 나름 정리하는 시간들을 틈틈이 가졌고 현재 나의 꿈은

'사람들이 느끼는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여,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는 것.
이 과정에서 기업이라는 것을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의 더 큰 문제들을 해결하여 더 큰 임팩트를 주는 것.
기업의 CSR로 UN에서 선정한 SDGS의 문제들에 대해 도전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

이라고 정의 내렸다. 아마 매년 조금씩 수정될 수 있지만 한 번 픽스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알기에,
유의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는 기후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보다 기후 문제가 정말 심각했다. 아래는 인상 깊게 읽은 책!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빌 게이츠가 10년간 올인한 바로 그 주제!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한 명확한 목표와 근본적인 해법혁신적 엔지니어이자 실용적 환경주의자 빌 게이츠가 10년간 집중적으로 연구한 끝에 마침내 공개

book.naver.com

이 문제를 나중에 내가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7.  기타 올해 유의미했던 것들

 

7.1 책 출간 

올해 시작하자마자, 출판사에 아는 동생의 유혹에 못 이겨서 ('오빠 책을 내면 정말 오빠가 원하는 대로 많은 사람들한테 임팩트를 줄 수 있어') 개발자 입문과 관련된 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정말 책을 적는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매일 아침 출근 전에 30분 ~ 1시간씩 적었고, 결국 10개월이 지난 11월에 책이 나올 수 있었다. 이 책 때문에 포기했던 것들도 너무 많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쁘다.

사실 책이라고 하면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한 번 적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우연찮은 기회로 시작했던 것이 이렇게 잘 마무리가 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네이버에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고, 강남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칸에 내 책이 올라가고, 밀리의 서재에서는 무려 종합 베스트 100위 안에 들어갔다!)

이 책이 조금 더 유명해져서, 정말 개발자에 관심 있는, 그리고 개발을 시작하려는 분들이 모두 보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출처 : 천호식품 / 제작 : self

7.2 밑바닥부터 시작한 누나의 유의미한 성공

우리 집은 4남매다.(그래서 과거의 고구마를 팔 때 브랜드명도 4남매농장이다.)
그리고 그 4명은 모두 농촌에서 농사일을 열심히 하면서 자라났다. (수능 시험 직전 주말까지 밭일하다가 갔으니깐 뭐 할 말은 다 한 거 같다.)

집안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 못했기에 정말 일은 많이 했지만, 그래도 정말 부모님이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난 이게 정말 나의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가난했지만 가난한 걸 잘 몰랐다.)

하지만 5년 사이에 4명이 연년생으로 있으면서, 4명이 동시에 대학을 가야 했고, 이어서는 4명이 또 결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던 우리는 조금 더 일찍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교육은 최소화해야 했고, 대학은 무조건 국립대, 그리고 스스로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녀야지만 다음 사람도 무사히 대학을 갈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혼자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게 많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4명이 모두 그랬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상황을 원망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결정 내리고 책임지기 위해 노력했다. (이 부분을 부모님이 잘 이해시켜주신 것 같다.)

그래도 그런 상황에서 누나 2명 모두 박사까지, 그리고 공부에 큰 뜻이 없는 나와 동생은 학사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중, 유달리 옛날부터 공부를 잘했던 둘째 누나의 인생은 조금 더 쉽지 않았다. 서울의 좋은 대학을 붙었음에도,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지방 국립대에 진학했고, 결국 학교가 맞지 않아서 반수를 본 뒤 유니스트에 입학했다. 유니스트에 입학하고 대학원을 간 뒤에도, 5년 동안 실적 하나 없어서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5년 동안 실적 한 번 없어서 박사를 포기할까 했지만 결국 누나는 이루어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한 번 내기도 쉽지 않다는 화학계 쪽에서는 유명한 JACS라는 논문을 두 달 사이로 2편을 연달아 내더니 졸업 이후 미국에서 연구를 이어갔다.

그리고 1년이 조금 넘은 뒤 올해 초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UNIST 1기 입학생이 서울대 교수 되다 .. 김진영 박사, 서울대 화학교육과 교수 임용

[아시아경제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기자] 울산과학기술원 1기 입학생이 학부와 박사까지 마친 뒤 서울대 교수로 임용돼 대학에 웃음 꽃이 활짝 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총장 이용훈) 화학과에

v.kakao.com

물론 이게 끝이 아니겠지만, 본인이 10년 이상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루어냈기에 정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정말 대단하고 한편으로 우리 누나지만 너무 존경스럽다. (그 의미로 오늘 아침에도 설거지시켰다)

누군가는 결과만을 보고 천재 아니냐, 혹은 탁월하다고 했지만 옆에서 봐 온 누나는 너무나 평범하고 정말 노력형이었다.
누나를 보면서 탁월함은 머리가 아닌 노력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7.3 여동생 챙겨주기

나에게는 정말 귀여운 여동생이 있다. 현재는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데, 매년 여동생에게 선물을 챙겨준다. 벌써 5년 가까이 된 것 같은데, 하나의 연래 행사 같은 느낌이다. 사실 첫 시작은 내가 청춘정미소 쌀가게를 하고 있을 때 여동생이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었다. 그리고 하필 그 시기에 일본에 정말 큰 지진이 일어났고, 여동생은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때 느꼈던 허무함은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분명 나는 상황이 괜찮았음에도, 여동생이 알아서 잘 지내겠지 하며 용돈 한 번 주지 않았다. 분명 타국에서 힘들었을 텐데... 그래서 그때부터 단순히 마음이 아닌 여동생을 잘 챙겨줘야 되겠다 생각했던 거 같다. 매달 10만 원씩 적립한다 생각하고 상반기 여동생 생일에 용돈 한 번, 그리고 연 말에는 본인이 필요한 것을 선물해준다. (근데 이게 점점 금액이 커지는 게 문제)

아무튼 올해도 그 시기가 돌아와서 여동생에게 연락했다.

흔하 여동생과의 대화

ㅋㅋㅋㅋㅋ 진짜 혼자 타국에서 일한다고 쉽지 않을 텐데, 너무 잘하고 있어서 대견하고 귀엽다. 올해도 여동생 잘 챙겨줄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내가 해내서 다행이다. (백수 걱정해주고 쿨하게 선물은 잘 고르셨다)

7.4 다양한 강의 활동과 수업

올해도 다양한 강의 활동들을 통해 조금 더 사람들이 쉽게 개발자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오픈놀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10주동안 강의를 진행하였다

 

진행하였던 특강
- 원티드 :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었다.(7.8) / 오늘부터 개발자 입문 관련 특강(12.14)
- 대구광역시 : 진로탐색 라이브 토크 (4.15)
- 진학사 캐치 : 스타트업 개발자 성장 A to Z (9.7)
- 스파르타코딩클럽 : 직장인들을 위한 it기초지식 수업 (12.15) 및 항해99 취업 관련 특강들(7.1 , 10.1)
- 성남 일자리 센터 강의 : 개발 입문자 관련 상담 (12.7)
- 구로청년이룸 개발 관련 특강 (6.19)
- 야콤 태크캐스트 연사 : 개발자 이력서, 포트폴리오 어떻게 쓰는게 좋을까? (5.11)
- 마포청년나루 : 비전공자의 개발자 취업 (2.25)
- 오픈놀 시리즈 D 수업 튜터 (9.4 ~ 11.20)
- 인프런 : 오늘부터 개발자 강의 촬영 및 업로드 
- 바이더북 : 오늘부터 개발자 관련 요약강의 촬영 (12.9)

7.5 기타의 기타 

부모님 두 분 다 올해도 건강하게 지나가시고(제발 이제 농사 좀 줄이세요 ㅠㅠ), 큰 누나의 두 번째 조카가 태어났다. ㅎㅎ 첫 번째 조카에 이어서 또 남자다 ㅎㅎ. ㅠㅠ 우리 누나가 걱정되지만 아무튼 또 조카들 잘 키우고 있는 것 같아서 대단하다. 벌써 두 아이의 엄마라니...! 올해도 모두 건강하게 지나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올해 최종 회고와 내년 개선할 것들

올해도 쉽지 않은 한 해였다. 많은 것들을 못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또 올 한 해 잘 보낸 것 같다. (무엇보다 건강하니깐 그걸로 됐다.)

그리고 크게 깨달았던 것들은, 집중력을 분산시키면 결국 모든 것의 결과물들이 좋게 나오는 것이 어렵다는 것.

그래서 내년에는 정말 꽁술이라는 서비스에만 크게 집중을 해보려고 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딴 곳에 시선을 더 이상 돌리지 않고 정말 6개월은 집중을 해보려고 한다. 이젠 정말 내 서비스를 잘해보고 싶다. 

내년에는 좀 더 회고가 심플해지고, 그 성과가 한 분야에서 컸으면 좋겠다.

쌀 팔다 개발자 2021년 회고 끝!

  1. with_AI 2022.01.13 21:51 신고

    2021년 수고하셨습니다.

    책 잘 읽었습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반도체 공정쪽으로 저의 직무를 결정하려다가 AI 부트캠프(코드스테이츠)를 수료하고, 운 좋게 바로 컴퓨터 비전쪽 AI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에서 인턴으로 4개월째 근무중입니다.

    개발자라는 직업이 저랑 맞는지 사실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쌀팔다개발자님의 책을 읽고 좀 많이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분야는 MLOPS로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 쪽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해볼 예정입니다.

    지금은 파이썬으로 TensorFlow, Pytorch, Keras, OpenCV, Pandas, YOLOV4, DeepSORT, EfficietNet, AutoEncoder 등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것들로는 제가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지 못하더라고요. 기업에서 하나의 부속품 처럼 데이터 전처리, 모델 학습 및 평가, VSCODE로 데모 서비스 만들기 정도만 해봤습니다.

    따라서 서비스를 만들고, 배포하는 그런 쪽으로 더 공부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여튼 책 읽고 개발자라는 꿈을 더 명확히 할 수 있게 해주신 글쓴이게 감사를 표합니다.

    • 대구 올빼미 2022.01.14 08:58 신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제 책이 도움이 되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사실 이렇게 따로 댓글을 남기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일텐데, 이렇게 댓글로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2022년에 꽃길만 걸으세요!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다 이루시는 한해 되기를 기원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정용가리 2022.01.19 18:26 신고

    2021년 고생많으셨습니다.
    항상응원합니다 꽁술 화이팅!!

  3. yy 2022.04.03 17:27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개발자라는 책을 읽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의 고민이 있어 찾아오게 되었는데요,
    현재 25살이고, 4학년 1학기인 학생입니다.
    현재는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컴퓨터공학 복수전공 신청만 해놓고 개인사정 때문에 수업을 거의 듣지 못하다가 이번 학기부터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수업을 제대로 듣게 되었습니다.
    부전공으로 졸업하면 앞으로 1년, 복수전공으로 졸업하면 2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근런데 최대한 빨리 공부하고 취업하고 싶은 마음과 추가학기를 다니면서 드는 비용 때문에 부전공까지만 수업을 듣고 국비학원을 다닐지 생각이 듭니다.
    저의 목표는 일단 작은 곳이라도 입사해 점차 제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병욱님께서는 저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시간과 비용이 오래 걸리더라도 복수전공을 마치는 것이 나을까요?

