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 개발에 뛰어들다.

개발 공부를 시작했다. 다음 창업은 꼭 기술창업을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개발을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심플했다. 내가 개발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너가 지금부터 시작해서 20살부터 아니 그 전부터 개발을 시작한 애들과 어떻게 경쟁할래? 그냥 너가 잘하던 일을 해라 였다.

사실 난 그 친구들과 경쟁하고 싶은 생각도, 개발자에서 1인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나는 내가 개발이라는 일을 접해보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구현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5년 정도로 잡았다. 5년동안 개발자로 정말 열심히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어느정도 구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무튼 나는 개발이라는 것을 29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1월과 2월은 코드스테이츠 온라인 교육을 들으며, 그리고 3월부터는 패스트캠퍼스에서 부트캠프 교육을 들었다. 그리고 총 6개월과정의 패스트캠퍼스 과정 중 4개월의 과정을 끝내고, 다노 서버 개발자로 일을 시작 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이런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 감사하다.

나는 잘하는 개발자가 아니다. 내가 개발에 소실이 있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적성에도 맞지 않고, 잘하지도 못한다는 것이 맞다. 

나 역시도 잘하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개발에 대해서 욕심도 생겼다. 하지만 성장이라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번에 나무가 클 수 없고, 모든 일들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누군가는 좀 더 빠르게 성장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좀 더 느릴 수도 있다. 다만 느리더라도 앞으로 성장해 가기만 하면 된다.

내가 29살 인생들을 정리하면서 깨달은 하나가 있다.

나는 비교를 참 많이 한다. 사업을 할 떄는 나보다 더 잘해나가는 사업가와 비교했고, 지금은 돈을 잘 벌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나보다 개발을 더 잘하는 사람들까지도... 

하지만 이 비교는 결국 나를 항상 깍아 먹는다. 나의 소중한 인생은 누군가와 비교하기에는 너무나도 짧다. 인생은 복잡하고, 법칙은 단순하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인생은 복잡하지만, 그 안에 법칙은 단순하다는 말이, 내가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한 신념,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내가 만약에 10년 뒤에 1조, 2조원 규모의 회사를 만든다면 지금 나보다 돈을 좀 더 잘버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스트레스 받을까? 결국 그 확신이 없어서, 내가 그리는 비전이 약해서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럼 나에 대한 소신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단순히 소신을 가지자하면 그 소신이 생길까? 내가 해 본 결과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작은 성공을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작은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졸라 꾸준히 => 졸꾸 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을 졸라 꾸준히 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일을 졸라 꾸준히 하면 나는 작은 성공을 이루는 것이고, 그 작은 성공이 모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소신이 생기고, 그러면 더 이상 남과 비교하며 좌절하지 않고, 단 한명의 나로 당당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나는 테스트를 해보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나의 목표를 정하고, 작은 성공을 실현해보려고 한다. 졸라 꾸준히... 졸라 꾸준히 하면 어떤 변화가 올 수 있고 어떤 일들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한다. 

잘 하지 못해도 괜찮다. 꾸준히만 하면 된다. 

이제 30살이 한 달 남은 29살 11월 말, 나는 10년을 살면서 중요한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직접 실천해서 보여주려고 한다. 

내가 꾸준히 하려고 하는 것은

  1. 개발 공부를 매일 2시간씩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단, 더하진 않을거야 ㅠㅠ)

  2. 개인적인 독서를 30분씩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3. 플란체 연습을 매일 30분씩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4. 영어 공부를 매일 30분씩 꾸준히 하려고 한다.

  5. 일기쓰기를 한다.

앞으로 분명 더 생길 수 있겠지. 

아무튼 앞으로 나는 위의 일들을 졸라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나의 29살 수고 많았다. 

그리고 30살을 무사히 맞이 한다는 것이 큰 감사함을 느낀다.

28살 - 약대, 미텔슈탄트 요닝 성장

회사를 마무리하고, 그 동안 꾸준히 생각하고 있었던 약사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국을 운영하며 해외에 학교를 지으러 다니시는 분의 다큐를 보았고, 나 역시도 해외에 학교를 100개는 짓고 싶다는 세부 목표가 있었기에 나의 목표는 약사 자격증을 가지는 것이었고, 그 자격증으로 내가 해외에 학교를 지으러 나갈 때마다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나는 바로 공부에 돌입했다. 그렇게 3달, 100일을 열심히 공부해나갔다. 하지만 수능공부와는 다르게 참 아이러니하게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자괴감이 커져갔다. 무엇보다 나를 자괴감에 빠트리게 한 것은 시대의 역행이었다. 옥시토신, 프로게스테론 등 이제 이런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인터넷에 1분만 찾아보면 다 나오는데 고등학교에 수능에 나올 법한 것들을 외우고 있으니, 이 시간에 내가 4차 산업 혁명과 관련된 기술들을 공부하면 앞으로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러던 찰나에, 해외에서는 의료 활동을 하는데 딱히 한국 약사 자격증이 필요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ㅋㅋㅋㅋ 퓨ㅠㅠ 나는 100일동안 뭘 한거지. 그 날로 공부를 마무리했다. 공부를 해야할 목적이 없어졌기에 더 이상 내가 공부를 할 이유가 없었다. 깔끔했다. (여기서 보면 나는 정말 목적이 있어야지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앞으로 어떤 일을 할까 고민을 하던 찰나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미텔슈탄트 동인형님이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을 해주셨다. 모바일 편의점 서비스, 그리고 무엇보다 명확한 팀, 그리고 대표의 역량 3가지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전문적으로 나의 영업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나는 입사를 결정했다. 적은 월급이었지만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업일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개발이 거이 마무리 단계에서 개발팀이 모두 퇴사를 해버렸다. 