    • 대구 올빼미 2022.04.05 11:58 신고

      안녕하세요 yy님 사실 이런 부분은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서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야기 드리기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괜찮으시면 yy님 상황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상담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픈채팅 "오늘부터 개발자" 검색하셔서 카톡 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올해 내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떤 challenge를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는
하루 하루를 보면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1년이 끝난 뒤에 명확하게 보여진다.
매일 매일은 크게 이루는 것이 없지만,
이 기간이 쌓이면 내가 어떤 일들을 이루었는지 보이게 된다.

예기치 못했던,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또 매년 적을까 말까 고민하지만, 기록해놓지 않으면 반성도, 개선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도 2020년을 마무리 하면서 회고글을 적어 본다.

나에게 2020년은 크게
4가지 분야에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 개발자로서 인정받기

  2. 내가 목표한만큼의 수익 창출하기

  3. 건강 챙기기

  4. 새로운 비즈니스 도전하기

그리고 각각의 목표들은 세부 목표들로 나누어졌다.

  1. 개발자로 인정받기

    1. 연봉 협상에서 00 금액만큼 제안 할 수 있는 실력 갖추기

  2. 내가 목표한만큼 수익 창출하기

    1. 이전 사업하면서, 그리고 개발 공부하면서 생겼던 모든 빚 청산하기

    2. 매월 00 금액만큼 수익 창출하기

    3. 돈 쓰는 습관에서 돈을 모으는 습관으로 바꾸기

  3. 건강 챙기기
    1. 철인 풀코스 완주하기
    2. 마라톤 풀코스 완주하기
    3. 바디프로필 촬영하기
  4. 새로운 비즈니스 도전하기

    1. 팀 결성 하기

    2. 새로운 사업 challenge하기

그렇게 책상 앞에 상반기 / 하반기로 나누어진 계획표를 뽑아서 코팅지에
코팅해 붙여놓고, 올 한해가 시작되었다.

1. 먼저 내가 올 한해 하고자 했던 가장 큰 것은 "개발자로서 인정 받기" 였다.

분명 다른 분야에서 개발을 시작했고, 그 동안 다른 일을 해왔던 만큼 내가 다른 것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내가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지금에는 별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현재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을 하고 있고, 작년이야 어떻게 운이 좋아
취업을 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정말 개발 실력으로, 인정 받고 싶었다. 그냥 쌀 팔다 개발자가 되어서,
강의나 하고 개발은 뒷전이다라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스스로 진지하게 개발을 하고 있고, 
개발자로 인정 받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수치는 "연봉"이라고 생각하였다.
1년 전에는 그냥 신입이라는 평균에 맞추어서 연봉이 측정되었지만, 아무튼 1년 뒤에는 정말 나의 실력으로
회사에서도 연봉을 측정할 것이고, 그것이 내가 개발자로서 인정을 받았는지, 아닌지가 가장 명확하게
판단 될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올 한해 개발자로 인정 받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했을까?
사수분께 들은 이야기지만, 개발자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2가지 중에 한 가지는 해야 한다고 하였다.

  1. 주어진 업무를 빠르게 파악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혹은 더 빠르게 해결하거나

  2. 업무를 조금 느리게 하더라도, 내놓은 결과물이 늦은 게 이해가 될 만큼 잘하거나

그리고 내가 개발을 시작하기 전에 조언을 구했던 개발 5년차의 형님은 이렇게 이야기 해주셨다.

(최근에는 전화해서 왜 그때 개발자 한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냐고 화냈다 ...)

"신입에게 바라는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업무를 해내는 것, 경력에게 바라는 것은 그 업무를 빠르게 문제 없이 해내는 것. 업무를 해내는 것은 가장 기본이다."

그렇다. 일단 회사에서 업무를 한다면 주어진 업무를 잘 해내야하고,
그게 예상한 속도보다 빠르다면,  인정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업무를 빠르게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일 큰 것은 바로 회사의 기존 코드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코드를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다노샵 쇼핑몰의 workflow를 따라가면서, 어떤 api들이 호출이 되고, 해당 api에서 어떤 함수들을 처리하고, 장바구니, 구매하기, 구매 완료, 그리고 이후 배송, 반품 등의 전체적인 flow를 따라가면서 정리하였다. 이 작업은 업무시간에는 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어 (보통 주말에 많이 하였다.) 해당 함수들을 반복해서 보았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업무를 바라보았을 때 어디 부분을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내가 미리 해당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업무 일정을 조율할 수 있었다. 정말 내가 이렇게 성장 하기까지 옆에서 나의 성장에 맞는 적절한 task를 주면서 가끔은 술도 사주시면서 키워주신 사수분의 영향이 도움이 컸다. 올해 7월에는 조직이 개편되면서, 다노샵 서버 팀에도 다른 멤버들이 생겼지만 그 전까지 2019년 7월부터 2020년 7월까지 1년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하나를 데리고 (말만 잘하는...) 다노샵 서버를 아무 이상 없이 이끌어 가신 것은 정말 ... 지금 생각해도 그저 갓;; 이 글을 보지 않으실 거지만 정말 너무 감사한 거 투성이다.ㅠㅠ
이제서야 느끼는 것이지만 앞에서 사람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일을 잘 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ㅎㅎ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조금 긴장을 늦추었을 때,
큰 이슈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주니어 개발자의 Django ORM 수난기] daeguowl.tistory.com/171

 

주니어 개발자의 Django ORM 수난기

현재 다노에서 다노샵 서버 개발을 하고 있는 대구올빼미입니다.( 올빼미지만 밤 10시에 자는 건 비밀 ) 그리고 현재 다노샵 서버는 python을 베이스로 django 프레임워크를 활용하여 구성되어 있습

daeguowl.tistory.com

이 밖에 크게 기억에 남는 작업들도 있다.

다노샵 뒤에서 돌아가던 task들이 모두 리눅스의 Cron으로 돌고 있었는데
이것을 모두 celery로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하여 뒤에서 돌아가던 업무들의 효율을 높인 것,

SCM팀에서 매일 진행하던 출고 작업을 대폭 개선하여 12시에 정오 출고를 진행하면
항상 점심을 따로 먹고 하던 SCM팀이 크루들과 같은 점심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

기존 재고 기준들을 변경하여, 하위 실재고를 추가
실제 재고와 동일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

상품이 품절 되었을 때 예약판매를 진행할 수 있도록 기능을 추가한 것,

마케팅 프로모션 업무를 모두 자동화하여 해당 시간에 일괄 시작될 수 있도록 한 것,

고객들의 택배 관련된 CS를 해결하기 위해 30분 마다 돌아가는 택배 크롤러를 만든 것 등이 있다.

아 참 그리고... 무엇보다 큰 기억에 남는
매거진 리뉴얼 작업 ㅠㅠ (이건 정말 따로 글도 적었다.)

프론트를 한번도 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에서 돌아가야 하는 프론트를 만드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스스로에게도 많은 challenge가 되었고, 나 스스로도 개발자로서 한 단계
더 뛰어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매거진 작업하면서 가장 많이 보았던 짤

 

 

다노 매거진 개편 프로젝트를 완료하며...

올 한해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정말 나의 피, 땀, 눈물이 들어간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회고글을 적어보고자 한다. 사건의 발단 : 현재 다노에서는 매주 or 2주 단위로 1on1 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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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정말 다양하고 많은 일들을 했지만 내가 올 한해 다노샵 서버 개발자로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임팩트 노트(다노에서의 평가는, 스스로 적는 임팩트노트와, 주변 동료들의 피어리뷰로 이루어진다.)에 적은
마지막 문장이 가장 적합하다. 

"사실 위의 업무들은 스스로의 평가를 위해 나열한 부분이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제가 이룬 가장 큰 성과는 제 스스로 다노샵 
서버개발자로서 다노샵에 애정이 생기고, 다노샵에 에러가 발생하면 가슴이 아프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다노샵에 무슨 일이 생기면 최우선으로 
해결하기 위해 마음으로서 노력하였다는 점입니다."

위의 말은 단순히 좋은 평가를 위해 적은 말이 아닌, 정말 내가 스스로 1년 동안 다노샵 개발을 하면서 가장 크게 변한 점이었다.
에러가 나면 "사수분" 혹은 "내"가 봐야했기에(그렇기에 에러를 봐야하는 핑계로 스마트워치도 구매해서 늘 차고 있었다.)
정말 어딘가를 갈 때는 꼭 노트북을 가지고 다녔고(처음에는 내가 해결 할 수 있던지 없던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문제를 보고 전파하는 것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다노샵 서버에도 나의 코드가 점점 많아지고, 내가 만든 기능들이 사람들에게 좋은 임팩트를 미치고,
그렇게 미운정 고운정 보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저런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해야되겠다 의무적으로
생각하여서 하였던 일들이 이제는 마음으로서 자연스럽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1번의 목표는 과연 이루었을까?
사실 1번의 성공 여부를 측정하는 것이 연봉이라고 생각했지만, 연봉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주변 동료들의 피어리뷰였다. 임팩트노트의 경우 내 스스로 한 것들을 적는 것이지만, 피어리뷰는 정말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주는 평가였다. 피어리뷰를 받은 것을 바탕으로 CTO님과 이야기 하면서, 
나는 1번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스스로 결론 내렸다. 단순히 연봉으로는,
내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판단하기에는 부족했다. 무엇보다, 나와 함께 일한 동료들의

인정이 나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올 해의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에서, 나는 올 한 해도 또 복지가 되는 동료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 되겠다 다짐했다.

2. 내가 목표한 만큼의 수익창출

그리고 2번 째 목표였던 내가 목표한 만큼의 수익창출
이 목표는... 정말 돈이 없어보니깐 힘들다는 것을 몸소 깨달으면서 생기게 된 목표였다.

분명 쌀 가게를 운영하면서 수익을 창출했었지만, 마무리를 하면서 이것 저것 정산을 하다보니,
금전적으로 넉넉하지 못 했고, 그 상태에서 서울에 올라와 공부하다 보니 정말 많은 빚이 생겼다.... ㅠㅠ

작년 8월 누나에게 마지막으로 돈을 빌리면서(그래도 이렇게 돈을 빌려주는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다.)
정말 1년 뒤의 올해 8월에는 다 갚겠다고 약속을 했었다.(사실 이거 자체가 그냥 직장 생활만으로는 절대 불가능 했다.)

정말 운 좋게도, 군대 복학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사업을 해왔기에 일반 대학생들에 비해서는 여유로운 편이었고,
딱히 돈에 대해서 크게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무언가 사고 싶은게 있으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구매하였다.
그랬던 내가 정말 돈에 대해서... 이렇게 힘들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결국 절대 하면 안 된다는 카드깡?(갤럭시 폴드를 카드로 6개월 할부로
구매한 뒤, 현금으로 팔아서 사용하였다.. 정말 갖고 싶었던 폴드였는데, 기계는 없고 매달 돈이 나가는 것이 정말 너무 슬펐다.)
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사업을 하면서도 돈보다는 더 큰 비전을 항상 쫒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이 없으니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돈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권도균 대표님의 이야기가, 내 뼈를 때렸다.

"돈 보다 중요한 가치들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그 중요한 가치들을 온전치 추구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생존을 위해, 그리고 돈 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돈을 벌어야 되겠다 생각했다.
아무튼 약속은 했고, 올해 계획에 넣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단순히 돈은 버는 행위 자체를 떠나서 내가 좋아하고 의미있는 일들을 하면서 수익 역시 창출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매주 일요일 스파르타 코딩클럽 튜터 활동을 하였다.

원래는 퇴근 후 매주 2회 하던 것으로 처음 시작하였는데, 회사 업무가 어떻게 될지 몰라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한번 진행한 뒤 부터는 주말로 변경하여서 지속적으로 튜터 활동을 하였다.

튜터 활동을 하면서 나 역시도, 수업 내용 자체가 어렵진 않았지만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개발 수업 준비를 해야하였고, 또 수업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올해 3월부터 매거진을 진행하게 된 9월까지 나는 총 6개월간 3개 기수, 24분의 튜터 활동을 지속하였다.
(매주 일요일은 튜터활동으로 시간이 순삭되었다.)

다들 개발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셨다. 6시간 내리 수업을 하고도, 남아서 개발을 더 하셨다. 나에게도 굉장히 큰 자극이 되었다.

몇 몇 분은 아직도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지내고 있다.
분명 수업을 가르치러 갔는데, 돌아보니 내가 더 많이 배웠다. 너무 좋은 추억이다.

그리고 탈잉 수업을 지속했다. 개발자를 처음 준비하면서 너무 고생했었기에, 누군가가 개발자를 하고 싶어하시는 분이 있으면,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했고, 내 수업이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그렇게 스파르타 코딩클럽이 없는 격주 토요일 저녁에는 탈잉 수업을 진행했다. (그래서 나에게 휴일은 격주 토요일 박에 없었다.ㅠㅠ) 정규 시간은 6시 ~ 9시까지 3시간이었는데, 하나라도 더 알려드리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항상 30분 ~ 1시간씩 넘기 일쑤 였다. 그래도, 이런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많은 분들에게 정말 과한 평가를 받았다. 탈잉에서 우수 튜터로 뽑히기도 하였다.

그리고 주말에 시간이 되서 듣지 못한다는 분들을 위해 해당 수업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 인프런에서도 수업을 오픈하였다.
인프런에서는 "개발자 취업 입문 개론"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비전공자를 위한 개발자 취업 개론 - 인프런

개발자 취업 입문 개론 수업입니다. 평생 한 직업만 하실 게 아니라면, 꼭 한번은 개발자를 도전해 보시길 추천드려요! 비전공자 혹은 현재 다른 업무를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쌀 팔다 개발

www.inflearn.com

본격 쌀 파는 강의라고 놀리던 수업이 그래도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ㅠㅠ

탈잉과 인프런 모두 후기가 100건이 넘었고, 평점은 4.9점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내 수업을 듣고 올해 취업했다고 연락오신 분이 정말 너무 많다. 이런 연락을 받을 때 마다,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하다.

이런 연락을 받을 때 마다, 정말 너무 감사하다.


사실 내가 한 것은, 방향만 잡아 준 것이지, 이 분들이 개발자로 취업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 하셨는지,
생각만해도 정말 대단하다. 나는 항상 수업 때, 수업을 들을 때마다, 실제 개발 공부를 해가면서 궁금한 게 더 많을 것이라고, 
취업 전까지는 항상 편하게 연락을 하시라고 이야기 드리고(대신 취업하시면 밥을 사달라고...) 지금도 매일 한 두분씩은 상담을
도와드리고 있다.

사실 탈잉과 인프런에서 하고 있는 개발자 취업 입문 수업은, 수익 창출보다는 
나의 꿈 중 하나인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의 일환으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6월, 7월 2달의 시간을 정말 힘들게 하였던... 마이비스킷에서의
비전공자를 위한 IT기초지식 수업 촬영... 이렇게 공식적으로 올라가는 수업을 처음 촬영 해보았는데, 마이비스킷에서 원하는 퀄리티가 상당히 높아서, 애를 많이 먹었다ㅠㅠ 가격적인 부분(정말 저렴히 하고 싶다)에서 나의 영향력이 거이 미칠 수가 없어서, 사실상 촬영 이후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 했다. 정말 많은 시간을 들여서, 힘들게 혼자서 수업 만들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모든 것을 하였지만 들였던 시간에 비해서 수익을 창출하지도, 많은 분들에게 임팩트를 미치지도 못했다. 항상 잘 될 수 없으니, 그리고 동영상 편집 기술을 익혔으니, 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넘어 간다. 

그나마, 스튜디오 같은 장면을 만들기 위해, 2달 동안 나의 방은 저런 형태로 있었다.....

 

온라인 취미 클래스-개발자와 커뮤니케이션이 술술 풀리는 비전공자를 위한 IT지식

개발분야 (프론트엔드,백엔드) 개발 분야 (프론트엔드, 백엔드) 개발 분야 (프론트엔드, 백엔드) 2

www.mybiskit.com

아무튼 계약 기간도 정해져 있었던 것이라, 마지막에는 그나마 없었던 휴가까지 모두 써가면서 완성하였다.
그래도 나에게는 새로운 주제로, 새롭게 공부하면서 도전하였던 것 중 한 개이다. 

그렇게 나는 2번의 목표를 이루었을까? 
일단 누나와 약속하였던, 8월보다 앞당겨 7월에 누나 빚을 포함한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를 따라 괴롭히던 모든 것들을 성실하게 처리한 것의 결과로, 현재 나의 신용등급은 1등급, 점수제로 변경된 신용도 점수에는 1000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였다...ㅎㅎㅎ(뭔가 잘못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내가 계획한 것 만큼의 수익은 창출하지 못 하였지만,
제일 중요했던 1번(개발자로 인정 받기)을 이루기 위해서, 더 이상의 시간을 전략적으로 투자하지 않고
빚을 청산한 문제를 해결한 뒤에는 이외의 시간들은 모두 개발에 투자하였다.

3. 건강 챙기기

건강은 항상 살아가면서 굉장히 중요한 이슈이다. 건강에 대해서는 나의 생각은 명확하다.
옛날에 워낙 고도 비만으로 살아가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기에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15년동안 지속적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사실 다이어트라기 보다는, 규칙적으로 먹고, 과식하지 않고, 꾸준히 운동하기라고 볼 수 있고
나중에 내가 결혼을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정말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기 때문에(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굉장히 큰 인생 목표 중 하나이기에) 나는 건강하고 싶다. 그리고 좋은 컨디션을 항상 유지하고 싶다.

그것을 확인하는 일환으로, 올해 3개의 목표를 세웠다.
제일 먼저 마라톤 풀코스 완주하기 => 개인적으로는 작년 하프 철인대회(수영 1.9km, 사이클 90km, 러닝 20km)에서 뛰었던 20km가 
가장 긴 거리였기에, 마라톤 풀코스를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사실 나 같은 경우 위에 이야기 했던대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에 따로 해당 대회를 나가기 위해 준비한다기 보다는 평소 언제 뛰더라도 나의 체력이 저정도는 되었으면 하였다.

물론 알다시피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5월에 접수하였던 풀코스 경기가 취소되어서, 개인적으로 풀코스 까지는 아니지만 30km를 뛰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더 뛸 수 있지만 다음 번 대회에서 42.195km를 뛰기 위해 뛰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올해 9월 예정 되었던 철인 풀코스 경기... 
철인 경기는 올림픽, 하프, 풀코스로 나누어진다. 
보통 우리가 철인 경기를 한다고 하면 대부분 올림픽 코스이다. 올림픽 코스는 수영 1.5km / 사이클 40km / 러닝 10km 로 이루어져있다.
대략적으로 시간은 3시간~4시간이 걸린다. 여기까지는 평소에 운동을 하였던 사람이라면 도전 할 수 있다.(사실 수영만 끝나고 나면, 사이클은 천천히 자전거타고, 러닝은 걸어도 된다.)

그리고 그 다음이 하프이다. 수영 1.9km / 사이클 90km / 러닝 20km 로 이루어져있다. 완주한다고 가정했을 때
보통 시간은 7시간에서 8시간정도 걸린다. 이때부터는 약간 재미없다... 생명을 깍아 먹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도전해야 한다. 더 이상 즐겁게 할 수 있는 대회가 아니다. 건강하게, 즐겁게 운동하기를 바라는 나에게는 여기까지가 딱 도전적이고 
알맞다. (사실 올림픽이 제일 적당하다.) 아무튼 하프를 작년에 도전하여서 완주하였고, 올해의 목표는 풀코스였다.

풀코스는 딱 하프의 2배인데, 수영 3.8km / 사이클 180km /  러닝 42.195km로 이루어져있다. (적으면서 내가 이걸 도전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다.) 완주 한다고 가정했을 때 (포기하는 사람이 정말 수두룩하다.) 14시간 ~ 17시간정도 걸린다.
풀코스는 새벽 6시에 출발해서 밤 12시까지 진행된다. ㅎㅎㅎㅎ 이때부터는 그냥 내 생명이 1년은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참가비도 무려 70만원이나 한다. 적지 않은 돈까지 내면서, 생명을 깍아 먹는 운동을 한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무튼 철인 사이에서는 풀코스까지 해야지 정말 철인이다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고,
나는 올해 도전하고자 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돈까지 다 내놓은 경기가 역시나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었다. 
취소가 되었는데 왜 환불해주지 않고 이월시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내년의 목표로 넘겼다 ㅠㅠ 

그리고 마지막 3번 째 목표는 바디프로필 찍기였다.
근데 이것도 참 할 말이 많은데... 아무튼 결론적으로는 12월에 촬영하기로 하였던 3달 전 탈장 수술을 받으면서,
2달 이상을 운동을 아예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철인을 같이 하는 형님들과 같이 촬영을 하기로 했던 것이라,
취소 할 수도 없었고 형님들도 그냥 사진이라도 와서 찍고 가라고 해서 정말 사진을 촬영하러 갔다...
이날 만큼 내가 싫었던 적이 없다. ㅠㅠ 평소 몸보다도 2달 넘게 쉬며, 몸이 더 나빠져 있었고, 운동을 하지 못해 
살까지 붙어 있었다. 바디프로필을 촬영하며 배가 나온채로 촬영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ㅠㅠ
그렇게 나는 그냥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아무튼 기록으로 남겨놓아야 내년에 비교할 수 있기에, 작게라도 올려놓는다. 

왜 3장이나 올려야 사진이 안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살이 많이 찌지 않은 것에 위로하면서, 내년에는 꼭 제대로 바디프로필을 찍어보고 싶다.
아무튼 수술도 잘 마무리하고 지금은 어느정도 건강을 되찾았으니 이것도 50%는 성공으로 하기로 했다.

4. 새로운 비즈니스 도전하기

내가 지금 개발자를 하는 이유는, 나중에 소프트웨어 쪽으로 창업을 하고자 함이고,
나는 나중에 나의 직업이 꼭 기업가였으면 한다.(기업을 통해서 나의 자아실현을 하고,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
그럴거면 지금 바로 창업하지 왜 개발해? 라며 누군가는 이런 내가 잘못 되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스티븐잡스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점들로 찍혀서,
나중에 다 이어지리라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일찍 사업을 해서 성공하고 싶었으나, 실패를 하면서 내 실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찍 사업을 해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해서 나중에 내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자 했을 때,
나는 잘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회가 되면 지속적으로 challenge하고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나의 비즈니스적으로 목표하였던 것은 
팀결성하기와, 새로운 사업 challenge하기 였다.