팀도 없어지고, 따라서 모바일 편의점 서비스도 더 이상 해나갈 수 없게 되었다. 고민이 되었다. 3가지를 보고 들어왔는데, 2가지가 없어졌다. 아이템, 팀, 이제 대표의 역량만을 믿고가야 했다. 머리는 함께 퇴사를 하라고 했지만, 나의 마음은 그럴 수가 없었다. 형님 혼자 놔두면 정말 더 이상 회사를 이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도 올해 회사를 마무리 했었기에 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와 형님은 둘이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했다. 창업교육. 우리는 창업교육이라는 아이템을 잡고, 미친듯이 제안서를 적고, 입찰을 위해 노력하고, 영업을 다녔다. 그렇게 우리는 2달만에 거이 2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수주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때가 제일 신났던 일이었기도 하다. 

회사 팀원도 다시 늘어나고, 개발자도 다시 생기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회사를 키워나갔다. 그리고 나는 더 늦기 전에 개발에 대해서 배워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창업은 꼭 기술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나는 12월 31일을 기점으로 회사를 마무리했다. 

2018년은 새로운 도전들이 가득했던 년도 였다. 

27살 - 청춘정미소와의 1년

돌아보면, 그리고 시간이 지나보면 그때 그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청춘정미소의 확장이전도 나에게는 그런 선택이었다. 최선의 선택이라고 내린 선택이 결국에는 최악의 선택이 되어버렸다.

청춘정미소의 확장이전으로 우리는 몇천만원의 자금이 그대로 묶여버리고 말았다. 매장을 옴기면 매출이 금방 늘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렇지 못했다. 그냥 그 시장의 한계가 있었는데, 나는 그 한계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매장을 다른 곳으로 옴기는 것이 아닌 2호점을 냈어야 했다. 

아무튼, 매장을 옴겨서도 우리는 여전히 열심히 일을 했다. 다만 각자의 역할을 분배하지 못했고, 우리는 우직하게 매장만 운영했다. 그때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서 다른 역할을 해나갔다면, 우리는 또 다른 길을 걸어 갔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다 주인이었고, 나 역시도 대표라고 내가 다른 일(회사의 성장을 위한 방향 모색, 전략 등)을 하는 것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나 역시도 함께 일을 하고 싶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성장하지 못했다. 결국에는 나의 역량 부족이었을지 모르겠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동영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성장을 바라는 친구에게 성장을 주지 못하고, 회사를 성장시키지 못했고, 확신 없는 잘못된 선택들이 이어지자, 지쳤었던 것 같다. 나 역시도 우리 회사의 10년 뒤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 매장이 10개, 20개, 30개 되었을 청춘정미소의 모습이, 내가 바라는 모습일까? 거기서 일하는 우리 회사 사람들은 행복할까? 나의 결론은 아니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나 역시도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게 청춘정미소가 시작되고, 1년 6개월의 시간이 지났고, 주식회사 파블이 시작한지 2년만에 우리는 여기까지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매장 한개는 튼튼하게 돌아갔던 곳이라, 금방 다음에 매장을 이어가실 분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시기가 나의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너무 극심한 스트레스로 피부부터 머리카락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호기롭게 시작했고, 나의 잘못된 선택들로 인해 회사는 마무리되었다. 회사를 마무리하며 매달 무슨 일이 있었는지 2년동안의 일을 그 앉은 자리에서 다 적을 수 있었다. 

나는 그만큼 청춘정미소에 몰입했었다. 

청춘정미소는 나의 20대의 꽃이었다. 

 

 

26살 - 청춘정미소를 시작하다

 

우리는 학교 주변의 동대구시장이라는 곳에서 청년상인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아주 솔깃하였다. 우리에게 장사할 수 있는 자리도 주고, 추가적으로 500만원이라는 인테리어 할 수 있는 자금도 준다고 하였다. 그렇게 동영이와 함께 지원하였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교육을 듣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순록이라는 친구도 함께 하게 되었다. 순록이는 동영이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명인데 원래 동영이가 나와 함께 일을 하지 않았으면 둘이서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했었던 친구다.

그렇게 순록이까지 합류하여서 우리는 함께 시장에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교육을 받으며 아이템을 고민하던 찰나에 쌀 장사를 하시던 형님이 우리에게 쌀 판매를 추천해주셨고, 뭐라도 해야했던 나는 쌀 입찰에 응해서 학교에 쌀들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대구 시장의 아이템도 쌀, 정미소가 되었다. "청춘정미소"

젊은 청년들이 운영하는 쌀집이라는 컨셉으로 잡고 인테리어를 해갔다. 함께 하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인테리어 업체에게 맡겼는데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하였다. 무엇보다 돈도 없었고, 우리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접할 수 있는 친구에게 용접을 부탁하고, 아버지에게 전기공사를 부탁하고, 우리만의 매장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셀프 인테리어 2달만에 우리 매장이 탄생하였다. 단 4평에 장소도 아주 좋지 못한 곳이었지만, 우리는 열심히 했다.