올 해 초기에는 팀이 없었기에, 되도록 개발을 하지 않고 도전해 볼 수 있는 것들 위주로
도전하였다. (사업 검증 후 개발)

그 중에 올 해 가장 먼저 도전하였던 사업은 바로 "은밀하게 위대하게" 였다.
바로 본인이 가고 싶어 하는 회사의 재직자와 1:1로 매칭하여 궁금한 것들을 해결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예를 들면 내가 "다노"를 오고 싶어한다면, "다노"의 재직자와 만나 미리, 다노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을
현직자를 통해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랜딩페이지


크레이터링크를 통해 간단한 랜딩사이트를 만들어서 페이스북에 광고도 태우며 도전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 하였다. 나는 보통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좀 더 구체화시켜서 도전해보는 편인데,
나에게 필요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개발하기에 앞서서,
먼저 시장 검증을 한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시장 검증 후 DROP하였다.

그리고 다음 아이디어는 정말 간단하게 시도해본 "메모리즈 프로젝트"
이건 실제 라이브까지도 되지 못 했고, 이런 저런 핑계로 간단한 프로토타입 정도까지만 만들었다.
모바일 추모관을 생각하면 제일 비슷할 것 같다. 간단한 설명이 담긴 첨부

 

메모리즈 프로젝트 ver0.1

메모리즈 프로젝트의 ver 0.1을 마무리하였다. 스파르타 코딩클럽 마지막에는 3주동안 프로젝트 기간이 있다. 그 기간동안 각자 만들고 싶었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튜터를 진행하면서, 조금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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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2개는 간단하게 혼자서 해본 것이고,
그 이후부터는 좀 더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서 팀을 꾸려서 도전하였다.(혼자 할 때는 보통 개발 전에 시장검증이 중요했기에 
시장 검증 전에는 최대한 개발을 지양하였고, 팀을 꾸린 이후에는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개발 실력을 늘리는 것에 좋았다.)


먼저 비사이드(비사이드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모아주는 플랫폼)를 통해서
결성된 서울숲도비들팀에서 만들었던 매일 매일 학습한 것을 기록할 수 있는 WILT(윌트)이다.

앱을 학습하고 싶다는 목적으로 참여하였던 윌트는 결국 나의 욕심 때문에
벌려 놓았던 일들과 겹치게 되었다. 학습까지 하면서 할 수 있는 시간이 나지 않았고,
팀에는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기존에 하던 백엔드로 넘어가게 되었다. 뭔가 회사에서 하던 업무가 하나가 더 늘어난 
기분이었다. 후... 아무튼 일만 너무 많이 벌려놔서 많은 부분 참여를 못하고, 초기에 목표하였던 바를 달성하지 못 하였지만
그래도 끝끝내 마무리하여 라이브까지 할 수 있었다. 

윌트는 현재 IOS와 Android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윌트(WILT) - 학습 기록, 공유, TIL - Google Play 앱

What I Learned Today, WILT와 함께 매일 매일 배우는 즐거움을 쌓아가보세요. 그날 그날 뭘 공부했는지 기록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록도 살펴 볼 수 있어요. [배운 내용 기록하기] • 오늘 배운 내용을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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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T - What I Learned Today

‎What I Learned Today, WILT와 함께 매일 매일 배우는 즐거움을 쌓아가보세요. 그날 그날 뭘 공부했는지 기록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록도 살펴 볼 수 있어요. [배운 내용 기록하기] • 오늘 배운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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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현재는 대구에서 사업을 하면서 알았던 형님들, 그리고 함께 다노를 다녔던 재건님과
아주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BLC Company라는 멋진 이름도 있다.)

주류 문화를 개선하는게 목표이고, 아이디어의 이름은 "꽁술"이다.

해당 부분에서 나는 웹프론트엔드 쪽을 개발하고 있는데, 매거진을 시작한 9월부터 현재까지 
정말 출근 전, 출근 후, 주말을 상관하지 않고 계속 개발을 하고 있다. 개발을 선택하고 그렇게 행복을 잃었다.
쉴 때도 무엇을 하고 쉬어야 할지 모르겠고, 이제는 개발을 할 때가 그냥 제일 마음이 편하다.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 신년인 오늘도 개발을 하고 있다...(난 외롭지 않다.ㅠㅠㅠㅠ)

1월 라이브를 목표로 달리고 있는데, 현재 70%정도 완성되었다.
이것도 라이브가 되면 아래에 링크를 첨부하고자 한다.

이것도 다양한 비즈니스에 challenge하고 
이제는 어느정도 안정적인 팀도 결정하였으니, 어느 정도는 성공하였다고 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2020년 올 한해가 갔다.
매년 정말 치열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올 한 해는 스스로 이루고자 하는 것들도 많았고,
굉장히 도전을 많이 했던 한 해였다. 하지만 내년에는 더 이루고자 하는게 문제다...

내년에는 좀 더 자세히 나의 목표들을 세분화 하고,
평가하고, 반성하고,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되겠다.

내년이 기대가 된다. (아니 이것을 2021년 1월 1일날 적고 있으니, 올해가 되겠네)
올해가 매우 기대가 된다.

  1. 개발자홧팅 2021.01.05 16:28

    읽는 내내 '짐승 같은 성실함'이라는 단어가 계속 생각났어요. 병욱님의 5년뒤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화이팅!

  2. 자겨려 2021.01.31 15:03

    글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제가 올해 나이 29세 비전공자 서울 거주하는 남자입니다
    개발자에 진심으로 도전해보려하는데
    국비지원 학원을 다니려고합니다
    3월에 다니기 전에 예습겸 공부를 하려고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될지 막막하더군요..
    처음에 어떤식으로 공부를 시작하셨는지 조언 부탁 드립니다..!!

    • 대구 올빼미 2021.02.02 09:08 신고

      안녕하세요! 자겨려님! :)
      일단 먼저 개발 공부를 시작하실 분야를 정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것에 따라서 공부하는 방법이 확 바뀌니깐요!!
      제가 하고 있는 인프런 개발자 취업 입문 개론 본문에 보시면 오픈채팅방 링크도 있습니다.!!
      거기서 들어오시면 좀 더 상세한 상담을 도와드리도록 할게요! 화이팅입니다 :) 감사합니다.

  3. 외강내유  2021.02.10 08:44 신고

    너무 멋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인프런 강의를 꼭 듣고싶습니다! 저도 쌀은 아니지만 다른직종에서 이리저리 돌다가 개발자 직업에 왔습니다! 이번에 신입이되어 일을 하고있는데 정말 반성을 많이하게되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화이팅입니다!

  4. aiemag 2021.02.19 22:47 신고

    열심히 사시는 모습 너무 보기 좋습니다. 구독하고 갑니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목적에서 저마다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꼭 목적이 없어도 되지만 그 목적이 있을 때 효과는 2배 3배가 되는 것 같다.

나에게 올해는 WHY로 시작해서 WHY를 중요시 하는 회사에 입사해서, WHY를 물으며 끝난 해였다.

그 동안 살아오며 2019년 29살이 되기까지 개발을 접해본 적이 없다. 그 동안 해왔던 일은 학교를 다니며 집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온라인으로 팔고, 또 대구 동대구 시장이라는 곳에서 쌀가게를 2년 운영했다. 

청춘정미소를 함께 한 가족들

우리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로 고객도 많았고, 프렌차이즈로 키우고 싶었는데.역량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시작할 때는 엄청 어렵게, 그리고 자리 잡을 때는 더 쉽지 않았는데 일이 마무리되려고 하니깐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빚도 생겼다. 그래도 이번 사업을 하면서 크게 2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먼저 옛날에는 성공을 정말 어린 나이에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적지만 같이 하는 가족들이 많을 때는 4명이나 되었고,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회사를 힘들어질 때 책임감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다음 사업은 언제하는지 상관없이 정말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역량을 키워야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다음 사업은 꼭 소프트웨어 서비스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애당초 사업을 시작한 이유가 많은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였고, 열심히 오프라인 쌀 가게를 운영해보니 우리 매장 주변의 2000분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제공해줄 수 있었다.(비록 작은 쌀가게였지만 그런 사명감으로 일을 했었다.) 이 매장을 10년 운영하여 매장이 20개 30개가 되면 4만명 5만명의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삶을 줄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욕심이 더 많았나보다. 소프트웨어 기술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회사들을 보며 그것을 동경했다. 그리고 나는 직접 소프트웨어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마음 먹은 것은 2018년도 1월이었지만 나는 용기도 돈도 없었다. 현실이었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할지도 무슨 공부를 해야할지도 몰랐다. 그러던 찰나에 그 동안 친하게 지냈던 대표님이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해주셨다.(사실 형 동생 사이로 지내며 매우 친한 사이이다) 나를 인정해주고 찾아주는 곳으로 가는 것은 사람의 본성일까? 나를 옆에서 지켜봐주고 그 동안의 모습들을 인정해주었고, 나를 필요로 하였다. 마침 아이템도 너무 관심이 있던 아이템이라 개발공부를 할 수 있는 돈도 벌겸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회사에 들어간지 딱 2달 뒤 출시 직전에 개발팀이 단체로 퇴사하며, 나와 대표님 딱 2명만 남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열심히 준비했던 아이템의 빛조차 보지 못했다.

'지금 나도 나가야해...' 생각은 들었지만 차마 쉽게 나갈 수 없었다. 지금 내가 나가면 정말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월에 회사를 마무리하며 너무나도 힘들었던 시간을 보냈어서, 대표님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컸나보다. 그렇게 대표님과 나 2명이서 미친듯이 일을 했다. 할 수 있는 일들부터, 아니 우리가 생존해 갈 수 있는 일들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2018년도는 대표님과 다시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다행히 일을 성공적으로 풀렸다. 회사 직원이 다시 5명이 되었고, 회사는 다시 정상 궤도에 올라갈 수 있었다. 

회사는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만 좋게 마무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마무리는 아주 깔끔했다. 나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고, 대표님과 이야기 한 후 12월 31일부로 회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19년 1월 1일부터 나의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집도 구하지 않았었고, 어떻게든 내가 누울 공간 한 군데는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나의 첫 목적지는 성수역이었다. 성수역에 위치한 코드스테이츠 부트캠프를 수강할 예정이었기에(그때 당시에는 여러 부트캠프가 있는지 조차 몰랐다.) 무작정 성수역으로 향했다. 

다행히 하늘이 나를 버리진 않았나 보다. 정말 좋은 가격에 내가 누울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비록 장소는 누우면 움직일 자리가 없을 정도로 좁았지만(화장실까지 합쳐서 3평정도 되었다.) 그래도 잠잘 자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어차피 매일 나가서 공부하고 잠만 잘 생각이여서 별로 상관없었다.

나의 서울에서의 첫 집(성수)- 정말 보이는 부분이 전부이다.

내가 개발자로 공부하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했던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그 동안 모아놓았던 돈들은 9월이 되기 전에 무조건 떨어질 예정이었기에, 그 전에는 반드시 취업을 해야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에 아군이 생겼다. 계속 소프트웨어쪽으로 같이 도전해보자고 꼬셨던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내가 서울로 올라오고 얼마되지 않아 이 친구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목적지는 나의 집이었다.ㅋㅋㅋ 나도 정말 대책이 없지만 이 친구는 더 대책이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 믿고 올라온 친구인데 내보낼 수도 없고 그렇게 우리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최상의 시간 관리를 위해 노력했다. 1월과 2월은 PRE 과정이라고 해서 온라인으로 수강을 진행하는 것이라, 실제적으로는 개인공부를 진행하였다. 그렇기에 시간 관리는 더더욱 중요하였다. 움직이는 시간을 최소화 하였다. 그것은 바로 한 건물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성수역에 위치한 한 빌딩의 코워킹스페이스에서 우리는 공부하기로 결정했고, 그 빌딩의 지하 2층 헬스장을 끊었다. 그리고 점심은 그 빌딩의 2층에 위치한 한식 뷔페에서 해결했다. 우리의 일과표는 심플했다.

매일 5시 30분 기상, 6시까지 헬스장 도착. 그리고 6시부터 7시까지 헬스(체력관리), 7시부터 공부시작해서 11시 30분까지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11시 30분부터 점심식사, 12시부터 다시 공부시작. 6시에 집에서 싸온 샐러드를 먹고 10시까지 공부. 너무나도 심플한 일과였다. 이 일과를 정말 매일 매일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엄청난 양의 공부를 했을까? 사실 나와 나의 친구는 평범한 사람이다. 문제는 너무 많았다. 우리는 너무 재미있는 것을 많이 알고 있었고, 개발 공부가 처음이었으며, 돈이 있었고, 항상 개발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노트북이 필요했다. 그것에 비해 온라인으로 혼자 공부해가는 과정은 너무 지루하고, 실력이 늘고 있다는 생각조차 쉽게 들지 않았다. 

"풋살 ㄱ?" 이 한마디에 우리는 곧장 풋살 경기가 있는지 확인했고, 미친듯이 집에 가서 옷을 챙겨 풋살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풋살 경기를 하러 갈 때 우리는 제일 신났고, 풋살은 개발보다 재미있었다. 개발 공부를 처음 시작하기에 모든 것이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구글링과 유튜브를 뒤졌다. 그리고 구글은 우리를 너무 잘 안다. 우리에게 너무나 적합한 컨텐츠를 잘 추천해준다... 그렇게 움직이는 시간을 최소화한 것이 의미가 없이 우리는 유튜브를 시청했다.

우린 나약했지만, 그래도 작심을 잘했다. 우리의 문제점을 파악했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풋살 가방을 가질러 가는 일이 없도록 미리 공부하는 곳에 배치해두었고, 풋살장에 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들을 최소화하였다. 그리고 역시 공부는 책으로 해야한다며 책도 구매하였다. 그리고 3일 뒤에는 또 마음을 먹었다. 하루 종일 공부하는 일은 너무 너무 어렵고 지루한 시간들이었다.

코딩 자신감에 대한 그래프 (00책 참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 그래프가 너무 잘 맞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사실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을 처음 시작 했을 때 내가 코딩을 잘 한다고 잠시 착각을 하였었다...  그리고 혼자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곧 당황하는 단계를 맞이하였고, 절망하였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이렇게 하면 비전공에 개발을 처음 시작하는 내가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등등

수없이 많은 나쁜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 절망하는 단계는 생각보다 깊고 오래 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에 개발을 많이 포기하게 된다고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나 역시도 그랬지만 뒤가 없었다. 어떻게든 개발자가 되어야 했고, 그래야만 나의 생활이 가능했기에 일단 개발을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3월 달에  본격적으로 부트캠프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코딩 부트캠프는 단기간에 개발자로 양성해주는 학원정도로 생각하면 쉽겠다. 온라인 과정으로 코드스테이츠를 시작했지만 나는 패스트캠퍼스 스쿨 과정으로 서버 과정을 듣게 되었다. 내가 부트캠프를 바꾸었던 무엇보다 큰 이유는 바로 "딥러닝"에 대한 방향성이었다. 지금에서야 이 분야로 한번에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내가 얼마나 노력을 더 해야하는지도 알지만 그때 당시에만 하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딥러닝 분야로 바로 시작을 하고 싶었고, 그럴려면 최소한 "파이썬"이라는 언어를 공부해야 했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딱 그정도였다. 정말 딱 '딥러닝 분야로 가려면 일단 파이썬을 해야 해' 정도...

그에 비해서 코드스테이츠는 자바스크립트을 바탕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파이썬으로 부트캠프를 진행하는 곳은 패스트캠퍼스 스쿨 과정이 전부였다. 파이썬으로 서버 개발자를 양성하는 패스트캠퍼스 웹프로그래밍 스쿨 과정이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하던 친구는 "코드스쿼드"라는 곳에서 새롭게 부트캠프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였고, 이상했던 동거? 역시 마무리되었다.

3월부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하기에 앞서서 "점프 투 파이썬" 이라는 책으로 파이썬 기본 문법을 3번 정독하였다. 그리고 나는 새학기 첫 학교를 가는 것처럼 설렌 마음으로 3월 4일부터 수업을 받게 되었다.

수업은 6개월 과정이었다. 크게 2개월은 파이썬 기본 문법 및 컴퓨터 사이언스 강의, 2개월은 프레임워크에 대한 강의 그리고 마지막 2개월은 팀 프로젝트로 나누어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3월 2일부터 시작해서 프레임워크가 끝난 4개월이 지난 뒤 부터 취업 준비를 하였고, 7월 22일부터 다노에 입사해서 개발자로 시작할 수 있었다.

아래에 내가 공부해왔던 과정들에 대한 첨부!

1편 [내가 프로그래밍을 시작하게 된 이유 :: 쌀 팔다 개발자](https://daeguowl.tistory.com/2)

 

내가 프로그래밍을 시작하게 된 이유

나는 현재 패스트캠퍼스 웹프로그래밍 스쿨에 다니고 있다. 3월 4일부터 그 과정을 시작하여 벌써 어느새 2달이 다 되어간다. 이 글들을 좀 더 빨리 적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경험을 해보고 적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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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웹프로그래밍스쿨) 패스트캠퍼스 스쿨 수업 후기 :: 쌀 팔다 개발자](https://daeguowl.tistory.com/11?category=796233)

 

웹프로그래밍스쿨) 패스트캠퍼스 스쿨 수업 후기

지난 주를 기점으로 패스트캠퍼스 스쿨 수업 대부분이 끝났다! 공식적으로는 끝나지 않았지만 전체 6개월과정중 4개월정도 지나갔고, 이제 남은 2개월 동안은 개인 및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간이라, 전체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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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패스트캠퍼스 웹프로그래밍 스쿨를 마무리하며 :: 쌀 팔다 개발자](https://daeguowl.tistory.com/17?category=796233)

 

패스트캠퍼스 웹프로그래밍 스쿨를 마무리하며

이 이야기는 올해 1월 개발을 처음 시작한, 그리고 3월부터 패스트캠퍼스 웹 프로그래밍 스쿨에 대한 이야기의 마지막 이다. (+취업 이야기의 연장) 저마다 개발을 하는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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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부족했지만 너무나도 좋은 기회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결론적으로 첫 시작은 인턴이었지만 2020년 1월 1일부로 정식으로 다노 크루로 합류하였다. 예!!!!!

다노는 정말 너무 좋으신 분들이 많고, 항상 자극을 받고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다노는 "why가 정말 중요한 회사이고" 그 "why"가 명확하기에 다들 너무 열심히 일을 하신다. 보통 회사에서의 일은 적당히 하려고 노력하지만 다노에서 내가 느낀 것은 "정말 누구나 열심히 하는 회사" 였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니, 회사가 성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나의 개발자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나의 첫 개발자 생활이 "다노"라서 

정말 다행이다. 올 한해는 꼭 다노에서 "인정 받는 개발자"로 성장하고 싶다.


그래서 2020년 과연 쌀 팔다 개발자는 다노에서 인정 받는 개발자가 되었을까요?
=> 쌀 팔다 개발자 2020년 회고

 

쌀 팔다 개발자 2020년 회고

올해 내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떤 challenge를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는 하루 하루를 보면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1년이 끝난 뒤에 명확하게 보여진다. 매일 매일은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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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 2020.05.06 11:55

    비밀댓글입니다

  2. 프로그램 탐험가 2020.06.12 22:56 신고

    도전하는 정신 그리고 그것을 이뤄내는것 정말 멋지십니다!
    개발자로써 2020년도 화이팅 입니다^^
    저는 개발자를 준비하는 사람인데
    대구 올빼미님은 본 받을점이 많으신 분인거 같습니다 :D

  3. koo_minjae 2020.07.08 14:01 신고

    장고 정보 찾으러 왔다가 글들을 보게 됐습니다. 단숨에 다 읽어버렸네요. 이런 귀하고 흥미로운 글들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4. HJ 2020.07.31 09:38

    우연히 들어왔다가 형님 글 처음부터 다 읽었습니다.
    소름끼치게 저랑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저 또한 왠만큼하는 개발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비전공 학생입니다.
    무엇을 하시든 해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응원합니다. 힘을 얻고 갑니다. 필승!
    -兵1221期-

    • 익명 2020.08.07 08:15

      비밀댓글입니다

  5. 익명 2022.04.22 15:21

    비밀댓글입니다

29살 - 개발에 뛰어들다.

개발 공부를 시작했다. 다음 창업은 꼭 기술창업을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개발을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심플했다. 내가 개발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너가 지금부터 시작해서 20살부터 아니 그 전부터 개발을 시작한 애들과 어떻게 경쟁할래? 그냥 너가 잘하던 일을 해라 였다.

사실 난 그 친구들과 경쟁하고 싶은 생각도, 개발자에서 1인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나는 내가 개발이라는 일을 접해보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구현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5년 정도로 잡았다. 5년동안 개발자로 정말 열심히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어느정도 구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무튼 나는 개발이라는 것을 29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1월과 2월은 코드스테이츠 온라인 교육을 들으며, 그리고 3월부터는 패스트캠퍼스에서 부트캠프 교육을 들었다. 그리고 총 6개월과정의 패스트캠퍼스 과정 중 4개월의 과정을 끝내고, 다노 서버 개발자로 일을 시작 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이런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 감사하다.

나는 잘하는 개발자가 아니다. 내가 개발에 소실이 있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적성에도 맞지 않고, 잘하지도 못한다는 것이 맞다. 

나 역시도 잘하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개발에 대해서 욕심도 생겼다. 하지만 성장이라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번에 나무가 클 수 없고, 모든 일들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누군가는 좀 더 빠르게 성장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좀 더 느릴 수도 있다. 다만 느리더라도 앞으로 성장해 가기만 하면 된다.

내가 29살 인생들을 정리하면서 깨달은 하나가 있다.

나는 비교를 참 많이 한다. 사업을 할 떄는 나보다 더 잘해나가는 사업가와 비교했고, 지금은 돈을 잘 벌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나보다 개발을 더 잘하는 사람들까지도... 

하지만 이 비교는 결국 나를 항상 깍아 먹는다. 나의 소중한 인생은 누군가와 비교하기에는 너무나도 짧다. 인생은 복잡하고, 법칙은 단순하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인생은 복잡하지만, 그 안에 법칙은 단순하다는 말이, 내가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한 신념,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내가 만약에 10년 뒤에 1조, 2조원 규모의 회사를 만든다면 지금 나보다 돈을 좀 더 잘버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스트레스 받을까? 결국 그 확신이 없어서, 내가 그리는 비전이 약해서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럼 나에 대한 소신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단순히 소신을 가지자하면 그 소신이 생길까? 내가 해 본 결과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작은 성공을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작은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졸라 꾸준히 => 졸꾸 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을 졸라 꾸준히 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일을 졸라 꾸준히 하면 나는 작은 성공을 이루는 것이고, 그 작은 성공이 모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소신이 생기고, 그러면 더 이상 남과 비교하며 좌절하지 않고, 단 한명의 나로 당당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나는 테스트를 해보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나의 목표를 정하고, 작은 성공을 실현해보려고 한다. 졸라 꾸준히... 졸라 꾸준히 하면 어떤 변화가 올 수 있고 어떤 일들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한다. 