하지만 열심히 한다는 마음은 컸지만 손님이 오지 않았다. 시장 자체에 손님도 많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메인 길목에서 한 골목 들어가서 있었던 자리라 손님을 불러 모으기는 더 쉽지 않았다. 우리는 미친듯이 전단지를 뿌리며, 즉미구독이라는 서비스를 생각해냈다. 쌀을 구독형태로 판매하겠다는 우리의 생각.  쌀을 소량 구매하고 싶어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했고, 그렇지만 소량구매하면 금액이 비싸진다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 10kg, 20kg 단위로 구매해놓고 원하는 양만큼 언제든지 도정해 갈 수 있는 서비스를 시행하였다. 

즉미구독 서비스가 대박을 냈다. 5개월만에 구독자수가 1000명을 넘어갔고, 우리의 매출도 덩달아 올라갔다. 고객들은 한번 결제해놓고 우리 매장을 지속적으로 방문해주었고, 우리는 쌀 이외에 잡곡 , 가공품등을 팔며 매출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우리는 너무 좁아서 항상 가게 문을 다 열고 장사를 할 수 밖에 없어 너무나도 덥고,  추웠던 매장에서 벗어나서 드디어 훨씬 넓고 쾌적한 곳으로 매장을 옴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땀흘려 이루어 낸 이 청춘정미소가 나에게 너무 소중했다.

 

 

25살 - 전과, 법인 회사를 만들다

다행이 농업 관련된 일을 옛날부터 해왔던터라 무사히 농업경제학과로 전과를 할 수 있었다. 전과한 농업경제학과에서도 역시 수업을 열심히 수강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제 반오십이라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학교 생활을 이어나갔다. 나이는 많은데 이제 대학교 2학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점점 4남매농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1월달 , 2월달까지는 괜찮았지만, 쿠팡, 위메프, 티몬 등 엄청나게 소셜커머스가 성장하고 네이버 블로그 광고 역시 누구나 하는 행사가 되었다. 그렇다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년 겨울에만 고구마를 판매하는 4남매농장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들어와줄리 만무했다. 사업에서 성장을 하지 못하면 곧 퇴보였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매년 사업을 한다고 말하며 뛰어다녔는데, 나는 실제적으로 한 것은 없었고 무언가 내가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성장없이 강연을 다녔고, 어디가나 대단하다고 말해주는게 좋았고, 나의 명함에 대표라고 적혀있는 것이 좋았다. 참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좋았는지, 아마 그 시기에 가졌던 마음들인 것 같다. 그렇게 사업이 기울어가면서 나에게도 위기감이 찾아왔다. 나는 극단적으로 대출을 신청하였다. 그 동안 4남매농장에 잡혀있는 매출을 바탕으로 2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자본금을 바탕으로 주식회사 파블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파블은 FABL(For A Better Life)의 줄인 말로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준다는 의미를 가진 회사이다. 농산물 꾸러미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2000만원 중 1500만원을 냉동탑차를 구입하는데 사용하였다. 이 사업이 될지 안될지 제대로 파악도 해보지 않고, 나는 정말 바보였다. 그리고 조그마한 사무실을 하나 얻었다. 함께 할 친구를 구했다. 그러자 나와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던 친구 한명이 나의 사업 아이템 이야기를 듣더니 다음날 휴학을 하고 찾아왔다. 그렇게 동영이가 팀원으로 함께 시작하였다. 당장 우리가 준비했던 꾸러미 사업은 당장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우리에겐 돈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지고 있는 냉동탑차를 이용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포항 집에서 가격이 너무 싸 버리게 생겼는 배추를 공수해서 대구의 한 시장에 자리잡고 팔았다. 저렴한 가격에 집까지 배달해준다고 하니 불티나게 팔렸다. 그렇게 동영이는 시장에 서서 배추를 팔고 나는 포항에서 배추를 따서 날랐다. ㅋ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난다. 

그렇게 우리는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어떻게든 버텼다.

 

그해 겨울 우리 눈에 들어왔던 것은 대구 전통시장 청년상인 모집이라는 포스터였다.

24살 - 4남매농장과 솔라이브 회장

 

4남매농장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처음부터 대박은 아니었지만 그때에는 잘 시행되지 않고 있던 블로그마케팅으로 네이버에 호박고구마를 검색하면 4남매농장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작업을 해놓았다. 그렇게 2014년 1월 2월 3월까지 3개월 동안 무려 7000만원의 매출을 발생시켰다.  

어린 나이에 굉장히 큰 매출이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나는 학과를 전자과, 기계과가 아닌 통계학과 진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통계학과에 있다기보다는 복수전공을 통해 경영학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돕자.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잠드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비전이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경로는 바뀌었다. 이제는 창업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창업으로 그 비전을 이루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통계학과로 진학하고도 학교를 다니면서 사업을 신경쓰고, 동아리 회장활동에 그 때 당시에 과외, 학과 사무실에서 알바도 하고 있어서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찰나에 내년부터 전과제도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렇게 나는 하기 싫은 통계학과를 계속 다니기 보다는 정신없는 이 시기에 휴학을 하여 다른 것들을 우선시 하자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년에 전과가 될 것이다는 기약도 없이 일단 휴학을 하였다. 휴학 이후에도 정말 정신없이 24살의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여러 창업 경진대회에서도 좋은 성적들을 가져올 수 있었다.