잘 하지 못해도 괜찮다. 꾸준히만 하면 된다. 

이제 30살이 한 달 남은 29살 11월 말, 나는 10년을 살면서 중요한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직접 실천해서 보여주려고 한다. 

내가 꾸준히 하려고 하는 것은

  1. 개발 공부를 매일 2시간씩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단, 더하진 않을거야 ㅠㅠ)

  2. 개인적인 독서를 30분씩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3. 플란체 연습을 매일 30분씩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4. 영어 공부를 매일 30분씩 꾸준히 하려고 한다.

  5. 일기쓰기를 한다.

앞으로 분명 더 생길 수 있겠지. 

아무튼 앞으로 나는 위의 일들을 졸라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나의 29살 수고 많았다. 

그리고 30살을 무사히 맞이 한다는 것이 큰 감사함을 느낀다.

  1. ㅇㅈㅅ 2020.01.09 17:20

    글잘읽고 많은것을 배우고갑니다~

  2. 허*윤 2020.01.12 11:56

    대구 올빼미형, 잘 지내고 계시죠? 같이 WPS10기 듣고, 마지막 프로젝트에 형과 함께 팀프로젝트 진행했던 동생이에유 ㅎㅎㅎㅎ...

    저희 기수중 형이 제일 먼저 취업을 하게 되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취업을 위해서 미친듯이 달려나갔고, 부족하지만 다들 남고 또 남아서 코딩하고 했는데.. 벌써 졸업 다된지 반년이 넘어가네요.

    옆에서 형을 바라보면서 늘 앞자리에서 할수있는만큼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이 아직도 선해요 ㅎㅎ
    다노에서 개발자 하시느라 많이 바쁘시겠지만, 그래도 늘 언제나 좋은 일들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 보시게 되면 따로 연락한번 주세요. 저도 취업하긴 했는데 저는 C++/ C#쪽으로 가게 되었네요 하하..
    힘내시고, 늘 해와 같이 빛나는 날 되세요!
    늘 고맙습니다~

  3. 청량92 2020.01.23 20:35

    저도 이제 막 29살되서 코딩이랑 수학 독학시작했습니다 ㅠ

    • 대구 올빼미 2020.01.27 16:14 신고

      청량님 화이팅입니다. 광고는 아닌데 저가 진행하고 있는 탈잉 수업 ["쌀"팔다 6개월만에 개발자 된 비법 | 탈잉](https://taling.me/Talent/Detail/14945)
      한번 듣고 준비하시면 훨씬 더 시행착오를 줄이실 수 있으실거에요!! 궁금하신 건 편하게 물어봐주시면 됩니다 :)

  4. Professor 0 2020.03.27 10:53 신고

    졸꾸라는 말 들으니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졸꾸!

28살 - 약대, 미텔슈탄트 요닝 성장

회사를 마무리하고, 그 동안 꾸준히 생각하고 있었던 약사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국을 운영하며 해외에 학교를 지으러 다니시는 분의 다큐를 보았고, 나 역시도 해외에 학교를 100개는 짓고 싶다는 세부 목표가 있었기에 나의 목표는 약사 자격증을 가지는 것이었고, 그 자격증으로 내가 해외에 학교를 지으러 나갈 때마다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나는 바로 공부에 돌입했다. 그렇게 3달, 100일을 열심히 공부해나갔다. 하지만 수능공부와는 다르게 참 아이러니하게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자괴감이 커져갔다. 무엇보다 나를 자괴감에 빠트리게 한 것은 시대의 역행이었다. 옥시토신, 프로게스테론 등 이제 이런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인터넷에 1분만 찾아보면 다 나오는데 고등학교에 수능에 나올 법한 것들을 외우고 있으니, 이 시간에 내가 4차 산업 혁명과 관련된 기술들을 공부하면 앞으로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러던 찰나에, 해외에서는 의료 활동을 하는데 딱히 한국 약사 자격증이 필요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ㅋㅋㅋㅋ 퓨ㅠㅠ 나는 100일동안 뭘 한거지. 그 날로 공부를 마무리했다. 공부를 해야할 목적이 없어졌기에 더 이상 내가 공부를 할 이유가 없었다. 깔끔했다. (여기서 보면 나는 정말 목적이 있어야지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앞으로 어떤 일을 할까 고민을 하던 찰나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미텔슈탄트 동인형님이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을 해주셨다. 모바일 편의점 서비스, 그리고 무엇보다 명확한 팀, 그리고 대표의 역량 3가지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전문적으로 나의 영업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나는 입사를 결정했다. 적은 월급이었지만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업일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개발이 거이 마무리 단계에서 개발팀이 모두 퇴사를 해버렸다. 

팀도 없어지고, 따라서 모바일 편의점 서비스도 더 이상 해나갈 수 없게 되었다. 고민이 되었다. 3가지를 보고 들어왔는데, 2가지가 없어졌다. 아이템, 팀, 이제 대표의 역량만을 믿고가야 했다. 머리는 함께 퇴사를 하라고 했지만, 나의 마음은 그럴 수가 없었다. 형님 혼자 놔두면 정말 더 이상 회사를 이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도 올해 회사를 마무리 했었기에 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와 형님은 둘이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했다. 창업교육. 우리는 창업교육이라는 아이템을 잡고, 미친듯이 제안서를 적고, 입찰을 위해 노력하고, 영업을 다녔다. 그렇게 우리는 2달만에 거이 2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수주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때가 제일 신났던 일이었기도 하다. 

회사 팀원도 다시 늘어나고, 개발자도 다시 생기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회사를 키워나갔다. 그리고 나는 더 늦기 전에 개발에 대해서 배워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창업은 꼭 기술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나는 12월 31일을 기점으로 회사를 마무리했다. 

2018년은 새로운 도전들이 가득했던 년도 였다. 

27살 - 청춘정미소와의 1년

돌아보면, 그리고 시간이 지나보면 그때 그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청춘정미소의 확장이전도 나에게는 그런 선택이었다. 최선의 선택이라고 내린 선택이 결국에는 최악의 선택이 되어버렸다.

청춘정미소의 확장이전으로 우리는 몇천만원의 자금이 그대로 묶여버리고 말았다. 매장을 옴기면 매출이 금방 늘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렇지 못했다. 그냥 그 시장의 한계가 있었는데, 나는 그 한계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매장을 다른 곳으로 옴기는 것이 아닌 2호점을 냈어야 했다. 

아무튼, 매장을 옴겨서도 우리는 여전히 열심히 일을 했다. 다만 각자의 역할을 분배하지 못했고, 우리는 우직하게 매장만 운영했다. 그때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서 다른 역할을 해나갔다면, 우리는 또 다른 길을 걸어 갔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다 주인이었고, 나 역시도 대표라고 내가 다른 일(회사의 성장을 위한 방향 모색, 전략 등)을 하는 것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나 역시도 함께 일을 하고 싶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성장하지 못했다. 결국에는 나의 역량 부족이었을지 모르겠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동영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성장을 바라는 친구에게 성장을 주지 못하고, 회사를 성장시키지 못했고, 확신 없는 잘못된 선택들이 이어지자, 지쳤었던 것 같다. 나 역시도 우리 회사의 10년 뒤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 매장이 10개, 20개, 30개 되었을 청춘정미소의 모습이, 내가 바라는 모습일까? 거기서 일하는 우리 회사 사람들은 행복할까? 나의 결론은 아니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나 역시도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게 청춘정미소가 시작되고, 1년 6개월의 시간이 지났고, 주식회사 파블이 시작한지 2년만에 우리는 여기까지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매장 한개는 튼튼하게 돌아갔던 곳이라, 금방 다음에 매장을 이어가실 분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시기가 나의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너무 극심한 스트레스로 피부부터 머리카락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호기롭게 시작했고, 나의 잘못된 선택들로 인해 회사는 마무리되었다. 회사를 마무리하며 매달 무슨 일이 있었는지 2년동안의 일을 그 앉은 자리에서 다 적을 수 있었다. 

나는 그만큼 청춘정미소에 몰입했었다. 

청춘정미소는 나의 20대의 꽃이었다. 

26살 - 청춘정미소를 시작하다

 

우리는 학교 주변의 동대구시장이라는 곳에서 청년상인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아주 솔깃하였다. 우리에게 장사할 수 있는 자리도 주고, 추가적으로 500만원이라는 인테리어 할 수 있는 자금도 준다고 하였다. 그렇게 동영이와 함께 지원하였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교육을 듣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순록이라는 친구도 함께 하게 되었다. 순록이는 동영이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명인데 원래 동영이가 나와 함께 일을 하지 않았으면 둘이서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했었던 친구다.

그렇게 순록이까지 합류하여서 우리는 함께 시장에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교육을 받으며 아이템을 고민하던 찰나에 쌀 장사를 하시던 형님이 우리에게 쌀 판매를 추천해주셨고, 뭐라도 해야했던 나는 쌀 입찰에 응해서 학교에 쌀들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대구 시장의 아이템도 쌀, 정미소가 되었다. "청춘정미소"

젊은 청년들이 운영하는 쌀집이라는 컨셉으로 잡고 인테리어를 해갔다. 함께 하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인테리어 업체에게 맡겼는데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하였다. 무엇보다 돈도 없었고, 우리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접할 수 있는 친구에게 용접을 부탁하고, 아버지에게 전기공사를 부탁하고, 우리만의 매장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셀프 인테리어 2달만에 우리 매장이 탄생하였다. 단 4평에 장소도 아주 좋지 못한 곳이었지만, 우리는 열심히 했다.

하지만 열심히 한다는 마음은 컸지만 손님이 오지 않았다. 시장 자체에 손님도 많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메인 길목에서 한 골목 들어가서 있었던 자리라 손님을 불러 모으기는 더 쉽지 않았다. 우리는 미친듯이 전단지를 뿌리며, 즉미구독이라는 서비스를 생각해냈다. 쌀을 구독형태로 판매하겠다는 우리의 생각.  쌀을 소량 구매하고 싶어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했고, 그렇지만 소량구매하면 금액이 비싸진다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 10kg, 20kg 단위로 구매해놓고 원하는 양만큼 언제든지 도정해 갈 수 있는 서비스를 시행하였다. 

즉미구독 서비스가 대박을 냈다. 5개월만에 구독자수가 1000명을 넘어갔고, 우리의 매출도 덩달아 올라갔다. 고객들은 한번 결제해놓고 우리 매장을 지속적으로 방문해주었고, 우리는 쌀 이외에 잡곡 , 가공품등을 팔며 매출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우리는 너무 좁아서 항상 가게 문을 다 열고 장사를 할 수 밖에 없어 너무나도 덥고,  추웠던 매장에서 벗어나서 드디어 훨씬 넓고 쾌적한 곳으로 매장을 옴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땀흘려 이루어 낸 이 청춘정미소가 나에게 너무 소중했다.

25살 - 전과, 법인 회사를 만들다

다행이 농업 관련된 일을 옛날부터 해왔던터라 무사히 농업경제학과로 전과를 할 수 있었다. 전과한 농업경제학과에서도 역시 수업을 열심히 수강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제 반오십이라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학교 생활을 이어나갔다. 나이는 많은데 이제 대학교 2학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점점 4남매농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1월달 , 2월달까지는 괜찮았지만, 쿠팡, 위메프, 티몬 등 엄청나게 소셜커머스가 성장하고 네이버 블로그 광고 역시 누구나 하는 행사가 되었다. 그렇다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년 겨울에만 고구마를 판매하는 4남매농장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들어와줄리 만무했다. 사업에서 성장을 하지 못하면 곧 퇴보였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매년 사업을 한다고 말하며 뛰어다녔는데, 나는 실제적으로 한 것은 없었고 무언가 내가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성장없이 강연을 다녔고, 어디가나 대단하다고 말해주는게 좋았고, 나의 명함에 대표라고 적혀있는 것이 좋았다. 참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좋았는지, 아마 그 시기에 가졌던 마음들인 것 같다. 그렇게 사업이 기울어가면서 나에게도 위기감이 찾아왔다. 나는 극단적으로 대출을 신청하였다. 그 동안 4남매농장에 잡혀있는 매출을 바탕으로 2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자본금을 바탕으로 주식회사 파블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파블은 FABL(For A Better Life)의 줄인 말로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준다는 의미를 가진 회사이다. 농산물 꾸러미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2000만원 중 1500만원을 냉동탑차를 구입하는데 사용하였다. 이 사업이 될지 안될지 제대로 파악도 해보지 않고, 나는 정말 바보였다. 그리고 조그마한 사무실을 하나 얻었다. 함께 할 친구를 구했다. 그러자 나와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던 친구 한명이 나의 사업 아이템 이야기를 듣더니 다음날 휴학을 하고 찾아왔다. 그렇게 동영이가 팀원으로 함께 시작하였다. 당장 우리가 준비했던 꾸러미 사업은 당장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우리에겐 돈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지고 있는 냉동탑차를 이용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포항 집에서 가격이 너무 싸 버리게 생겼는 배추를 공수해서 대구의 한 시장에 자리잡고 팔았다. 저렴한 가격에 집까지 배달해준다고 하니 불티나게 팔렸다. 그렇게 동영이는 시장에 서서 배추를 팔고 나는 포항에서 배추를 따서 날랐다. ㅋ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난다. 

그렇게 우리는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어떻게든 버텼다.

 

그해 겨울 우리 눈에 들어왔던 것은 대구 전통시장 청년상인 모집이라는 포스터였다.

24살 - 4남매농장과 솔라이브 회장

 

4남매농장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처음부터 대박은 아니었지만 그때에는 잘 시행되지 않고 있던 블로그마케팅으로 네이버에 호박고구마를 검색하면 4남매농장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작업을 해놓았다. 그렇게 2014년 1월 2월 3월까지 3개월 동안 무려 7000만원의 매출을 발생시켰다.  

어린 나이에 굉장히 큰 매출이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나는 학과를 전자과, 기계과가 아닌 통계학과 진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통계학과에 있다기보다는 복수전공을 통해 경영학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돕자.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잠드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비전이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경로는 바뀌었다. 이제는 창업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창업으로 그 비전을 이루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통계학과로 진학하고도 학교를 다니면서 사업을 신경쓰고, 동아리 회장활동에 그 때 당시에 과외, 학과 사무실에서 알바도 하고 있어서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찰나에 내년부터 전과제도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렇게 나는 하기 싫은 통계학과를 계속 다니기 보다는 정신없는 이 시기에 휴학을 하여 다른 것들을 우선시 하자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년에 전과가 될 것이다는 기약도 없이 일단 휴학을 하였다. 휴학 이후에도 정말 정신없이 24살의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여러 창업 경진대회에서도 좋은 성적들을 가져올 수 있었다.

23살 - 온라인으로 고구마를 팔다 4남매농장

아쉬운 수능 결과를 뒤로하고, 나는 포항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 포항에서 그 동안 빠졌던 살과, 마음들을 챙기며 엄마아빠의 일들을 도와드리며 시간을 보냈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최선을 다 했기에 후회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23살 겨울 1월 2월달에 우리집은 경매장에 고구마를 팔고 있었고, 경매장에서는 역시나 우리가 원하는 금액을 주지 않았다. 우리가 노력한 만큼의 돈을 주지 않기에, 더 속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엄마, 이거 내가 인터넷으로 팔아볼까?"

정말 아무 생각없이 뱉은 말이 었는데, 엄마는 크게 웃으셨다. 

"아니 인터넷 판매가 무슨 쉬운줄 아니, 그래 할 수 있으면 해 봐. 다 너 용돈으로 줄 테니깐"

그렇게 나의 맨땅에서 고구마 판매하기가 시작되었다.  어디에 판매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갑자기 고구마를 팔아라고 하는 미션이 주어지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렇게 나는 먼저 가장 만만한 중고나라에 글을 올렸다. "호박 고구마 팝니다." 뜬금없이 중고나라에서의 고구마 판매 글... 사람들은 역시나 사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인터넷 뉴스 댓글, 그리고 보는 사람마다 고구마를 판다고 홍보하고 다녔다. 생각해보면 그 때 나의 숨겨져 있는 영업실력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열심히 판 것에 비해서 판매는 저조했다. 일주일에 한 박스, 두 박스 나가는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우연하게 알게 된 포항맘카페에서, 정말 대박이 났다. 포항엄마들이 모여있는 맘카페에서 맛 좋고 가격까지 저렴한 우리 고구마는 정말 날게 날린 듯 팔려나갔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 20박스를 팔기도 하고 30박스를 팔기도 하였다. 그 해 겨울은 고구마 장수로 정신 없는 겨울을 보냈다. 한달도 채 안되는 시간에 1000만원 어치의 고구마를 팔아치웠다. 그리고 엄마를 멋지게 당황시켰다. 아마도 살면서 엄마를 처음 놀라게 한 사건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3월 나는 원래 다니던 학교로 복학하였다. 3월 나는 2학기에 복학하면 됬지만, 애매하게 꼬여버려서, 그냥 3월에 다시 자연자율전공부를 다시 복학하였다. 그리고 나는 13학번 새내기들과 함께 무려 3살의 나이차를 가지고 함께 학교를 시작했다.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친구들이 나를 불편해 하지 않도록 노력했고, 다행이 잘 적응했던 것 같다. 그리고 2학기에는 우연찮게 창업 연구회 솔라이브라는 곳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대해서 준비하였다. 그렇게 4남매농장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디자인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요청들을 해가고, 웹사이트를 기획하며 정말 정신없는 하루들을 보냈다. 하루 일과의 시작은 5시였고, 중간에 밥을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 집에 들어가며 삼각김밥 한개씩을 우겨넣으며 생활했다. 

그렇게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4살 드디어 4남매농장 웹사이트를 오픈하였다.

22살 - 군대 전역, 수능 도전 (기억을 걷는 시간 - 넬)

군대 안에서 여러 생각들을 하였지만, 특히나 주된 관심사는 꿈에 관한 것이 많았다. 미래에 나는 어떤 생활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미래에 나는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잠드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나는 경제학자를 꿈꿨다. 다른 나라의 경제상황을 컨설팅해주고 그 나라가 좀 더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렇게 되면 한명 개개인의 사람들을 돕는 것보다 그 나라 전체가 잘 살게되어 그런 부분이 많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다보니 현재 내가 있는 과가 나에게 맞지 않았고, 나는 과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능이라는 것에 한번 더 도전을 해야되겠다 마음 먹었다. 군대 안에서 최대한 많은 책들을 읽었다. 무려 100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군대에서 내가 이루어냈던 것들을 정리하여 포상휴가도 받았다. 그만큼 군 생활 역시 성실하게 하였다. 내가 군대를 전역할 때 울어준 후임도 있었고, 정말 깊은 마음이 느껴지는 장문의 편지들도 많이 받은 것 보니, 군대에서의 생활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똑똑하진 못하지만, 악하지 않다. 항상 그 사람을 챙겨주기 위해 노력했지, 나의 것을 먼저 챙기지 않았다. 내가 실수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렇기에 군대에서의 추억이 나에게 너무 행복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나의 미래는 무엇일까? 나는 경제학자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싸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가 해병대에서 얻은 가장 큰 것은 꿈을 찾은 것이고, 그 두번쨰는 꿈을 향해 도전할 용기를 가진 것이다.고 

그렇게 군대를 전역하기에 앞서서 미리 서울에 방을 구해놓았다. 서울대 근처 하숙방. 그리고 옥탑. 2평 남짓의 방이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방이었다. R=VD를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목표는 서울대 경제학과였다. 2012년 5월 26일에 전역하여 3일쯤 뒤에 서울로 올라왔다. 전역날 버스에서 나왔던 노래가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군대에서의 생활들이 물 흐르듯이 지나갔다. 그리고 서울에서 정말 죽도록 공부하였다. 11월 12일까지 약 170일정도의 시간이 남았었고, 나는 모든 것을 리셋 상태에서 공부를 해나갔다. 매일 아침 4시반 혹은 5시부터 시작해서 밤 10시까지 공부의 시간들이 이어져갔다. 단 하루도 나를 속이지 않고, 공부했다. 단 하루도... 그때의 나의 생활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토나올 정도로 힘들었던 5개월의 시간이었다. 그때 나의 꿈은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것도 할게 없어서 다시 잠들어보는 것이었다. 슬럼프를 겪을 시간도 없었고, 나에게 쉴 사치도 없었다. 유일하게 도서관이 일찍 끝나는 화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가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그때는 필요한 것들을 모아놓았다가 서점에 가서 사기도 하고, 맥주 한캔을 마시며 버텼다. 서울 하숙집어머님과 5개월 동안 나의 점심을 챙겨주셨던 김밥집 어머님까지 총 2분의 어머니가 나에게는 더 생겼다. 하숙집 어머님이 수능전날 나의 문고리에 걸어놓으셨던 찹살떡은 아직도 기억에 난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흘렸던 눈물들도... 더 이상 나에게 목표는 서울대가 아니었다. 그냥 수능 전날 누웠을 때 와 정말 후회없이 했구나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능 전날 나는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수능을 보고 나오면서 흘렸던 눈물, 그 동안의 상황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며 떠올랐던 기억들 때문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의 뜨거웠던 겨울은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결과에서 실패했지만, 과정에서는 성공했다.

수능 이후에 23살의 내가 적은 수능에 관한 글..

https://cafe.naver.com/suhui/11882722

 

토나올것 같았던 5개월의 시간들......

안녕하세요 올해 22살 청년 입니다. 내년이면 23살이구요 ^^. 올해 5월 26일날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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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 해병대

연평도 사건이 마무리 되었고 무사히 백령도에서 포항으로 돌아왔다. 계급은 일병으로 올라갔다.

막내 생활을 엄청 오래했지만 그래도 후임도 들어왔다. 후임이 들어오고, 나는 다른 소대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유는 내가 이동하는 소대의 악습이 너무 많아서 내가 중간에서 잘 챙겨주라는 명목이었다. 싫었다. 이제서야 내 소대에서 익숙해져가고 있는데, 새로운 소대로 이동해야 하는게 싫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렇게 3소대로 이동해서, 나는 웃음이 많은 소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래의 후임들을 많이 챙겨주었고, 그래도 나름 인정받는 분대장으로 활동하였다. 포상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다들 짬차면 한다는 눈치보면서 훈련을 빠지지도 않았고 앞서서 솔선수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기에 군대안에서 후임들이 많이 따라주었다. 여러 훈련들을 참여했고, 8월달이 되어서는 상병 계급장도 달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에는 탄약고로 파견근무도 갔다. 탄약고에서 나는 겨울은 추웠지만, 낭만이 있었다. 풋살장도 잘 되어 있어서 풋살도 엄청 많이 했다. 군대안에서 나의 풋살 실력이 다 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군대 생활이 무르익고 있었다.