23살 - 온라인으로 고구마를 팔다 4남매농장

아쉬운 수능 결과를 뒤로하고, 나는 포항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 포항에서 그 동안 빠졌던 살과, 마음들을 챙기며 엄마아빠의 일들을 도와드리며 시간을 보냈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최선을 다 했기에 후회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23살 겨울 1월 2월달에 우리집은 경매장에 고구마를 팔고 있었고, 경매장에서는 역시나 우리가 원하는 금액을 주지 않았다. 우리가 노력한 만큼의 돈을 주지 않기에, 더 속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엄마, 이거 내가 인터넷으로 팔아볼까?"

정말 아무 생각없이 뱉은 말이 었는데, 엄마는 크게 웃으셨다. 

"아니 인터넷 판매가 무슨 쉬운줄 아니, 그래 할 수 있으면 해 봐. 다 너 용돈으로 줄 테니깐"

그렇게 나의 맨땅에서 고구마 판매하기가 시작되었다.  어디에 판매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갑자기 고구마를 팔아라고 하는 미션이 주어지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렇게 나는 먼저 가장 만만한 중고나라에 글을 올렸다. "호박 고구마 팝니다." 뜬금없이 중고나라에서의 고구마 판매 글... 사람들은 역시나 사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인터넷 뉴스 댓글, 그리고 보는 사람마다 고구마를 판다고 홍보하고 다녔다. 생각해보면 그 때 나의 숨겨져 있는 영업실력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열심히 판 것에 비해서 판매는 저조했다. 일주일에 한 박스, 두 박스 나가는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우연하게 알게 된 포항맘카페에서, 정말 대박이 났다. 포항엄마들이 모여있는 맘카페에서 맛 좋고 가격까지 저렴한 우리 고구마는 정말 날게 날린 듯 팔려나갔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 20박스를 팔기도 하고 30박스를 팔기도 하였다. 그 해 겨울은 고구마 장수로 정신 없는 겨울을 보냈다. 한달도 채 안되는 시간에 1000만원 어치의 고구마를 팔아치웠다. 그리고 엄마를 멋지게 당황시켰다. 아마도 살면서 엄마를 처음 놀라게 한 사건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3월 나는 원래 다니던 학교로 복학하였다. 3월 나는 2학기에 복학하면 됬지만, 애매하게 꼬여버려서, 그냥 3월에 다시 자연자율전공부를 다시 복학하였다. 그리고 나는 13학번 새내기들과 함께 무려 3살의 나이차를 가지고 함께 학교를 시작했다.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친구들이 나를 불편해 하지 않도록 노력했고, 다행이 잘 적응했던 것 같다. 그리고 2학기에는 우연찮게 창업 연구회 솔라이브라는 곳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대해서 준비하였다. 그렇게 4남매농장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디자인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요청들을 해가고, 웹사이트를 기획하며 정말 정신없는 하루들을 보냈다. 하루 일과의 시작은 5시였고, 중간에 밥을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 집에 들어가며 삼각김밥 한개씩을 우겨넣으며 생활했다. 

그렇게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4살 드디어 4남매농장 웹사이트를 오픈하였다.

22살 - 군대 전역, 수능 도전 (기억을 걷는 시간 - 넬)

군대 안에서 여러 생각들을 하였지만, 특히나 주된 관심사는 꿈에 관한 것이 많았다. 미래에 나는 어떤 생활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미래에 나는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잠드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나는 경제학자를 꿈꿨다. 다른 나라의 경제상황을 컨설팅해주고 그 나라가 좀 더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렇게 되면 한명 개개인의 사람들을 돕는 것보다 그 나라 전체가 잘 살게되어 그런 부분이 많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다보니 현재 내가 있는 과가 나에게 맞지 않았고, 나는 과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수능이라는 것에 한번 더 도전을 해야되겠다 마음 먹었다. 군대 안에서 최대한 많은 책들을 읽었다. 무려 100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군대에서 내가 이루어냈던 것들을 정리하여 포상휴가도 받았다. 그만큼 군 생활 역시 성실하게 하였다. 내가 군대를 전역할 때 울어준 후임도 있었고, 정말 깊은 마음이 느껴지는 장문의 편지들도 많이 받은 것 보니, 군대에서의 생활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똑똑하진 못하지만, 악하지 않다. 항상 그 사람을 챙겨주기 위해 노력했지, 나의 것을 먼저 챙기지 않았다. 내가 실수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렇기에 군대에서의 추억이 나에게 너무 행복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나의 미래는 무엇일까? 나는 경제학자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싸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가 해병대에서 얻은 가장 큰 것은 꿈을 찾은 것이고, 그 두번쨰는 꿈을 향해 도전할 용기를 가진 것이다.고 

그렇게 군대를 전역하기에 앞서서 미리 서울에 방을 구해놓았다. 서울대 근처 하숙방. 그리고 옥탑. 2평 남짓의 방이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방이었다. R=VD를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목표는 서울대 경제학과였다. 2012년 5월 26일에 전역하여 3일쯤 뒤에 서울로 올라왔다. 전역날 버스에서 나왔던 노래가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군대에서의 생활들이 물 흐르듯이 지나갔다. 그리고 서울에서 정말 죽도록 공부하였다. 11월 12일까지 약 170일정도의 시간이 남았었고, 나는 모든 것을 리셋 상태에서 공부를 해나갔다. 매일 아침 4시반 혹은 5시부터 시작해서 밤 10시까지 공부의 시간들이 이어져갔다. 단 하루도 나를 속이지 않고, 공부했다. 단 하루도... 그때의 나의 생활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토나올 정도로 힘들었던 5개월의 시간이었다. 그때 나의 꿈은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것도 할게 없어서 다시 잠들어보는 것이었다. 슬럼프를 겪을 시간도 없었고, 나에게 쉴 사치도 없었다. 유일하게 도서관이 일찍 끝나는 화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가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그때는 필요한 것들을 모아놓았다가 서점에 가서 사기도 하고, 맥주 한캔을 마시며 버텼다. 서울 하숙집어머님과 5개월 동안 나의 점심을 챙겨주셨던 김밥집 어머님까지 총 2분의 어머니가 나에게는 더 생겼다. 하숙집 어머님이 수능전날 나의 문고리에 걸어놓으셨던 찹살떡은 아직도 기억에 난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흘렸던 눈물들도... 더 이상 나에게 목표는 서울대가 아니었다. 그냥 수능 전날 누웠을 때 와 정말 후회없이 했구나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능 전날 나는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수능을 보고 나오면서 흘렸던 눈물, 그 동안의 상황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며 떠올랐던 기억들 때문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의 뜨거웠던 겨울은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결과에서 실패했지만, 과정에서는 성공했다.

수능 이후에 23살의 내가 적은 수능에 관한 글..

https://cafe.naver.com/suhui/11882722

 

토나올것 같았던 5개월의 시간들......

안녕하세요 올해 22살 청년 입니다. 내년이면 23살이구요 ^^. 올해 5월 26일날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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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 해병대

연평도 사건이 마무리 되었고 무사히 백령도에서 포항으로 돌아왔다. 계급은 일병으로 올라갔다.

막내 생활을 엄청 오래했지만 그래도 후임도 들어왔다. 후임이 들어오고, 나는 다른 소대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유는 내가 이동하는 소대의 악습이 너무 많아서 내가 중간에서 잘 챙겨주라는 명목이었다. 싫었다. 이제서야 내 소대에서 익숙해져가고 있는데, 새로운 소대로 이동해야 하는게 싫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렇게 3소대로 이동해서, 나는 웃음이 많은 소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래의 후임들을 많이 챙겨주었고, 그래도 나름 인정받는 분대장으로 활동하였다. 포상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다들 짬차면 한다는 눈치보면서 훈련을 빠지지도 않았고 앞서서 솔선수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기에 군대안에서 후임들이 많이 따라주었다. 여러 훈련들을 참여했고, 8월달이 되어서는 상병 계급장도 달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에는 탄약고로 파견근무도 갔다. 탄약고에서 나는 겨울은 추웠지만, 낭만이 있었다. 풋살장도 잘 되어 있어서 풋살도 엄청 많이 했다. 군대안에서 나의 풋살 실력이 다 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군대 생활이 무르익고 있었다.

20살 - 대학입학을 했다. (고백-뜨거운 감자, 죽을만큼 아파서, 진짜 일리 없어)

대학입학을 하고 여러 친구들을 사귀었다. 처음 사귄 친구들과의 새로운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었다. 그 때 당시에는 뭐가 그렇게 중요했는지, 옆 테이블보다 더 크게 떠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가지고 있었다. 매일 매일 술은 마시지 않으면 이상하다 할 정도로 술도 많이 마셨다. 술을 많이 마셔도 크게 취하지 않아서, 남들보다 술도 더 많이 먹었다. 어떻게 보면 8월달에 군대를 갔으니깐 3월부터 5개월 간의 대학 생활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짧은, 1학년 대학 생활이었다. 그래도 첫 엠티를 시작으로 학교 축제도 하고,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부과대도 하면서 정말 많은 경험들을 했다. 심지어 고백(뜨거운 감자)를 부르며 고백도 했다. 비록 그날 실패해서 혼자 술집에서 고기에 술을 먹고(아마 처음으로 혼자 먹은 술일 것이다), 바로 해병대에 지원을 했다. 그게 덜컥 붙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반 강제적으로 군대로 가게 되었다.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놀 바에는 빠르게 군대나 가자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군대에 입대하는 날, 엄마아빠는 싸우셨고(이것도 아마 엄마가 함께 가고 싶지 않으셔서 였던 것 같다.), 나는 아빠와 함께 군 입대 장소로 갔다. 그 차안에서 내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들어간 해병대는 절대로 녹록치가 않았다. 훈련소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동기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초코파이가 그렇게 맛있는 것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부족한 것일까? 역시 모든 상황은 상대적이다. 그렇기에 남과 비교하면 나만 불행해질 뿐이다. 나의 소중한 인생은 남과 비교하며 보내기에는 너무나 짧다. 현재의 나의 인생을 살자.

그렇게 실무에 가자마자 백령도로 파견을 갔다. 그리고 훈련 도중 터진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 그 사건으로 인해 나의 휴가와 실제로 전쟁이 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5분 대기조라는 명목하에 하루 종일 굴 속에서 완전 무장을 하고 지냈다. 그때 그 죽음의 앞에서 내가 제일 후회 되었던 것은 좋은 집에 살아보지 못한 것, 좋은 차, 좋은 음식 그런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준 적이 없는게 제일 후회가 되었다. 