20살 - 대학입학을 했다. (고백-뜨거운 감자, 죽을만큼 아파서, 진짜 일리 없어)

대학입학을 하고 여러 친구들을 사귀었다. 처음 사귄 친구들과의 새로운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었다. 그 때 당시에는 뭐가 그렇게 중요했는지, 옆 테이블보다 더 크게 떠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가지고 있었다. 매일 매일 술은 마시지 않으면 이상하다 할 정도로 술도 많이 마셨다. 술을 많이 마셔도 크게 취하지 않아서, 남들보다 술도 더 많이 먹었다. 어떻게 보면 8월달에 군대를 갔으니깐 3월부터 5개월 간의 대학 생활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짧은, 1학년 대학 생활이었다. 그래도 첫 엠티를 시작으로 학교 축제도 하고,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부과대도 하면서 정말 많은 경험들을 했다. 심지어 고백(뜨거운 감자)를 부르며 고백도 했다. 비록 그날 실패해서 혼자 술집에서 고기에 술을 먹고(아마 처음으로 혼자 먹은 술일 것이다), 바로 해병대에 지원을 했다. 그게 덜컥 붙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반 강제적으로 군대로 가게 되었다.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놀 바에는 빠르게 군대나 가자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군대에 입대하는 날, 엄마아빠는 싸우셨고(이것도 아마 엄마가 함께 가고 싶지 않으셔서 였던 것 같다.), 나는 아빠와 함께 군 입대 장소로 갔다. 그 차안에서 내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들어간 해병대는 절대로 녹록치가 않았다. 훈련소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동기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초코파이가 그렇게 맛있는 것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부족한 것일까? 역시 모든 상황은 상대적이다. 그렇기에 남과 비교하면 나만 불행해질 뿐이다. 나의 소중한 인생은 남과 비교하며 보내기에는 너무나 짧다. 현재의 나의 인생을 살자.

그렇게 실무에 가자마자 백령도로 파견을 갔다. 그리고 훈련 도중 터진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 그 사건으로 인해 나의 휴가와 실제로 전쟁이 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5분 대기조라는 명목하에 하루 종일 굴 속에서 완전 무장을 하고 지냈다. 그때 그 죽음의 앞에서 내가 제일 후회 되었던 것은 좋은 집에 살아보지 못한 것, 좋은 차, 좋은 음식 그런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준 적이 없는게 제일 후회가 되었다. 

아마 지금도 똑같이 그 부분을 후회하지 않을까? 그때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적지만 매달 군대 월급 7만원 중 3만원을 해외 아동 지원을 시작하였다. 매일 아침 백령도 텐트 속에서 나왔던 노래들은 죽을만큼 아파서와 이게 진짜 일리 없어 였다. 무엇보다 제발 지옥같은 여기서 날 꺼내줘와, 이게 진짜 일리 없다는 가사가 너무 와 닿았다. 그곳은 나에게 지옥이었고, 매일 아침 이게 진짜 일리 없다고 생각했었다. 매일 저녁 혼자 걸레 4개를 들고 빨러가면서, 달을 보며 제알 자살만 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만큼 그때의 상황은 너무 너무 어려웠다... 백령도 유격훈련, 진지공사, 대청도 파견 근무, 근무부터 훈련, 내부 생활까지 뭐 하나 쉬운 것이 하나 없었다. 

그렇게 나의 20살은 첫 대학 생활을 즐거움과, 사랑, 군대, 죽음에 대한 생각들로 마무리 되었다.

나는 현재 패스트캠퍼스 웹프로그래밍 스쿨에 다니고 있다. 

3월 4일부터 그 과정을 시작하여 벌써 어느새 2달이 다 되어간다. 이 글들을 좀 더 빨리 적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경험을 해보고 적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어 이제서야 글을 적게 되었다. 이제부터 끝날 때까지 매주 1주에 한 개씩은 패스트캠퍼스 스쿨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먼저 내가 왜 패스트캠퍼스 웹프로그래밍 스쿨에 지원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올해 1월 달에 서울로 올라왔다.  23살 때부터 대학을 다니며 시작했던 사업들은 모두 마무리하였고, 이제는 프로그래밍이라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위해 10년간의 대구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여기 성수동에 자리 잡았다. 딱히 기술이 없다 보니 학교를 다니면서 했던 것들은 유통업 위주로 했었고, 어느 정도 성과도 내었다. (사업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좀 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학교를 다니면서 지속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그리고 딱히 기술도 없다 보니 지속적으로 성장에는 한계가 느껴졌다.

"나도 기술 기반의 사업을 해보고 싶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업이 10년 뒤에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던질 때면 스스로 답답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사업을 한답시고 학교도 잘 나가지 않고 그나마 다니던 농업경제학과 역시 수업 끝나기 10분 전에 들어가서 출석체크만 면할 정도였으니, 기술과 관련이 있으래야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나는 딥러닝이라는 기술에 매료되었다. "와 더 이상 컴퓨터에게 코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스스로가 코딩을 해간다고?"라는 질문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사실 딥러닝에 대해서 물으면 아직도 잘 모른다.) 

관심이 생기니 공부해보고 싶퍼졌다. 하지만 나의 내면 깊숙이 존재하고 있는 기술에 대한 장벽은 매우 높았다. 누군가는 이것을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표현을 쓰더라. 개발 공부를 하루 이틀 하다가 그만둔 기억들이 쌓여 그렇게 나는 담을 쌓아버렸다. 왜 그때는 그랬을지 지금도 후회가 된다. 

나는 무엇인가하면 정말 열심히 해야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도 나의 열심히 노력했다는 기준은 최소 하루 15시간 이상씩은 해야지 정말 내가 진심으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 기준이 높다. 이 기준은 내가 군대를 전역하고 5개월 동안 수능 공부를 정말 토 나올 정도로 하면서 생긴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다. [https://cafe.naver.com/suhui/11882722] 내가 그때 적은 수능 후기를 보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 때문에 일을 하고 하루 1시간 2시간 하는 공부는 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하루 1시간 , 2시간씩 하는 것보다 하루 15시간씩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렇게 개발 역시 완벽한 시간이 오면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이 생각이 얼마나 나에게 안 좋게 다가오게 되었는지... 이제야 깨닫고 있다. (이제 와서 깨닫는 것이지만 노력은 하루에 10시간씩 4개월 5개월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30분 1시간이라도 2년 3년 하는 것이 노력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내가 딥러닝에 관심을 가진지 무려 1년이 다되어서야 나는 그렇게 바라던 완벽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올 초의 일이다. 하던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딱 1년 생활할 수 있는 자금을 가지고(이것저것 쓰다 보니 지금은 8개월이 되었다... 주룩) 나는 내가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던 딥러닝, 프로그래밍이라는 진입장벽을 깨기 위해 서울로 왔다. 

모든 것을 정리하면서 서울에 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야, 너가 그동안 전문으로 해오던 영업, 아니면 경영을 해야지. 이제서야 개발 공부한다고 될 것 같냐? 20살부터 해오던 애들도 많은데 네가 개내들이랑 경쟁해서 이길 수 있냐? 다 적성이 있는 거야. 너 그렇게 활동적이면서 그거랑 잘 맞겠냐?"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은 내가 나중에 하고 싶은 것은 기업을 만들고 경영하는 것인데 왜 네가 직접 개발 공부를 해서 그것을 하려고 하냐는 것이었다. 

참 맞는 말들이라... 반박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굉장히 단순하기 때문에(그동안 그렇게 지내왔던 것 같다.) 일단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일들은 (설사 그 방향이 틀렸다고 해도 내가 확인하기 전까지는) 꼭 해봐야 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2개월을 할지 말지 고민한다고 하면 나는 바로 시작해서 2개월을 해보고 결정하는 식이다. 누군가가 이미 다 확인을 시켜준 길도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기에 나는 나 스스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딱히 뚜렷한 계획이 있거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일단 와서 "딥러닝을 배울 수 있는 학원을 다니자. 부트캠프 6개월이면 누구나 개발자 될 수 있다고 하던데 나도 부트캠프를 가자!!"는 생각이었다. 

처음에 와서 알아보고 다닌 것은 "코드스테이츠 프리코스 과정"이었다. 딥러닝을 바로 배우려고 하니 먼저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그 당시에는 여러 명에게 조언을 구하였다) 그래서 나는 일단 프론트엔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과정에 등록하여 수업을 진행하였다. 주 언어는 javascript언어였고 온라인 과정으로 시작되었기에 많은 시간들이 확보되었다. 근처 독서실을 다니며 하루하루 공부를 계속해갔고 거기서 제공해주는 알고리즘 문제도 아무것도 모른 채 일단 문제들을 풀어갔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내다 보니 하나하나 정보들을 모을 수 있었다. 프론트엔드는 무슨 일을 하는지, 백엔드는 무슨 일을 하는지부터 딥러닝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되는지 까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많은 내용들을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고민도 없었는데, 알고 나니 고민이 더 심화되었다. 바로 내가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 목적이었다. 나는 이후에 기술 기반의 사업을 꼭 하고 싶었고, 그게 가능하다면 딥러닝이라는 분야였으면 하였다. (물론 하고 싶은 서비스가 있고 그것이 딥러닝 기술을 필요로 해야 한다는 말도 맞다.) 내가 서울로 온 이유는 딥러닝을 배우기 위해서 였고, 자바스크립트라는 언어로 공부하는 것은 딥러닝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내가 딥러닝을 하기 위해서 프론트과정, 백엔드 과정을 떠나서 최소한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파이썬이라는 언어였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 파이썬이라는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지하게 되었고, 나는 파이썬을 배울 수 있는 곳들을 찾아보았다. 그 중에서 찾고 찾은 것이 패스트캠퍼스 웹프로그래밍스쿨 백엔드 과정이었다. 웹프로그래밍스쿨은 하루 종일제로 운영되면서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우리가 온전히 프로그래밍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트캠프가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에 집중하는 것과는 다르게 하루에 수업을 4시간씩 진행하며 초보자들이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써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파이썬이라는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백엔드 과정을 자바스크립트 혹은 자바라는 언어를 가지고 진행하였으나 패스트캠퍼스는 파이썬으로 백엔드 과정을 진행하였다.

백엔드는 서버 및 데이터베이스까지 다루기 때문에 파이썬으로 공부를 하면 이후에 자연스럽게 딥러닝과도 연계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확신이 든 나는 패스트캠퍼스에 등록하였다. 패스트캠퍼스 "스쿨"이라고 하였던가... 학교...!! 29살에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이다. ㅎㅎㅎ

첫 개강일 전에 신나서 미리 강의실 투어를 다녀왔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3월 4일... (날짜까지 너무 정확하게 기억난다).

나는 책가방을 메고, 고등학교 처음 등교날의 설렘을 안고 패스트캠퍼스 스쿨로 향했다.ㅎㅎ

앞으로 무슨 일이 펼쳐졌는지는 다음 글에서 적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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