아마 지금도 똑같이 그 부분을 후회하지 않을까? 그때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적지만 매달 군대 월급 7만원 중 3만원을 해외 아동 지원을 시작하였다. 매일 아침 백령도 텐트 속에서 나왔던 노래들은 죽을만큼 아파서와 이게 진짜 일리 없어 였다. 무엇보다 제발 지옥같은 여기서 날 꺼내줘와, 이게 진짜 일리 없다는 가사가 너무 와 닿았다. 그곳은 나에게 지옥이었고, 매일 아침 이게 진짜 일리 없다고 생각했었다. 매일 저녁 혼자 걸레 4개를 들고 빨러가면서, 달을 보며 제알 자살만 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만큼 그때의 상황은 너무 너무 어려웠다... 백령도 유격훈련, 진지공사, 대청도 파견 근무, 근무부터 훈련, 내부 생활까지 뭐 하나 쉬운 것이 하나 없었다. 

그렇게 나의 20살은 첫 대학 생활을 즐거움과, 사랑, 군대, 죽음에 대한 생각들로 마무리 되었다.

2019.04.24 장고 데이터베이스 설치하기

(TIL은 스스로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질문에 답하기

  1. 장고 데이터베이스 설치하기

데이터베이스 설치하기

  1. 기본적으로 project를 생성하고나면 python manage.py migration을 통해 데이터베이스 생성해주기
    1. 기본 데이터테이블 생성하기
  2. 모델 만들기
  3. 모델을 바탕으로 해당 앱 데이터테이블 생성하기

기본 데이터테이블 생성하기

migrate

  • python manage.py migrate
  • migrate는 settings/INSTALLED_APPS에 등록되어 있는 앱에 필요한 데이터테이블을 생성한다.
  • 따라서 INSTALLED_APPS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면 migration 명령이 실행되지 않는다.

관리자 계정 생성하기

  • python manage.py createsuperuser
  • 비밀번호 변경
    1. python manage.py chanagepassword [계정명]

모델 만들기

모델 만들기

  • DB에 어떤 데이터를 어떤 형식으로 저장할 것인가?
  • 모델 이름 : 테이블 이름
  • 모델의 필드 : 컬럼
    1. 컬럼은 데이터의 형식 , 제약 조건
    2. 형식 : 정수, 실수, 글자, 길이없는 텍스트, 날짜 등
  • 원래 SQL 언어로 작성을 하여야 하나 model에 클래스를 통해 작성할 수 있다.
  • 모델을 사용하면서 장고에서 주는 이점 중 또 한개는 이렇게 모델에 만들어 놓으면 제약조건에 대한 부분을 프론트에 자동으로 만들어 준다.
    1. 프론트에서 사용하는 폼 태그의 종류와 제약 조건을 제시해준다.
  • 해당 앱의 데이터베이스 구조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 이 모델에 따라서 데이터테이블이 생성된다.

polls/models.py

from django.db import models


class Question(models.Model):
    question_text = models.CharField(max_length=200)
    pub_date = models.DateTimeField('date published')


class Choice(models.Model):
    question = models.ForeignKey(Question,                         on_delete=models.CASCADE)
    choice_text = models.CharField(max_length=200)
    votes = models.IntegerField(default=0)
  • Question이라는 모델에는 question_text 와 pub_date가 들어가고 각각의 필드(조건)들로 구성된다.
  • Choice라는 모델은 question , choice_text, votes로 구성된다.

해당 데이터테이블 변경사항 추적하기 : 모델을 읽어서 DB에 반영할 사항 확인

  • migrate를 해줘야하는데 migrate는 settings/INSTALLED_APPS에 등록되어 있는 앱에 필요한 데이터테이블을 생성한다.
  • 따라서 먼저 settings/INSTALLED_APPS에 polls를 등록해준다.
  • 해당 앱에 대한 migration을 만들어준다.
  • python manage.py makemigrations polls
  • 해당 앱에 대한 migration을 실시 해준다.

변경 사항 등록하기 : 변경 사항 파일을 읽어서 쿼리 실행

  • python manage.py migrate polls 0001
  • python manage.py migrate만해도 되지만 polls와 0001을 넣는 이유
    • 한 프로젝트 안에서 다른 사람이 만들고 있는 내용도 같이 반영이 될 수 있음

변경사항 확인하기

  • polls/migrations에 보면 변경사항들이 나온다.
  • 장고는 DB 의존성이 낮다.
    1. 의존성 : ~ 에 대한 의존성이 높다는 것은 ~가 아니면 정상 동작하지 않는다.
      1. 예) 삼성 리모컨, lg 리모컨
  • 어떤 쿼리가 실행될지 알고 싶다면
    1. python manage.py sqlmigrate polls 0001
    2. 어떤 쿼리가 실행될지 알고 싶다
    3. slow 쿼리인지 여부 확인
    4. 튜닝이 필요한 쿼리인지 여부 확인할 때 사용한다.

2019.04.24 장고 앱 설치 이후 간단한 뷰 만들어 url 연동시켜보기

(TIL은 스스로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질문에 답하기

  1. 장고 프로젝트 과정 설명하기

간단한 뷰를 만들어 url 연동시켜보기

간단한 뷰 만들기

polls/views.py

from django.http import HttpResponse


def index(request):
    return HttpResponse("Hello, world. You're at the polls index.")

뷰와 연결될 URLconf 생성하기

polls/urls.py 생성

from django.urls import path

from . import views

urlpatterns = [
    path('', views.index, name='index'),
]
  • 127.0.0.1/polls 에 관련된 주소 url이 오면 views.index를 보여줘라
  • 그 상위 urls.py를 설정해서 연결시켜줘야한다.

cofig/urls.py 연동

from django.contrib import admin
from django.urls import include, path

urlpatterns = [
    path('polls/', include('polls.urls')),
    path('admin/', admin.site.urls),
  • include는 전달해라 (127.0.0.1)/polls/에 관련된 것이 오면 polls.urls로 전달해라
  • (127.0.0.1)/admin 이 오면 admin.site.urls로 연결해라

실행

  • python manage.py runserver
  • 127.0.0.1:8000/polls
  • “Hello, world. You’re at the polls index.” 가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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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시작하기  (0) 2019.11.15

2019.04.24 장고 앱 설치 이후 간단한 뷰 만들어 url 연동시켜보기

(TIL은 스스로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질문에 답하기

  1. 장고 프로젝트 과정 설명하기

간단한 뷰를 만들어 url 연동시켜보기

간단한 뷰 만들기

polls/views.py

from django.http import HttpResponse


def index(request):
    return HttpResponse("Hello, world. You're at the polls index.")

뷰와 연결될 URLconf 생성하기

polls/urls.py 생성

from django.urls import path

from . import views

urlpatterns = [
    path('', views.index, name='index'),
]
  • 127.0.0.1/polls 에 관련된 주소 url이 오면 views.index를 보여줘라
  • 그 상위 urls.py를 설정해서 연결시켜줘야한다.

cofig/urls.py 연동

from django.contrib import admin
from django.urls import include, path

urlpatterns = [
    path('polls/', include('polls.urls')),
    path('admin/', admin.site.urls),
  • include는 전달해라 (127.0.0.1)/polls/에 관련된 것이 오면 polls.urls로 전달해라
  • (127.0.0.1)/admin 이 오면 admin.site.urls로 연결해라

실행

  • python manage.py runserver
  • 127.0.0.1:8000/polls
  • “Hello, world. You’re at the polls index.” 가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9.04.23 장고프로젝트 시작하기

(TIL은 스스로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질문에 답하기

  1. 장고 프로젝트 과정 설명하기

장고 프로젝트 시작하기 by 장고 튜터리얼

목표

  • 사람들이 설문 내용을 보고 직접 투표할 수 있는 개방된 사이트 구성
  • 관리자가 설문을 추가, 변경, 삭제할 수 있는 관리용 사이트 제작

장고 프로젝트 시작하기

  1. 가상 환경 생성
    1. 프로젝트 마다 언어 혹은 모듈의 버전이 달라질 수 있다.
    2. 하나의 환경안에는 똑같은 모듈이라고 했을 때 한가지 버전만 설치 가능하다.
    3.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버전을 다르게 해주기 위해 가상환경을 생성한다.
  2. 장고 설치
    1. 각각의 프로젝트에 맞는 장고 버전 설치
  3. 장고 프로젝트 생성

1. 가상 환경 생성

가상 환경 생성

  • virtualenv : 파이참에서 기본적으로 지원
  • venv : 파이썬3.4부터 기본적으로 탑재

 파이썬가상환경 virtualenv, venv - 제타위키

  • virtualenv
    • pip3 install virtualenv
    • virtualenv –python = python3.7 venv
    • venv라는 가상환경 생성
  • venv
    • python3 -m venv myvenv
    • myvenv라는 이름의 가상환경 생성

가상 환경 실행

  • virtualenv
    • source venv/bin/activate
  • venv
    • source myvenv/bin/activate

가상환경 비활성화

  • deactivate

2. django 설치

  • 가상환경 내에서는 virtualenv & venv 모두 공통

장고 설치하기

  • virtualenv & venv 공통
    • pip install django == 2.1

3. django project 시작하기

프로젝트 생성하기

  • django-admin : 장고 매니저
  • django-admin startproject config . : “.”은 현재 나의 디렉토리에 생성한다.
    • config라는 폴더가 생기고 그 안에 설정 파일들이 생긴다.
    • config 파일은 설정 폴더라고 생각하고 만들면 된다.

프로젝트 생성 이후 폴더 설명

  • settings.py : 설정 값을 저장 파일
    • 크리티컬한 정보는 user 설정값, 별도 파일에서 부러온다.
  • 페이지
    • 화면이 보이는 페이지는 페이지로
    • 화면이 보이지 않는 페이지 - 기능
  • urls
    • 기능이나 페이지를 이용한다 : 접속한다. 즉 url이 필요하다
    • 주소 설계 내용을 저장하는 곳 urls.py
    • 1개가 아니라 여러개다.
    • 라우팅을 한다.
    • www.naver.com/blog/flashmaestro?docN
  • middleware
    • 미들웨어란 무엇일까요?
    • 웹 서버와 장고 애플리케이션 사이에서 동작하는 기능(보안관련)
    • 크루 로봇이 항상 깨어있으면서 유연하게 대처함
    • WSGI 방식 : Gunicon, UWSGI
    • 접속자 추정

프로젝트 내 앱 생성하기

  • python manage.py startapp [앱이름]

장고 앱 설명

  1. 장고는 재사용이 가능한 형태로 구성된다.
    1. 내가 만들어 놓은 게시판을 다른 장고 프로젝트에서도 빌려서 쓸 수 있다.
    2. 기능들의 단위는 앱이라는 단위로 끊어서 만든다.
    3. 앱은 재사용을 위해서 만드는 기능 단위이다.
    4. 어떤 페이지나 기능을 만들기 위해서는 앱을 만들고 그 안에 만든다.
    5. 기능 단위에는 정답이 없다. 내가 쪼개기 나름이다.
    6. 만약에 내가 재사용할 일이 없으면 한개의 앱안에 다 만들어도 되나, 내가 앞으로 프로젝트 할 때 이 관련 기능을 많이 쓸 것 같으면 반드시 하나의 앱으로 나누어야 한다.
  2. 앱이름으로 폴더가 생성된다. (by polls)

polls/ __init__.py admin.py apps.py migrations/ __init__.py models.py tests.py views.py

  1. migrations 폴더 : DB 변경 사항 이력 파일들
    1. 언제든지 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력 관리를 해준다.
  2. admin.py : 모델을 관리하기 위해 등록, 관리자 페이지 커스터 마이징
  3. apps.py : 앱 정보 관리, 앱 진입시 로드할 기능 관리
  4. models.py : 모델을 만들고 관리하는 부분
    1. 모델은 데이터베이스에 어떤 자료를 어떤 형식으로 저장할 것이냐에 대한 결정
      1. 데이터베이스 언어는 SQL
      2. 각 데이터베이스마다 쿼리문이 다르다.
      3. 따라서 만약에 데이터베이스를 바꿀 때 마다 그 쿼리문을 다 바꿔주어야 한다.
      4. 그 부담감을 줄여주기 위해 ORM이라는 것이 나옴
        1. 데이터를 객체에 맵핑하는 것
        2. 객체에 쓸 쿼리문을 맵핑해놓으면 알아서 ORM이 바꾸어서 요청해줄게.
      5. ORM 기법을 이용해서 모델을 작성할 것이다. (by class)
  5. tests.py : 테스트 셋을 지정하는 파일 - TDD
    1. 어플리케이션의 사용성을 보장하는 방법
      1. 모든 부분 마다 테스트코드를 작성하여 돌아가는지 확인
      2. 기능을 하나를 추가하거나 변경하면 다른 기능에 영향을 안 받아야 한다.
      3.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 보장을 해줄 수 없다.
    2. TDD는 이것을 하면 이것이 나와야 되라는 테스트 셋을 만들어놓고 자동으로 프로그램이 돌려준다. 그래서 문제가 없으면 보장하는 방법을 TDD라고 한다.
  6. views.py : 페이지나 기능을 코딩하는 파일

2019.04.19 장고시작하기

(TIL은 스스로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질문에 답하기

  1. 장고란 무엇인가?

장고란

파이썬으로 작성된 오픈 소스 웹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로 모델 - 뷰 - 컨트롤러(MVC) 패턴을 따르고 있다.
고도의 데이터베이스 기반 웹사이트를 작성하는데 있어서 수고를 더는 것이 장고의 주된 목표!
컴포넌트의 재사용성과 플러그인화 가능성 빠른 개발등을 강조하고 있다.

  • 컴포넌트 : 소프트웨어 시스템에서 독립적인 업무 또는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모듈로서 이후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는데 있어 교체가 가능한 부품
  • 플러그인 : 웹 브라우저의 표진 기능을 확장해주는 프로그램을 의미한다.(flash, pdfreader등)

장고의 특징

  1. MVC 패턴 기반 ( Model - View - Controller)
    1. 장고에서는 view를 Template, Controller를 View라고 부르므로 MTV 프레임워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우아한 URL 설계
    1. URL형태를 개발자가 직접 결정할 수 있고 각 URL형태를 파이썬 함수에 직접 연결하도록 되어 있어 개발이 편리하고 이해하기 쉽다.
  3. 관리자 웹 인터페이스 제공
    1. 사용자 관리, 사용자 그룹관리, 권한 뿐만 아니라 모델 객체에 대해서도 목록, 추가, 삭제, 변경의 기능이 관리자 인터페이스에서 모두 제공되어 웹 어플리케이션을 실험해보기에 좋다.

장고 시작하기

프로젝트 할 폴더 생성

  • mkdir djangoproject
  • cd djangoproject

가상 환경 설치 및 실행

  • 장고의 경우 각 프로젝트에 맞게 버전을 설정하여 관리하기 위해 가상 환경 위해서 진행해주는게 좋다.
  • python3 -m venv myvenv : myvenv라는 가상환경 설치
  • source myvenv/bin/activate : myvenv / bin 폴더의 activate 실행 (가상환경실행)

가상 환경 내에서 django 설치

  • pip install django~=2.0.0 (가상 환경위에서는 자동으로 python3가 잡히므로 pip3 해줄필요 없음)

프로젝트 시작하기

  • django-admin startproject mysite . : mysite라는 프로젝트 시작
  • mysite라는 폴더 생성

  • 위와 같이 진행하고 나면 위의 구조로 파일이 생성된다.

데이터베이스 설정

  • python3 manage.py migrate : 현재 장고 프로젝트에서 데이터베이스를 어떤 식으로 저장할지에 대한 자동설정
  • python manage.py runserver : 장고 서버 시작

이까지 진행하면 장고 서버를 시작하여 웹사이트 운영을 시작할 단계가 되었다.

  • 다음부터는 장고의 MVC 패턴 기반 ( Model - View - Controller)에 맞추어서 하나씩 추가적으로 설명해보려고 한다. django 02. 에서 Model에 대해 추가적으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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